- 사원의 종소리 너머, 예술이 살고 있는 마을 -
치앙마이에서는 시간이 꿀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수텝 로드에서 갈라진 길로, 왓 람뽕(Wat Ram Poeng) 사원 근처의 흙냄새와 재스민 향이 뒤섞인 골목길을 10분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작은 나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손글씨로 쓰인 "บ้านข้างวัด(반캉왓)" 간판이다. '사원 옆의 집'이라는 뜻의 이 이름처럼 고요하지만 신비롭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사원 옆 한적한 골목에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마을 하나가 나타난다.
10여 채의 작은 건물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중앙의 야외 암피극장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의 마을이 펼쳐진다. 입구를 지나면 둥글게 공간을 감싸는 무대가 먼저 시선을 끈다. 아이들이 분필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한쪽에서는 기타 소리가 살랑거린다. 누군가는 천천히 걷고, 누군가는 다정하게 웃는다. 어디에 카메라를 가져다 대도 아름다운 프레임이 완성되는 곳이다. 티크 나무와 콘크리트가 조화를 이루는 건물들, 그 사이로 스며드는 녹음, 그리고 자연스럽게 배치된 예술품들까지. 태국 북부 지역 전통 공예의 쇠퇴 속에서, 2014년 도예가 나따웃 룩프라싯이 꿈꾼 것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도시화로 사라져 가는 수공예 전통을, 현대적 공동체 모델로 되살리려는 실험. '살아있는 예술 가족의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곳은, 서구적 효율성과 동양적 여유가 만나는 지점이다.
골목마다 작은 공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부쿠 스튜디오(Bookoo Studio)에서는 도자기를 굽는 사람, 파차나(Pa Cha Na)에서는 세라믹을 빚는 사람, 목공 작업실에서는 나무를 자르고 깎는 사람, 판화 공방에서는 조용히 붓질하는 사람. 문턱을 넘으면 창작의 순간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체험을 신청한 방문객들이 예술가들과 나란히 앉아 같은 리듬으로 손을 움직인다. 엄마와 아이는 손에 물감을 묻혀가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고,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은 서툰 솜씨지만 다양한 공방에 도전한다. 누구나 처음엔 서툴지만, 흙을 만지고 나무를 깎으며 손끝의 시간이 조금씩 정돈된다. 50년 전 이 자리에는 전통 직조공들이 살았고, 100년 후에도 누군가 이곳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파차나(Pa Cha Na) 스튜디오 창가에 걸린 앞치마의 흙 얼룩들은 어제의 작업, 지난주의 실험, 한 달 전의 도전을 증언한다. 각 공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 물레 소리, 망치질, 사포질 -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잔잔한 교향곡을 이룬다.
점심시간, 디 올드 치앙마이 에스프레소 바(The Old Chiang Mai Espresso Bar)의 진한 카오소이 국물이 여행자들의 시각과 후각 청각을 자극한다. 그곳에서 잠시 반캉왓 예술마을을 음미하며 허기를 달랜다. 오후의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24나라(24NARA)의 빈티지 데님과 갤러리 캉왓(Gallery Kang Wat)의 핸드메이드 소품들을 둘러본다. 나무 선반 위에 놓인 옷, 그릇, 향초, 엽서, 하나하나에 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느 것도 급하게 만들어진 것이 없다. 모두가 천천히 살아온 이야기 같다. 색다른 공간인 노트 어 북(Note A Book)에 머무는 시간은 특별하다. 손으로 묶은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책장에는 태국의 고서들의 깊은 향기를 내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곳에서 여행의 순간들을 기록할 수제 노트북과 빈티지 엽서들이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가죽 표지의 노트북들이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제본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여행 기록장을 만들어간다.
오후 햇살이 창을 타고 느리게 들어오는 그래프 카페(Graph Cafe)에서 마지막 커피를 마시며 반캉왓에서 보낸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아침에 만난 도예가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찻잔, 점심 무렵 맛본 카오소이의 깊은 향, 오후 햇살 아래 둘러본 핸드메이드 소품들까지. 작가들은 여전히 작업에 몰두하고, 새로 도착한 방문객들이 신기한 눈으로 마을을 탐험한다. 21세기 속도 사회에서 반캉왓이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느림'이 아니다. 인간의 손과 시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풍요로움의 정의다. 이곳에서의 몇 시간은 마음속에 새로운 감각을 심어준다. 급함이라는 도시의 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여유라는 새로운 리듬을 배운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 순례 대신, 반캉왓에서는 예술가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사원 옆 작은 마을을 떠나면서, 예술이 일상이 되는 풍경이 가슴 한편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