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서 찾은 느긋한 발걸음
검은 벽돌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빛이 중정에 얹힌 다채로운 천들을 흔든다. 무지개색 실크가 바람에 춤추며 목조 기둥 사이를 떠도는 동안, 어디선가 스며오는 찻잎 우리는 소리와 함께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한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석재 바닥의 차가운 감촉과 코끝에 스미는 오래된 티크목의 따뜻한 향이 뒤섞이며, "Keep Kalm, Keep Craft Alive"라는 연두색 깃발이 바구니 짜기 패턴을 닮은 벽면에서 조용히 흔들린다.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는 순간, 공간 자체가 하나의 조용한 선언처럼 다가온다.
아차리야르와 아라야 로자나피롬 남매가 5년의 긴 건축 과정을 거쳐 2021년 5월 문을 연 이곳은, 방콕 외곽 전통 가옥에서 어머니가 전국 각지의 장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모은 직물들 사이에서 자란 두 사람의 유년 기억이 공간으로 구현된 곳이다. 치앙마이 해자로 둘러싸인 구시가지에서 공예와 예술 커뮤니티의 연결 허브가 부재했던 빈자리를 메우고자 한 이들의 의도는 건축 구조에서부터 드러난다. 9개의 건물이 2개의 중앙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이 복합체는 마치 한국의 전통 한옥에서 안채·사랑채·행랑채가 ㅁ자로 중정을 둘러싸듯,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여러 채의 집이 가족들이 모이는 공동 마당으로 연결된 구조다. 재활용 티크목과 수제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은 치앙마이 전통 우산 제작에 사용되는 대나무 살과 닥종이의 섬세함을 건축 언어로 번역해 낸 것 같다. "조상의 지혜는 흐르는 강처럼 지속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철학이 공간 곳곳에 스며있고, 'Kalm'이라는 이름 역시 영어 'Calm(고요함)'에서 온 것답게 차분하고 평온한 공간을 지향한다.
그런데 막상 들어서니 예상했던 '조용한 전시 공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중정에는 서로 다른 높이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느긋하게 배치되어 있고, 녹색 빈티지 캐비닛 테이블에서는 누군가 노트북을 열어둔 채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있다. 무성한 화분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놓인 나무 의자에서는 방문객이 책을 읽으며 오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카페 공간의 진초록 선반에는 청화백자와 현대적 디자인의 찻잔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고, 바리스타의 손놀림에서 묻어나는 수십 년 내린 커피의 내공이 공간을 채운다.
이곳이 '보여주기 위한' 전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공간임을 깨닫는다. 벽에 걸린 직물들은 단순히 감상용이 아니라 여전히 만져지고, 냄새 맡아지고, 실제로 사용되는 살아있는 것들이다. 예상했던 '조용히 감상하는' 갤러리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장의 활기가 느껴진다. 전통 바구니 짜기 기법에서 영감 받은 벽돌 패턴 위로 조명이 은은하게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며, 전통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이곳에서 'Kalm'은 영어 'Calm(고요함)'에서 온 이름답게 차분하고 평온한 공간을 지향하지만,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창조적 에너지가 흐르는 고요함임을 깨닫는다.
3층에서 내려다본 중정의 풍경이 마음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것은 단순한 마당이 아니라 이곳 공간의 숨겨진 보석 같은 전망이다.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깔린 바닥 타일 위에 두 개의 검은 벤치가 정갈하게 놓여 있고, 그 주변을 무성한 녹음이 감싸고 있다. 건물 높이만큼 자란 나무들이 중정을 가득 채우며 자연스러운 차양막 역할을 하고, 회색 기와지붕들이 사각형을 그리며 이 비밀스러운 정원을 보호하고 있다. 뒤를 돌아보면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치앙마이 구시가지의 기와지붕들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멀리 사원의 황금 첨탑이 오후 햇살에 반짝이며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장관이다. 이 높이에서 바라보는 치앙마이 올드시티의 마천루는 그야말로 시간이 겹겹이 쌓인 도시의 연대기 같다. 이 높이에서만 들리는 도시의 숨소리 속에서, 어느새 외부 관찰자에서 이 공간과 도시의 일부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예상치 못한 변화의 순간이다. Kalm Village에서 보낸 몇 시간은 치앙마이가 단순히 '북방의 장미'라는 수식어를 넘어 과거의 것들을 혼합하여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창조하는 도시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Keep Craft Alive"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되어, 전통을 박제된 유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현재로 만드는 실천이었다. 검은 벽돌 사이로 스며든 빛이 시간의 층을 가로지르듯, 어머니의 직물 컬렉션에서 시작된 두 남매의 꿈이 지역 장인들과 전 세계 여행자들을 연결하는 허브가 되었다. 문턱을 넘어 다시 거리로 나서니 급할 것이 없다는 듯 발걸음이 느긋해져 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귓가에 맴도는 것은 조용하지만 확실한 발걸음 소리들이었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감성적인 예술 공간, 캄 빌리지(Kalm Village)는 전시 갤러리부터 로컬 디자인 숍, 한적한 정원까지, 치앙마이에서 꼭 가봐야 할 감성 명소다. 유명관광지의 소란을 벗어나, 조용하고 감성적인 오후 산책을 원한다면 이곳이 정답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