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시대, 기술보다 스토리텔링에 집중해야 할 때다 -
2024년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가 공개한 조사에서 생성형 AI를 도입한 글로벌 기업 500곳 중 73%가 기술은 있지만 스토리가 없어 마케팅 악화를 겪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2025년 8월 MIT가 발표한 연구에서는 생성형 AI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한 기업들 중 95%가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기술은 도입했지만 "무엇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 없이 달려온 결과다. 이는 19년 전 스티브 잡스가 예견한 현실이기도 하다. 2005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글로벌 IT 콘퍼런스에서 그는 의외의 주제를 꺼냈다. 최신 칩이나 그래픽 기술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월트 디즈니가 수십 년 전 해결한 문제, 즉 제작 후가 아닌 제작 전에 영화를 편집하는 방법을 강조했다.
전통적 영화 제작은 방대한 촬영과 뒤늦은 편집으로 이어진다. 최종본에 들어갈 분량의 10배에서 100배를 찍고, 편집실에서야 스토리의 결함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시점에는 배우는 떠나고, 세트는 철거됐으며, 예산은 소진된 상태다. 잡스는 이를 할리우드의 구조적 낭비라고 단언했다. 반면 디즈니는 철저히 달랐다. 모든 장면을 스토리보드로 세밀하게 설계하고, 임시 음성과 음악을 덧붙여 '가상의 완성본'을 먼저 만들어본다. 픽사는 이 방식을 디지털 기술로 진화시켰다. 잡스는 "우리는 스토리 스케치를 통해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먼저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이 원칙은 지금도 글로벌 기업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픽사 공동창업자 존 래서터의 철학을 잡스는 수차례 인용했다. "어떤 기술도 나쁜 스토리를 좋은 스토리로 바꾸지 못한다."이는 픽사의 위기 순간마다 되새겨진 불문율이었다. 기술은 아무리 진보해도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렌더링 엔진, 그래픽 혁신, 제작비 확대 등 이 모든 요소가 있어도 스토리의 힘이 부재하면 작품은 실패한다. 잡스는 스토리의 결함을 발견하면 과감히 멈추고 다시 고쳤다. 이 단호한 집착이 픽사를 '기술 기업'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기업'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잡스가 말한 원칙은 영화 제작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애플 역시 제품 사양이나 기술적 스펙보다 사용자가 경험하게 될 이야기를 먼저 설계했다. 아이팟은 단순한 MP3 플레이어가 아니라 주머니 속 1,000곡이라는 내러티브였고, 아이폰은 기술 집약체가 아니라 손 안의 생활 플랫폼이라는 이야기를 제시했다. 맥킨지 2025년 리포트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 중 오직 1%만이 성숙 단계에 도달했으며, 스토리 우선 전략을 도입한 기업들의 평균 브랜드 가치는 3년간 156% 상승했다. 결국 시장이 선택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직조해 내는 이야기다. 스토리가 없으면 기술은 소모품에 불과하지만, 좋은 스토리가 붙으면 기술은 생활을 바꾸는 힘이 된다.
잡스의 한 문장은 2025년 AI 전성시대에 더욱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ChatGPT가 하루 1억 개의 스토리를 자동 생성하고, 클로드가 수천 개의 마케팅 카피를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지금, 과연 당신은 혹은 당신 조직은 AI가 복제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진짜 이야기를 보유하고 있는가? 어떤 기술도 나쁜 스토리를 좋은 스토리로 바꾸지 못한다. 잡스가 남긴 이 문장은 단순한 제작 원칙이 아니라, 인공지능 시대 생존을 위해 인간이 반드시 붙들어야 할 마지막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