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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Jun 23. 2024

아빠 할미보단 엄마 할미

양보하는 아이들 



오빠와 새언니가 일을 하는 주말, 엄마는 두 조카를 봐주러 오빠네에 갔다.

세 살 터울의 조카들은 틈만 나면 싸운다. 엄마는 처음엔 싸움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만 봤단다.


그러다 흘리는 말로

“자꾸 싸우면 둘이 따로 살아야 한다. 하나는 엄마 할머니랑, 하나는 아빠 할머니랑!”


그랬더니 싸움만 부추긴 꼴이 되었단다. 서로 엄마 할미랑 살겠다고. 네가 아빠 할미랑 살라고. 


“아빠 할미를 어찌나 양보를 잘하던지.”


엄마도 나도 한참을 웃었다. 웃음 끝은 왜 이리 아린지.


‘조카들아, 아빠 할미 안 보이니?’






인기 없는 울 엄마가 짠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나도 엄마보단 아빠를 좋아했다. 엄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인기가 없다. 엄마와 아빠 중에 엄마가 엄한 역할을 맡았다. 매를 드는 것도 엄마였다. 우리가 싸우거나 잘못을 하면 엄마는 꼭 빗자루를 들고 우리를 소환했다. 그리고 굉장히 인도적으로 우리를 벌했다.


“각자 잘못한 만큼 말해. 몇 대씩 맞을 거야?”


오빠는 잘못의 경중에 따라 5대 아니면 10대를 맞았다. 한 대를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늘 한 대였다. 맞는 것도 분한데 아예 안 맞겠다고 할 순 없으니 늘 한 대. 몇 대를 맞을 건지 자율에 맡겼으므로 나름의 양심적 판단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으면 오빠보다 잘못한 날도 많았단다. 엄마는 늘 한 대를 외치는 쪼끄만 게 괘씸했단다. 하지만 그 한 대도 온갖 아양을 떨면서 피했다. 그렇게 피하는 사이 아빠가 오면 부부 싸움으로 번졌다. 애들을 때리지 않고 키우고 싶어 하는 아빠는 매를 엄마와 벌벌 떠는 나를 보며 왜 애들을 때리냐고 화를 냈다. 유일하게 부부싸움을 하는 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쏙 빠져 매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빠를 좋아할 수밖에. 


나의 한계를 나의 아이한테 기대한다는데, 

나 역시 애를 낳음 제발 외할미를 좋아하는 아이이기를 바라며.




엄마 기다려.
엄마를 더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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