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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Jan 25. 2019

음악을 연주하는 배달의민족

배달의민족의 멜로디, 하모니, 그리고 메들리.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나는 브랜드에 빠져본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아직도 빠져있다.


바로 배달의민족.
배달의민족 Vision 2.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


라라랜드, 어바웃타임, 노트북, 너의이름은 등 영화에 깊게 빠져본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브랜드에 빠져본 적은 처음이다. 브랜드에 빠지는 과정은 특별할 게 없었다. 물 흐르듯이 어? 어? 하는 사이에 이미 빠져 있었으니까. 어느새 배민의 행적을 쭉 훑는 것은 물론, 눈에 보이는 우아한형제들은 다 팔로우해버렸다.


애플, Rawrow처럼 브랜드 경험이 좋은 브랜드는 많이 있다. 한데 그중에서도 하필 배달의민족에 끌린 이유는 무엇일까. 내게 있어 배달의민족이 다른 브랜드와 달랐던 점은 무엇일까? 오랜 생각 끝에 그 이유가 배민의 '음악'때문이란 걸 알게 됐다. 배달의민족이 추구하는 가치 본연의 서비스, 그리고 우아한형제들을 통해서 내게 꾸준하게 전달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배달의민족의 멜로디

멜로디(melody): 음높이의 선과 리듬이 결합해 생기는 음운동의 형식.


한번 혹하게 되는 브랜드는 많다. 어쩌다 본 광고가 마음에 들어서, 어쩌다 알게 된 제품이나 서비스가 좋아서, 지인이 좋다고 추천해줘서. 하지만 브랜드를 꾸준히 이용한 적도 없고 좋아한 적도 없다. 잘 이용하다가도 썩 괜찮은 다른 브랜드가 생기면 쉽게 옮겨갔다. 하지만 배달의민족은 달랐다.


브랜드의 기본은 사용자 경험이 좋은 게 최우선이다. 배달앱을 자주 쓰는 상황이었기에 가장 서비스가 좋은 앱을 찾았고 배민을 쭉 사용해왔다. 차츰 개선되는 서비스가 눈에 보일 정도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경험 자체가 확연히 좋아서 다른 쓰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이런 서비스가 배민에 빠진 이유의 전부인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배민 문방구
배민 신춘문예


배달의민족의 특이함

'배달의민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독특함'이다. 재밌고 키치한 카피 때문도 있지만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색 활동들의 영향이 더 크다.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이나 '배민 문방구', '배민 신춘문예'와 같은 활동은 얼핏 보기에 배달앱인 배민이 하기엔 썩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잘 이해되 않는다. "배달앱을 하는 곳에서 치믈리에 자격시험을 연다고? 문방구도 해? 아니, 신춘문예까지 개최한다고?"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더 자연스럽다. 하지만 배민은 이런 활동들을 실행했고 앞으로도 실행할 것이다. 도대체 왜일까?


사이먼 시넥과 골든 서클(출처: TED 영상)

Why, How, What

혹시 위 사진의 영상을 본 적 있는가? 나의 경우엔 학교에서만 3번을 보여줬고 회사에선 2번을 찾아봤다. Why, How, What. 모든 일의 근본은 Why(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한테서 보게 되는 것은 Why를 해결하기 위한 What(무엇을?)에 해당되는 활동이다. 따라서 Why에 대해 모른다면 배민의 행적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Why를 놓고 보게 된다면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이나 배민 문방구, 무료 폰트 배포와 같은 활동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배민의 두 번째 비전은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이다. (첫 번째 비전은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배달산업을 발전시키자'로 어느정도 달성했다고 생각하여 Ver.2가 나오게 됐습니다.) 이런 비전이 생겨나게 된 이유는 배민이 음식을 먹으면서 가장 행복한 때가 바로 '좋은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먹고 싶은 곳에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Why에 근거해서 시작했다. 그래서 서로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활동들이지만 뿌리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고 우리에게 독특하면서 어색하지 않은 선율을 들려준다. 그렇게 배민만의 멜로디가 완성되었다.


배달의민족의 하모니

하모니(Harmony): 두 개 이상의 음정이 조화된 울림. 여러 음의 수직적 복합음.


제대로 된 하모니는 듣는 이로 하여금 즐겁게 만든다. 반대로 조화롭지 않은 울림은 듣는 이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 뿐이다. 모두가 하모니 연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선 불협화음이 들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배민의 경우는 어떨까. 배민의 음악에는 하모니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먼저 배달 앱을 설치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 30대가 많이 설치하며 배달통이나 요기요는 30대가, 배달의민족은 20대 사용자가 더 많은 추세이다. 배달의민족 브랜드가 20대, 홍대 문화, 키치함을 브랜드 키워드로 뽑고 이를 잘 반영한 결과이다. 재밌는 점은 배달앱을 설치한 유저 대부분이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중에 2개 이상 설치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배민 앱은 플랫폼 서비스이다. 플랫폼 서비스는 공급자와 소비자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서비스가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 아무리 플랫폼에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좋은 경험을 줄 공급자를 데려오지 못하면 서비스의 경험이 나빠지고 소비자가 이탈해버린다. 또한 공급자가 아무리 많아도 내게 필요한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배달앱의 경우는 제 아무리 좋은 음식점이 많아도 '내가 먹고 싶은 음식' 카테고리 내에서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그렇기에 2개 이상의 배달앱을 쓰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배민의 불협화음

배민이 처음부터 하모니를 들려준 건 아니다. 전단지를 모아 앱을 만들고 주문을 받으면 직접 가게에 다시 전화하던 배민이다. 처음부터 하모니를 들려줄 수 있었을 리 만무하다. 우선 가게 수를 최대한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전단지를 통해 가게를 접하고 전화로 시켜먹던 시절이었으니 앱으로 모아보고 전화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혁신이었고 만족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하지만 좋지 못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들이 종종 생겨났다. 별점을 통해 서비스가 별로인 가게는 점차 밀려나게 되어 있지만 무엇이든 처음이 있는 법이다. 가게가 처음 등록된 후에는 누군가 경험을 하게 되고 불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고객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배달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나 역시 주문 방법이 편하고 가게들이 많았기에 썼지만 배달을 시킬 때마다 내는 수수료가 눈에 거슬린 게 사실이다.


가게들의 불만도 한몫했었다. 수수료 문제나 경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배달앱에 등록해야 한다는 게 점주들의 불만이었다. 배달앱을 통해서 가게들의 매출이 높아지고 작은 가게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전부가 그렇진 않았던 것이다. 현재도 상단에 가게를 보여주는 프리미엄 제도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점주들이 있다. 눈에 띄는 불만들이 곳곳에 있었고 이들이 함께 부르는 음들은 당연히 조화롭지 않았다.


배민의 하모니

이런 불협화음을 하모니로 바꾸기 위한 배민의 노력은 대단했다. 우선 소비자의 입장에서 문제가 되던 안전을 위해 안심번호를 사용하고 수수료 0원, 환불제, 바로결제 기능 등을 도입했다. 점주들과의 상생을 위해서는 배민 상회를 통해 점주들의 needs를 충족시켜주면서 동시에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또한 점주들이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배울 수 있는 배민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배민 상회'와 '배민 아카데미'


배민의 우아한 형제들

불협화음을 없앤 배민의 노력은 그 자체로 보면 '좋은 기능'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좋은 기능을 제공했다고 브랜드를 사랑하게 되진 않는다. 좋은 기능은 다른 기업에서도 언제든지 제공할 수 있는 가치이다. 배민의 음악에서 하모니가 들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아한 형제들에게 있다.


각 기업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있고 목표, 미션이 있다. 하지만 직원들이 이에 공감하는 경우는 극히 적다. 심지어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럴 때는 자신이 맡은 업무의 성과만을 높이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배민의 고객을 이야기할 때 보통 배민 앱을 떠올리며 음식을 주문하는 고객을 떠올리지만 플랫폼의 역할을 하는 배민에게는 점주들 역시 한 사이드를 구성하는 고객이다. 카만녀로 유명한 김지현 님은 지난해 4월 우아한 형제가 되어 점주들과 배민을 잇는 일을 담당하게 됐다. 왼쪽은 사장님 사이트이고 오른쪽은 카만녀 김지현 님의 개인 계정이다. 전달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자신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카드뉴스를 활용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배민이 어떠한 혜택이나 기능을 제공해주는 게 아니라 점주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변화를 이끌어냈다 전달한 것이다. 배민이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게 그저 특정한 서비스가 아니라 어떠한 가치를 목표로 하고 있단 걸 알 수 있다.


배민에서는 우아한 형제들이 배민의 가치나 목표, 미션에 공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어떤 업무를 맡아서 진행하든지 하나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신기한 건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전달하려는 가치는 모두가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배민 내에서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점주들, 소비자들 세 주체가 함께 조화로운 하모니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이다.


배달의민족의 메들리

메들리(Medley): 둘 이상의 곡을 연결한 구성 및 그 연주 또는 노래.

"가장 마음을 이끄는 음악은 끝없이 다른 테마가 이어지는 작품이 아니라 같은 테마의 변형에서 나온다. 그게 바로 '멜로디'와 '메들리'의 차이다."

최근 책을 읽다 본 문구이다. '아, 어쩌면 이게 브랜딩과 맞닿는 말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됐고 배민 연이어서 떠올랐다. 위에서 말한 배달의민족의 특유의 멜로디가 좋고 하모니도 정말 좋다. 하지만 가장 좋은 점은 꾸준하다는 것이다. 배민은 항상 무언가를 새롭게 연결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항상 색다르게 느껴지지만 살펴보면 결국 같은 테마의 작품이었다. 브랜딩을 잘 한다는 건 바로 이런 메들리를 들려주고 있다는 게 아닐까?




아 7시 10분. 밤에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아침이 되어버렸다.

배민이 이렇게 치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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