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던 말을 꺼내게 됐다.
"저 이제 곧 퇴사해요."
주변 몇몇 지인들과 가족들한테 퇴사 소식을 전했다. 다들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경위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계획을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곤 다들 "괜찮아, 너라면 잘 해낼 거야."라고 위로의 말을 내게 건넸다. 지금처럼만 노력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면서.
'그래,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어딨어.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거지.'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노력만 하면 충분히 이뤄낼 수 있을 거다. 그래, 확실히 노력을 덜 했으니까. 언제 최선을 다한 적이나 있었나? 누구한테나 떳떳할 정도로 치열하게 산 적이 없었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작년 우연히 들른 모교에서 어떤 이들이 대화하는 걸 듣게 됐다. "야 모두의캠퍼스 그거 별 것도 아닌데 맨날 있는 척만 하더라. 별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거." 얼굴이 화끈거렸다. 화가 나서? 그들의 말에 반박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부끄러웠다. 남들한테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서비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성장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훗날 그들에게 우리가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결국엔 잘 해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내일 '모두의캠퍼스' 서비스를 종료하고 팀원들이 흩어지게 됐다.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여태까지 노력이 부족했던 거지 노력만 하면 결국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결코 자만에 차 있던 건 아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됐을 땐 정말 부단히 노력했다. 잦은 야근에도 일을 하는 게 즐거웠고 안 읽던 책도 찾아 읽게 됐다. 다른 회사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며, 좋은 회사를 만들어가기 위해 궁리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들을 때면 오히려 기뻤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종래엔 이뤄낼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으니까. 언젠가 진짜로 대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비스로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고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결국 해내지 못했다.
덤덤한 척 주변 사람들한테 괜찮다고 말했다. 다른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으니 그걸 해보면 된다고 웃어 보였다. 하지만 글을 적는 지금, 내일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꾹 참고 있던 왠지 모를 억울함과 답답함, 아쉬운 감정들이 터져 나온다. '열심히 했으니까 괜찮아. 너라면 잘 해낼 거야.' 참 위로가 되고 고마운 말이다. 하지만 열심히 했으니 괜찮다는 그 말이 마음에 들어오지 못 한 채 빙빙 겉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은 걸. 열심히 노력했지만 해내지 못했는 걸.' 결국 좋은 서비스로 만들지 못한 채 막을 내리게 됐다. 그 사실에 마음이 저리다. 너무나 쓰디쓴 실패다.
우연히 보게 된 사주가 생각난다. 다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20대가 가장 힘들 거야.'라고 전해 들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현재를 잘 지내고 있는데 뭐가 힘들다는지 모르겠다며 웃어넘겼다. 지금에서야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20대가 가장 힘들다는 그 말. 오히려 이젠 그 말이 마음 속 깊이 와닿는다.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안다. 하나를 배우면 모르는 게 열 개씩 늘어나는 기분이었으니까. 결과가 좋지 않다고 바꿔낼 능력도 없다. 실패 앞에서 무기력하고 부단히 노력해도 세상엔 해낼 수 없는 게 많다는 걸 몸소 깨달아간다. 그래, 20대가 가장 힘들다는 이유는 현실을 자각해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에 부딪혀 열심히 노력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세상이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진 않는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이 노력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그래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저 흘려보내줄 뿐이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부단히 노력해 나가되,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도 의미가 있다는 걸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자.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조금씩 성장해갈 수 있는 거니까.
'괜찮아. 너라면 잘 해낼 거야.'
그래, 지금 필요한 건 자책과 반성이 아니라 지난 시간들을 의미있게 만드는 일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것, 그리고 다시금 해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해야할 일이다.
괜찮아지자. 그리고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