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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Jan 29. 2021

'성추행 모의' 사건

슬프게도 내 주변 동료들 중에 가해자가 있다. 

지금 하려는 얘기는 2020년 늦봄에 있었던 일이다.

이 일은 이름조차 거론하기 아픈,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 이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일어난 일이었다.

그간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저장해두었었는데, 조금이라도 시작한 글의 조각들은 모두 나의 소중한 일부이기에 .. 다시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간사한 것인가..


그 당시에 머리 끝까지 치밀었던 분노는 희미해졌다. 

나는 또 아무런 액션을 하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돌아보니 참 비겁하고 용기가 없었던가, 하는 후회도 든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을 그저 지나쳐오면 또 아무렇지 않게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먼 미래에 지금을 돌이켜보면 견디는 시간들이 내게 좀더 약이 되었기를 바래본다.


그날의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차장님, 점심 드시고 시간 좀 내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팀 동료인 남자 차장이 카톡을 했는데, 톡에도 표정이 있다고 해야하나...

왠지 싸~한 기분이 들었다.


"차장님 뭔데요? 말해줘요."

"음, 이거 얼굴 뵙고 말씀드려야 할것 같아서요. 식사하시고 봐요."

"차장님~ 지금 얘기해줘요. 저 밥 못 먹어요. 무슨일인데요???"


옆자리 후배의 말로는 남자차장이 감사팀 차장의 연락을 받고 나갔다는 것이다.

나와 관련있는 감사 사건이 발생한걸까..


 아무리 잘못한 일이 없어도 감사니 경찰이니..이런 곳에서 연락이 오면 쫄리게끔 되어 있다.

나는 빨리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다.


"아 저기 오늘 감사팀 OO차장이 말걸어가지구 얘기를 좀 하고 왔는데요, 

오늘 아침에 레드 휘슬로 제보가 하나 들어왔데요.

그 내용이 '차장님이랑 A부장님이 지금 팀장이랑 실장을 제거하려고 성추행 모의를 하고있다' 라는 내용이라면서 저한테 저희팀 분위기랑 차장님이나 A부장님은 얘기를 자주하냐고 물어보네요. 

근데 차장님 감사팀에서도 이 내용이 너무 말도 안되는 막장드라마같은 내용이라 감사를 할것 같지는 않고요. 그냥 좀 확인하는거래요."


'성추행 모의??'


성추행 모의란 즉, 누군가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서 일부러 성추행을 유도하는 음모를 모의한다는 뜻인것이다. 그런 범죄를 내가 계획하고 있다고 누군가가 익명의 제보앱에 올린것이다. 


첨에 전화기 너머로 그의 얘기를 들었을 때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이기에 당당하게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곱씹을수록 황당스럽고도 화가 났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속 이야기가 내 일이 되었다.


2년전에 종영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하고 있다.

드라마속 여러가지 스토리 플롯 중 하나는 회사에서의 대표이사 재신임을 놓고 펼쳐지는 정치모략이다.

젊은 대표이사는 20대의 어린 계약직 사원을 매수하여 본인의 향후 자리보전에 위협이 되는 부장을 감사문제로 그만두게 하려는 계략을 세웠다.

대표이사가 계약직 사원에게 지시한 내용은 남자 부장에게 접근하여 그를 유혹해서 성추문 사건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내 이름이 거론된 레드 휘슬에 올라온 제보 내용 대로라면, 내가 그 계약직 사원의 역할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건 정말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스토리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체득된 그 어떠한 경험이나 생각의 파편 중 먼지처럼 미세한 어느 하나에서라도 도저히 끄집어 낼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얘기인 것이다.


제보자에 따르면, 내가 드라마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지금 현실에서 실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을까?


점점 더워지고 있는 어느 늦봄의 점심시간, 

복잡한 심경으로 분식집에서 김치볶음밥을 종잇장처럼 씹으며, 

나의 행동 어떠한 조각에서라도 내가 성추행의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접근한다고 의심을 살만한 일이 있었던가를 생각해보았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재택근무중이었던 기간동안 또 한번의 조직개편이 있었다.


1월초에 팀장 자리를 보전했던 몇몇이 면팀장 발령이 났고, 그 자리를 또 다른 누군가가 메꾸었다.

면팀장 발령이 난 사람중 한명이 나의 팀의 팀장이었다.

나의 희망퇴직을 극구 말렸던 그가 이제 더이상은 나의 팀장이 아닌 것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팀장은 몹시 당황해했고 힘들어했다.

이미 두 번의 경험이 있는 나는 너무나도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무관심하고 남들의 일은 빨리 잊는다.

그렇지만 당사자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 

나는 내가 해줄 수는 있는 위로를 그에게 해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겪어봤으니..얼마나 쓰린 시간을 그가 견뎌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갑자기 할일이 없어진 전 팀장과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자주 들어주었다.

내 잘못이라면 이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누군가가 레드휘슬에 나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드라마에나 나올듯한 소설을 휘갈길 빌미가 되었는가? 정말로...?


모두 사건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해석이 있었다.

내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음해하기 위해서 "성"과 관련된 주제로 루머를 양산했다는 것이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최근 성추문과 관련하여 시장이 자살까지 하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때였다.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성추행"이다. 

이런것을 어떤이유에서든간에 확실하지 않은, 그저 재미만으로? 아니면 어떠한 숨겨진 검은 의도로라도 입에 올리면 절대 안되는 일이다. 

성추행의 댓가는 그렇게 무겁고 성추행이란 그렇게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준 차장은 감사팀 차장 걱정을 했다.


"배차장님, 이거 감사팀에 O차장이 그냥 제가 친하니까 알려준거라..이거 공론화하시면 그 사람이 곤란해져요. 뭐 아무것도 없고 이렇게 올라온 거라 감사를 하진 않을거래요."


레드 휘슬이라는 앱은 제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이것은 꼭 감사를 해야한다. 수면위로 이 일을 올려야만 한다.

그렇게되면 나는 제보자를 경찰서에 무고죄로 고소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못된 짓을 하는 인간은 벌을 받아야만 한다. 


이 제보의 중심에 있는 또 한명의 인물, 전 팀장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 또한 실소를 했지만, 그의 반응은 나와 사뭇 달랐다.


"배차장, 이거 어떤 미친놈인지 내가 좀 알것 같은데.. 이걸 배차장이나 내가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문제삼기 시작하잖아? 그러면 사람들이 '어, 쟤네들 진짜 뭐 있는거 아냐?' 이렇게 나온다니까. 

그러니까 그냥 덮고 넘어가. 이게 이게 말도 안되는 얘기잖아. 둘이서 성희롱 모의를 한다고?

누가 쓴건지 내가 딱 보니 알겠다. 쯧쯧"


그는 제보자 색출에 촛점을 맞추었다..


"이거 어떤 놈인지 내가 알것 같으니, 실장님한테 말씀드릴께. 실장님도 알고 계셔야 해. 감사가 갑자기와서 이런 얘기하면 실장님이 오해하실거 아냐."


라면서 그는 급하게 일어나 실장에게 면담을 청하러 갔다.


"실장님이 뭐라고 하셔요?" 라고 내가 물었다.


"아 실장님이 '거기 내 이름도 나와?' 라고 하시던데?"


실장은...그 요상한 제보글에 자기 이름이 올라온 것을 불쾌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 여직원들하고는 정말 조심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상기했을 것이다.


결혼까지 한 여자인 내가 이런 몹쓸 제보의 소재거리로 쓰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분노하는 것은, 거기 이름이 올라온 사람들 중 나밖에 없었다. 

제보의 등장인물 중 여자라는 이유로...성추행 모의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스토리를 완성시키는데 활용된 나를 분노해주는 사람은 역시..나 혼자 였다.


모두 각자의 생각에 빠져..각자 관점에서 분노하고 각자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했다.


나를 가장 걱정해줄거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겠지..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고, 근거없는 소문 끝에 칼날이 있다.


그날 아침 9시쯤 이 제보를 작성해서 올렸을 작성자의 행동을 재구성해보았다.


이 시나리오는 작성 당일 보다 이전에 계획되었을 것이다.

이전부터 어떻게든 제보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가해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사건이 터지자, 한꺼번에 일타 쌍피로 보낼 수 있는 아이디어의 묘수가 떠올랐을 것이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어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이 앱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올려도 발각되지 않는 다는. 

그렇지만 감사팀에서 내용은 확인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5분도 채 안되는 시간만에 그 사람은 한 여성의 가슴에 칼을 꽂고 사회적인 살인을 시키려고 하였다.


왜, 무엇때문에 그랬을까? 

대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길래..


세간에 들리는 여러가지 이야기들, 소문, 루머..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고 내가 직접 겪지 않은..그렇지만 사실화되어버리고 믿어버리게 되는 

이런 근거없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


'그래? 아님말고' 식의 던져보는 돌덩이들.

그렇게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고, 근거없는 소문의 끝에 달린 칼날이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좀더 선하고 신중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지난 날 나 또한 누군가로 부터 전해들었던 이야기로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던지, 내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또 누군가에게 옮기지 않았던지..나를 돌이켜보았다.


그 허위 제보자가 어떤 목적이었던지 간에 그는 너무도 쉽게 사람 하나쯤 죽이는 선택을 한 것이다. 



슬프게도 내 주변 동료들 중에 가해자가 있다.


나는 이 대목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것 같아 스스로 너무 괴로웠던 대목이다.


슬프게도 내 주변 동료들 중에 그 허위 제보자가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우리팀은 영업의 중심에 있는 팀도 아니고 특수한 조직이라 이 조직은 전사에 어떠한 영향력도 없고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내부에서 관계를 알고 사람들을 아는 ..내 주변 바로 10m안에 누군가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서슴없이 이런 소설을 회사의 부정을 제보하는 앱에 올릴 정도로 내가 그렇게 그에게 잘못한 것이 있었던가...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만큼이나 가슴 아프고 슬펐던 것이..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우리팀안에 그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누구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팀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을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부분이 가장 슬프다.


그는 의도한 목적을 이룬 것 같다.


이 사건은 그저 헤프닝으로 끝났다.

이런 허위 제보를 하지 않도록 전사에 경고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감사에서 이 제보를 문제 삼지도 않았고 조용하게 넘어갔다.


그러나 이 사건은 흔적을 남겼다.


나는 더이상 면팀장이 된 전팀장과 자주 차를 마실 수 없게 되었고 그와의 대화가 줄었다.

그 이후에 실장과는 따로 마주하며 1:1로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의 목적은 이런것이었을 것이다.


그저 이렇게 한번 헤집는 것. 잡음을 만드는 것.


감사가 따로 실제 감사를 하진 않았지만, 레드 휘슬에 올라온 모든 제보는 정리되어 보고가 된다고 한다.

그저 그런 추잡한 일에 이름을 올린다는 자체만으로 불명예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흠집내기를 하고싶었을 것이다.

애초에 감사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너무나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의도한 목적을 이룬 것 같다.


그가 삼은 가장 큰 타겟이 나였는지, 아니면 전 팀장이었는지..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나인 것 같다. 


여자이기 때문에. 

성과 관련된 음모에 휘말려야 한다는 것. 

성과 관련된 음해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


나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그가 만들고자 하는 스토리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어떠한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명백한 허위 사건인데다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일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그저 견뎌냈던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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