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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Jan 06. 2020

나이와 경력 꽉 찬 여자의
유리천장과 애벌레 기둥

최연소 여성 임원의 탄생, 그리고..


연말이 되어 여러 대기업 그룹 임원 인사 소식을 각종 언론에서 접할 수 있었다. 

올해는 어떤 대기업에서 30대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는 기쁜 소식도 있었다.

유리천장을 뚫고 올라간 30대의 그녀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러나 나처럼 일반적인 능력치를 보유한 여성 직장인은 남자들보다 조금 빨리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그들과의 직장에서의 시간적 격차는 점점 좁아져 버리고 만다. 

더러는 어떤 사정에 의해서 직장생활을 훨씬 늦게 시작한 늦깎이 남자 직원들에게도 추월당하고 만다. 


대학교를 갖 졸업하고 뛰어들었던 직장생활에서 쌓아온 경력은 어느새 나보다 더 경력이 짧은 남자들을 리더로 모셔야 하는, 그저 지나간 추억의 세월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생활을 남들보다 좀 더 일찍 시작해서 승진이 빠르다고 느꼈던 자부심은 과장급 정도까지 였다.

그 이후부터는 빠르게 모든 것이 뒤집어진다. 

평균수명은 여성이 더 길지만, 여성에게 직장에서의 커리어 내리막이 훨씬 빨리 찾아오는 이유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조직의 피라미드는 가파르게 좁아지고 경쟁의 양상은 경력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처럼 정치력도 비루하고 든든한 배경도 없는, 게다가 여성들에게는 오랫동안 해온 직장생활의 경력이 결코 훈장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더 많잖아요!"


전 직장에서 나는 부장이었다.

이것은 부장 2년 차 때의 일이다.


우리 팀에는 나보다 나이가 2살 많은 남자 동료가 2명 있었고, 

나머지는 나보다 어렸다.


사업부 저녁 회식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는 글로벌 조직에 있었기 때문에 국내 근무직을 제외하고 해외를 왔다 갔다 하는 출장 인력, 본사에 잠시 머무르는 주재원 등 회식 자리를 하면 다양한 많은 동료들이 함께 하여 왁자지껄하게 큰 식사 자리와 술자리가 벌어지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우리 팀 동료들과 함께 앉아서 고기를 구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얘기였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다만 대화를 편하게, 회사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었던 기억밖에 없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다시 생각해보면 다르지 않을까,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은데요?"

"글쎄, 내 생각은 다른데...?"


뭐 이런 느낌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큰 소리가 나면서 "OOO가 나이가 더 많잖아요!"라고 누군가가 소리를 치는 것이다. 그 순간도 그가 소리 지르는 대상이 나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술에 취한 주재원 한 명이 내게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내가 나보다 나이 많은 2명의 남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존댓말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즉, 연장자에게 예우를 갖추지 않은 어린 여직원이 도저히 못 봐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는 그냥 나이 많은 남자였다.


나는 당시 부장이었고, 두 사람은 부장 승진을 앞둔 과장 직급이었다.

물론 우리 회사는 부장, 과장 이렇게 직급으로 호칭을 부르는 회사는 아니었기에 화를 낸 주재원이 내가 그들보다 선배라는 것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내 말이 깍듯하지 않았던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가 내게, 나이가 많은 남자들에게 존댓말을 하라고 그 공개된 자리에서 소리를 치는 것은 정당했던 것일까?


출발선이 같아도 남자가 선배다.


신입으로 입사한 여자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직장에서 여자라서 좀 부당하다고 느낀 적이 있어?"

직장생활을 얼마 하지 않았던 후배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같은 인턴이었는데요, 선배님들이 남자 동기를 더 선배 취급하는 거예요. "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든, 경력이 10년, 20년에 이르든 경력보다는 나이, 여자보다는 남자가 언제나 이기는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점점 조직에서 위로 올라 갈수록 사원, 대리 시절에 나와 함께 했던 여자 동료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아등바등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애쓸수록 나의 성별과 나이는 내게 큰 장점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아예 어려서 "최연소"이런 타이틀을 붙여줄 수 있다면 그나마 낫다. 독보적인 존재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년 넘어 20년 언저리쯤에 이른 경력을 가진 여자는 선배, 동료, 남자 후배들과 경쟁하다가 어느샌가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커리어를 마감하고 마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밟고 올라선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


내가 아주 좋아하는 책,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노랑 애벌레와 줄무늬 애벌레가 올랐던 애벌레 기둥이 있다. 

모든 애벌레들이 그 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서로를 짓밟으면서 올랐던 그곳.


내가 얘기하는 '유리천장' 넘어의 그곳도 결국 애벌레 기둥의 맨 꼭대기와 같을 수 있다.

올라가 봤자, 애벌레일 뿐.. 그 마지막에 다다르면 스스로 땅으로 떨어질 결말밖에 남지 않은, 애벌레일 뿐.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내 나이와 경력으로 저 위에 못 올라갔다고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런 것들이 심리적인 안도감이다.

여기 이 어마어마한 기둥을 만든 애벌레들 중에서도 이 기둥에서 오래 버텼던 녀석, 최근에 오른 녀석.. 막 섞여있을 것이고, 오래 기둥에서 버틴 것이 기둥의 상단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나의 조직생활은, 조직 안에서 내가 밟을 수 있는 존재들보다 나를 밟을 수 있는 존재들이 훨씬 많다.

나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게 과연 나이였는지, 성별이었는지, 업무역량이었는지.. 무엇하나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런 오묘한 힘이었을지라도, 밟힐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더 높이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후회만 남는 상처뿐인 애벌레 기둥 생활이 될 것이다. 


노랑 애벌레처럼 결단 있게 내려와서 우아하게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준비도 용기도, 여건도 안 되는 나 같은 사람들은 애벌레 기둥에서라도 좀 더 오래 버텨야 할 수도 있다.


밟고 올라선 자들을 부러워말고, 적개심도 가지지 말자.

결국 그 끝이 무엇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또 오늘 하루 나의 경력과 나이와 여성으로서, 아니 한 일꾼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나를 스스로 달래 본다. 


                  출처 : 꽃들에게 희망을 (트라니 폴러스 저, 시공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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