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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Dec 20. 2019

하늘에서 떨어진 신입사원

40대 직장인, 엄마 그리고 여자의 사건들

아슬아슬한 나의 관운(官運)


사주에 관운이 있으면 감투를 쓰는 관직에 오르게 된다고 하는데, 요새 식으로 해석을 하면 조직에서 '장'을 맡는 것도 이런 관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조직에서의 평가는 업무 능력과 그 사람의 됨됨이만으로 100% 설명할 수가 없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걸 보면 나는 별로 안정적인 관운을 타고나지는 못한 것 같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기만의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팀장이 아닌 상태에서 TF의 리더 역할을 6개월 넘게 했었는데 이건 팀장으로서 팀을 이끄는 것과는 또 다른 난이도의 일이었다.


마침 면 팀장이 되어서 팀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해외 이커머스 관련해서 조사를 좀 해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날은 새로운 조직에 따라 레이아웃이 바뀌어서 자리이동을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3시간 안에 자료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다. 여하튼, 그리하여 나는 본부장 직속의 TF로 발령을 받았다.


남자 선임이 오자 신입사원의 태도가 달라졌다.


층층 시야 팀장, 실장이 없으니 좀 더 일하기는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조직적인 문제가 닥쳐왔다.

TF는 처음에 나,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신입사원, 두 사람이서 근무를 하다가 3명의 인력이 추가로 합류했다. 그중 한 명은 전 팀에서 나를 참 잘 보좌해주었던 선임급 남자로, 물론 내가 나이도 많고 경력도 길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와 나는 이제 직급 떼고 동등한 입장에서 같이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오고 나서 달라진 것은 함께 일하던 신입사원이었다.

중국에서 아주 좋은 학교를 나왔고, 늘 확신에 찬 어조로 얘기를 하고 자기 관리까지 성실하게 할 줄 아는, 최근 보기 드문 완성형의 젊은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언제나 내게도 예의를 갖추었었는데, 선입급 남자 동료가 오자, 그와 함께 한 목소리를 내며 일의 부당함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본부장이 지시하는 일중 수긍하기 어려워 보이는 한 가지의 일이 있었는데, TF의 리더로서 나는 이 일을 관철시켜서 추진해야 했고, 조직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팀장도 뭣도 아닌 나의 리더십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보호받지 못하며 무시와 조롱 어린 TF 구성원들의 태도를 견뎌내야만 했다. 당연히 내가 지시하는 일이 제대로 갈 리가 만무했다. 조직장의 자격을 공식적으로 승인 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리더 역할은 너무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부정적인 의견이라도 의견을 내는 팀원을 선호하는 쪽이다.  좀 피곤하더라도 의견을 내면 존중해주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팀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나 또한 완벽하지 않고 의사결정에서의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시각에서 다른 의견들을 내준다면 훨씬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그들의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해보았다. 그리고 합의점을 찾고 싶어 그를 설득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신입사원의 태도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져 갔으며, 나의 지시가 부당해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말은 앉은자리에서 하게 되는 사태까지 번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건 설득하고 수용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팀장이었더라면, 이들이 이렇게 했을까? 내가 팀장이 아니더라도 회사의 업무를 위해서 나는 리더로서 할 말을 하고 역할을 수행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조직원들을 소집했다.

'나는 공식적인 리더는 아니지만, 본부장이 리더로 일을 하라고 역할을 부여한 사람이고 나는 그 역할을 하겠으니, 도저히 일을 못할 것 같으면 다른 조직으로 보내주겠다. '고 얘기를 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신입사원은 '스스로의 힘'으로 조직을 떠났다.


일주일 후 본부장이 나를 불러서 손바닥 크기 만한 쪽지를 보여주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국회의원 OOO 사무실 , 보좌관 OOO

OO TF의 OOO 사원을 다른 팀으로 전배 요청함'


알고 보니, 그 신입사원이 대단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는 그가 채용비리로 입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PT면접 평가위원 중 한 명이 나였기 때문에 나는 그의 면접 과정 중 일부를 참여하며 그가 어떤 인재인지를 직접 보았다.

그는 성실했고, 준비를 많이 한 노력의 흔적이 역력했고 잘했다.


쪽지를 내게 보여준 본부장은, '여기 팀을 원하지 않으면 가고싶은 곳으로 보내줘야지'하고 말했다.

나도 국회의원 OOO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 보좌관이 무슨 파워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더 이상 그 신입사원과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나는 원하면 팀을 바꿔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나의 제안을 내치고  '스스로의 힘'으로 조직을 벗어났다.

그는 도저히 리더로 인정할 수 없는 나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했고, 부모님 찬스를 써서 그가 그렇게도 원하던 호탕하고 발 넓은 남자 팀장이 있는 팀을 선택해서 부서이동을 했다.


아마 그는 집에 가서 부모님께 호소했을 것이다. 능력도 없고 성격도 까칠한 여자 밑에서 일하기 싫다고. 부모님께 대신 얘기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내 제안은 자존심 상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지만 그는 부서 이동을 요청할 정도의 든든한 백이 있었으니까. 그는 내게 자기의 파워를 아낌없이 보여주었고, 나는 그의 당담함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 인정받은 성공적인 회사생활을 할 것이고, 회사를 나가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성공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성실한 태도, 자기 관리, 영민하고 좋은 센스 등을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지켜줄 것이니까. 우리나라는 그런 곳이니까. 나는 그가 부모의 스펙까지 본인의 능력으로 등에 업고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모가 잘해야 한다.


뉴스에서 누구 아들이 어디에 입사를 했는데 채용 비리더라.. 이런 뉴스를 최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태어나서 눈 떠보니 우리 아빠 엄마가 유명한 셀럽인 아이도 있을 것이고, 대단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도 있을 것이고, 찢어지게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의 아이로 삶을 시작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아이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선택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가난한 외벌이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출발선이 다르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된다.

부모가 유학을 보내주고, 부모가 집을 사주고, 취직을 시켜주고..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는 일은 부모가 도와줄 수 있다고 하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민폐를 끼치는 것, 가령 채용비리나 이런 인사이동 개입 등 은 도와주지 말아야 한다. 본인에게만 영향이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도움은 눈을 떠보니 가난한 노동자의 아이로 태어난 어떤 아이의 자리를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


공평하지 않았던 출생의 출발은 그렇다 쳐도, 당당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부당한 개입을 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것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던지는 불만일 수 있다.


나는 가끔 그를 마주친다.

예전처럼 그가 대견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밑바닥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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