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엄마 그리고 여자의 사건들
조직개편에서 면팀장이 되었다.
직장내에서의 조직개편은 일년에도 몇번 씩있는 조직운영의 과정중 하나이다.
회사는 다양한 목적으로 조직개편을 하는데 우리 회사처럼 주인이 없고 월급 대표가 바뀌는 회사에서의 조직개편이란 신임 대표 사람으로 주요 요직이 재편된다는 의미도 있다.
기록적인 더위가 있었던 여름이 시작되는 2017년 6월, 갑작스러운 조직개편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회사는 전임대표가 급하게 사임을 하고 신임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중간 과정중에 있었고, 임시대표가 파견되어 업무를 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대표이사의 권한 중 가장 막강한 권한이 '인사권'인데, 원기옥을 모아모아 한방에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조직개편인 것이다.
보통 조직개편은 신임대표가 오면 통과의례처럼 진행되고 조직개편에서 승기를 잡은 사람, 뒷방으로 물러나는 사람 등 희비가 교차되는 큰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신임대표가 오지도 않았는데 조직개편이 났다.
그리고 팀장급 이상이 대거 물갈이가 되었다.
나 또한 물갈이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2년동안 내가 처음부터 만들어서 인력 채용에, 전략에, 운영까지..
노력과 애정을 쏟았던 나의 팀은 사라졌다.
팀은 기존 기획조직과 통합되었다.
그리고 보란듯 - 아마 퇴사하라는 얘기였던것 같다- 다른 조직으로 발령이 나있던 전팀장이 통합된 팀의 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평소 스스로 업계에서 '나는 전문가'다라는 자부심으로 일해왔던 나는, 나보다 업력이 짧고 일도 잘 모르면서 사람 사귐에만 집중하는, 내가 도저히 팀장으로 인정할 수 없는, 그가 다시 팀장이 된다는 것에 심한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나는 전문가이다. 그냥 직장인이 될 수는 없다.
(정상적인, 건강한) 조직개편은 향후 회사가 가고자 하는 전략적인 방향에 맞게 조직이 움직이도록 부서를 설계하고 사람들을 배치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시대표에게 열과 성을 다했던, 평소에도 정치적이라고 소문이 난 어떤 본부장이 조직개편의 배후에 있다는 소문이 났다. 왜냐하면 그의 이너서클에 있는 남자들이 다 새로운 팀장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처럼 그에게 별로 도움이 안되면서 전 대표가 아꼈던 사람들은 모조리 숙청되었다.
어찌보면 이런 불만이 유치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조직개편 되었으면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니가 면팀장 되었다고 지금 이렇게 불만이야?'
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면팀장이 될 사유도 없었고, 더더욱 통합된 큰 조직의 팀장은 그런 역량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말 좌절스러운 일은 신임대표가 온 이후였다.
내가 큐레이션팀을 이끌며 일구어왔던 성과의 과실들은 모두 새로운 팀장의 몫이 되었고,
나는 떠돌이가 되었다.
'자리에 연연하지 말자' 회사생활을 다룬 책들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면팀장되고나면 너무너무 기분이 드럽고 부끄럽고, 팀원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연연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는 좋겠지.
그러나 부당한 무시를 당했을 때 가만이 있는 것은 자리보전과 무관한 일이다.
이렇게 오너가 없는 직장에서 네트워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은 들러리가 된다.
들러리는 좋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사랑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해온 나의 경력들이 이렇게 정치적인 관계들과 맞물리면서 묻혀지고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저 이팀 저팀을 전전해도 괜찮은 '그냥 직장인'이 된다는 것이 가장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슨일이든 월급만 주면 수행하는 그냥 직장인이 아니다.
나는 내 일에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다.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없으므로, 나는 스스로 나의 전문성을 지키기로 했다.
When they go low, I go high.
'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는 영어문장은 미쉘 오바마가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언급한 문장으로 유명한데, '그들이 비열하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의를 지킵시다!' 이런 의미이다.
정치적인 권모술수로 요직을 차지할 수 있다. 정치를 잘하고 네트워킹에 능하고 실무역량보다는 관계로 일을 잘 풀어나갈 수 있다면, 사내 정치가로서 승승장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것들이 하기 싫고, 할 수 없는 나같은 사람은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고 지켜야 한다.
나는 그들이 서로 모여서 형님, 동생 하는 동안, 책을 쓰기로 했다.
일은 일이다. 나는 전문가이므로 일로서 승부할 것이고 전문역량으로 버텨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미루고 미루어왔던 나의 첫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시련을 힘점 삼아 지렛대를 들어올리자.
시련이 올 때, 그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해내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시련이 올 때, 이것을 어떻게 하면 내게 유리하게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하자.
나를 좌절감에 떨게 했던 부당한 조직개편은 내게 책을 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나는 책을 완성했고, 내 나름의 목표를 이루었으므로 더이상 일말의 증오도 후회도 없다.
내가 책을 쓰는 동안 나는 다시 팀장이 되었고, 다른 조직을 이끌었다.
그러나 더이상 내게 그 '팀장'이라는 바람앞의 등불같은, 평생 내것이 아닌 타이틀은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찐을 원하고 찐을 가졌다.
책은 평생 남는 나만의 컨텐츠이다.
나는 책을 출간함으로서 조직개편에서 내가 당한 부당함을 극복했고, 스스로 승리자가 되었다.
그게 나만의 정신승리면 좀 어떤가.
내가 당당하고 치유되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나는 조직개편을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조직개편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2017년과 같은 마음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또 그 조직개편을 힘점 삼아 내 커리어를 풍요롭게 만들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