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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Aug 26. 2022

팀원의 메신저 창을 우연히 보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슬펐다.

내가 팀 만들기 VS. 잘 돌아가는 팀에 팀장 하기


1. 신규 팀의 팀장으로 일하기

지금까지 나는 새로 생기는 팀에 첫 번째 팀장을 맡았었다.

팀의 미션을 수립하고 팀의 R&R을 정의하고 R&R에 따라 인력을 새롭게 채용하기도 하였다.

팀의 밥그릇, R&R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즉, 누군가의 팀으로부터 일부 받아오거나 새롭게 일거리를 만들어야만 하기도 한다.


첫 팀장이 되었을 때, 나는 디자이너를 하다 업무를 전환한 정규직 한 명과 계약직 한 명을 데리고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팀을 꾸려주시면서 격려해주시던 대표님, 본부장님의 역할은 딱 그까지였다.


팀의 R&R을 수립하고 조직도를 짜서 본부장에게 보고를 하고 인력을 한 명씩 한 명씩 충원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는 동안 조직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것저것 미션들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졌고 한 명씩 조인하기 시작하는 인력들과 함께, 몸으로 야근으로 때워가며 막아가며 한 발씩 한 발씩 내디뎠다.


신임 팀장으로서 리더십을 인정받고 팀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나는 항상 생각했다.

우리 팀의 일은 지금까지 회사가 하지 않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나는 정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아쉽게도 우리 팀에는 시니어가 딱 한 명 있었기에 전략을 수립하고 큰 기획을 하는 업무의 많은 부분을 나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팀이었기에 다행히 팀원들은 정말 열정적이었다.

데이터로 검증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가설을 생각하고 그 가설을 입증할만한 분석의 관점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으로 데이터도 어마어마하게 분석했다.


분석 내용을 트래킹 하기 위해서 새로운 리포트 템플릿을 만들었고, 우리는 매일매일 모여서 리뷰를 했다.

나는 별로 꼼꼼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팀은 플랫폼 전반을 운영하는 조직이었기에 완전 꼼꼼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팀원들에게 엄청난 디테일함을 요구했다. 고맙게도 팀원들은 정말 잘 따라주었다.

나는 팀의 모든 업무를 다 꿰고 있었고  모든 내용들은 나의 머릿속에서 나왔고, 도출된 인사이트로 적용해서 성과를 보는 부분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그만큼 권한 위임이 어려웠고, 실무에 깊숙이 인볼브 하다 보니 팀원들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반면, 주변의 팀장들과 협의하거나 팀 외부의 조직 간 관계를 잘 풀어내는 정치적이고 역학적인 부분들을 소홀히 했다.



2. 이미 안정적인 팀에 팀장으로 들어오기

나는 내가 정말 내 생활과 모든 정신을 갈아 만들었던 팀이 전신이 된 팀의 팀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팀의 규모는 두배로 커져있었다. 내가 데리고 일했던 팀원 중 일부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안정된 팀의 가장 큰 특징은 머리 굵은 남자 시니어가 3명이 있다는 것이었다.

3명이 각자 파트를 맡아서 파트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파트장들 중심으로 업무를 파악하고 이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팀 내에서 해야 할 가장 우선순위의 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게 쉽지는 않았다. 팀원들과 매일 점검했던 리포트 양식은 꽤 간소화되어 있는 반면, 운영해야 할 영역들은 엄청 많아지고 복잡해져 있었다. 게다가 내가 수출조직에서 일하는 동안 이 팀에서 일어난 일들의 히스토리를 모른다는 것도 팀장으로서의 약점이다.


게다가 내 전임 팀장이 아주 잘했던 분이어서 이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면 갑자기 떨어진 점령군 같은 존재일 것이다. 내가 업무를 지시할 때, 팀의 운영적인 결정을 할 때, 이들은 나와 전임 팀장을 비교하며 나의 점수판에 평가를 매기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우호적인 분위기였지만 존재감 없이 아웃사이더였고 모두 같은 팀원이었던 내가 팀장이  이후 우리 사이에는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다.


팀의 모든 업무를 속속들이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로 조직이 돌아가고 있었다. 100% 내 손바닥 안에 팀의 모든 업무를 놓고 들여다보던 지난날과는 참 달랐다. 여전히 나는 좀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업무 지시를 할 때 나의 시야는 여전히 좀 좁다. 팀 운영의 히스토리를 잘 모르고 어떤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아직 연관 짓기가 익숙하지 않은 데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정보 또한 제한적이다 보니 업무 지시를 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내 리더십이 여전히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최근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조직 운영의 개념을 떠올리며, 권한의 적극적 위임이라는 팀장의 역할을 생각하며 팀원들과 함께 으쌰 으쌰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러나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업무 지시를 하면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다. 불완전하고 히스토리가 고려되지 않은 나의 업무지시가 문제였을 것이다. 여하튼 지금은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기에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의견 주시면 방향을 잡아볼게요. ' '제가 아직은 판단이 잘 안 서네요.'

와 같은 말을 했다.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어떤 팀원이 듣기엔 팀장으로서 부족하고 나이브해 보였을 수 있다.




지난날 내가 팀을 새로 만들고 새 조직의 팀장 역할을 하느라 끙끙댈 때 이미 잘 돌아가고 있는 팀에 발령받은 팀장들이 너무 부러웠다.  팀장을 거저먹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는 몰랐던 것이다. 얼마나 빠르게 파악하고 팀장으로서 팀을 장악할 수 있느냐가 또 팀장의 리더십이라는 것을.


새로 팀을 만드는 것과 이미 팀원들이 다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팀장이 되는 것은 참 다른 일이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많다.

어떻게 빠르게 업무를 파악하고 올바른 지시와 의사결정을 할 것인지..

나는 또 이렇게 큰 과제를 앉고 많은 것을 배운다.



누군가와 나누는 사내 메신저에 내 얘기가 있었다.


파트장들 중 가장 업무 얘기를 많이 하는 팀 선임에게 사내 메신저로 파일을 보냈다.

'팀장님, 이거 얘기 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돌아온 그의 피드백을 보고 나는 그의 자리로 갔다.


듀얼 모니터 오른쪽에 내가 보낸 장표가 띄워져 있었다.

나는 서서, 그는 앉아서 장표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왼쪽 모니터에 덩그러니 띄워진 메신저 창에 눈길이 갔다.

처음에는 나와 대화를 나눈 창인 줄 알았는데 언뜻, 나는 '팀장'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그는 누군가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창에 한 8줄 정도의 대화가 올라와 있었다.

나는 거기서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이 얘기하는 나의 닉네임, 그리고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는지..

(팀장들이 누가 더 병신인지 경쟁하는 것 같다 고 쓰여있었다...)


그는 그 메신저 창을 왼쪽 모니터에 덩그러니 띄워놓고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그 대화 내용을 대충 다 읽는 동안에도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업무 얘기를 마쳤고,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도대체 무엇일까..




윗사람 뒷담화는 직장인에게는 공기와 같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보통 후방 주의와 누군가 내 자리에서 얘기를 할 때는 특히 메신저 창을 감추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그런데 그는 그 메신저 창을 버젓이 모니터 한가운데 두었다.

나는 내가 그것을 보기를 바라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냐? 니가 얼마나 병신처럼 일하고 있는지 알아?'

이런 의도라고..


나름 직장생활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험한  많이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솔직히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부끄럽고 슬펐다.

나는 팀장으로서 나의 권위를 내세우고 싶지 않았고 업무적으로는 합리적이면서 업무외적으로는 팀원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는 팀장의 모습이 아니다.

팀원이 오죽하면 그런 뒷담화를 할까...

싶어서 나는 참 슬펐다.


그를 불렀다.

우선은 사과를 했다. 모니터를 봤다고 말했다.

보통은 그런 메신저 창을 내리는데 그냥 두신 걸로 봐서, 읽으라는 의도인 것 같았다고 얘기를 하니,

그는 전혀 메신저 창이 띄워져 있는 것도 몰랐다며 당황해하며 예의에 어긋났다고 말을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누구나 상사 욕은 한다고.

나는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럽다고 했다.

업무로서 명확하거나 아니면 존경받을 성품이 있거나.. 무엇이든 간에 좋은 리더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지금은 내가 너무 업무적으로 시야가 좁아서 미안하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약간 나의 반응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본인의 생각을 변명처럼 말했다.


'제가 팀장님만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여기 OOO실장님 (*이 팀의 전임 팀장) 빼고는 모든 팀장들을 다 싫어해요. 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에게 전권을 주면 성과를 내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이렇게 개입하기 시작하시면 저는 손을 놓습니다.'

그는 꽤 합리적이고 일 중심적인 사람인 양 본인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저 들었고. 앞으로 잘하겠노라고 잘 지내보자고 얘기를 했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는 것과 외도 현장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건 외도현장이다.


외도현장을 들킨 남편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한 번은 봐주겠다고 생각한 아내와 같이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여전히 뭔가 화난 사람처럼 나의 지시에 대응한다.

어쩔 때 보면 뭔가 나를 꼭 이겨먹어야 되는 사람 같기도 하다.

자기의 말이 관철되지 않으면 성의 없이 대답한다.

내가 잘 파악이 안 된 것이 있으면 이러저러하다며 쭉 설명하고,


'팀장님이 결정하셔야죠. 근데 정말 그렇게 하실 건가요?

저 같으면 대표님이랑 싸울 거예요. 아니 저는 싸우는 게 아니고 일을 하는 겁니다.

불합리한 지시에는 따를 수가 없죠.'


이렇게 얘기를 한다..


나도 한때 내가 하는 방향이 모두 맞는  알았고 내가 가장 정의로운줄 알았고 내가 일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고 내가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부터는 알게 되었다. 내가 그런 것들을 몸으로 깨달아가는 동안 나는 '누군가 미리 이런 충고를 해줬으면 얼마나 좋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런 후배를 보니, 충고를 해주기는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가 스스로 부딪혀 깨달아야 한다. 누가 얘기해준다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내가 얘기를 해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흥, 지 편하자고 적당히 굽히고 타협한 주제에 나한테도 그러라고 지금 충고하는 건가?'

라고 삐딱하게 받아들이겠지..


그와의 대화는 몹시 불편하고 뒷맛이 개운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는 잘 지내고 싶긴 하다.

그가 성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고 그가 좀 더 우호적으로 되어서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을까?

그를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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