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프라임 세포 찾기

드라마 - 유미의 세포들 시즌 1

by 율앤킴

< 유미의 세포들 시즌 1, 김고은 안보현 주연, 2021년 대한민국 연애 드라마 >


내가 이 드라마를 뒤늦게 정주행 할지 몰랐다. 사람의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몹시 바빠 하루를 초단위로 살아야 한다고 호들갑 떨며, 부지런을 떨던 나의 일상은 멈춰버렸다.

며칠 몹시 아프고 나니 초능력 또한 생겼다.

갑자기 미친 듯이 일을 하고, 미친 듯이 잠을 자고, 미친 듯 드라마를 본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간이 아픔과 동시에 주어졌다. 시련과 행복이 동시에 찾아왔다. 각오는 했으나, 막상 닥치니 당혹스럽듯, 아직 후폭풍 또한 알 수 없기에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약발이 오래가지 못하기에 에너지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한 해야 일을 하고, 기록을 남기고, 쉬기로 마음먹었다. 어쩔 수 없다면 기꺼이 소나기를 맞으리라~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나의 베프 대학 친구들이 권해준 <유미의 세포들>을 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난 방금 정주행을 마쳤다. 얼마 전, 그들과 단란하게 저녁을 먹으면서 드라마를 권한 그녀에게 말했다. “넌 아직 젊구나!”라고..

이 말을 할 때만 해도 내가 이 드라마를 볼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난 유미세포 지옥에 갇혀버렸다. 드라마 에피소드가 무려 40개가 넘는다. 박경리의 토지를 능가하는 대서사시였다. 시작해버렸기에 중간에 멈추는 것도 어려웠다.

다 보고 나니, 몇 가지 후유증이 남았다.

1. 누군가와 1년 1개월 4일의 연애를 마치고 이별앓이 하듯 마음이 저리다.

2. 친구 덕분에 이십 대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이십 대가 갑자기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것도 이번 병으로 인한 초능력인가? 나의 흑역사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연애사가 하나하나 기억난다.

3. 유미의 세포 시즌 2를 또 보고 싶다는 점이다.

4. 하지만, 난 이제 진짜 일에 몰입해야 할 것 같다.

5. 머리가 띵하다. 아파서인지, 드라마 정주행 탓인지 혼미하다. 약과 환기로 버틴다.

6. 시즌 2는 잠시 보류한다. 또 유미세포 지옥이 될 것이다.

7. 시즌 2를 망설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진짜 드라마에 단단히 미쳐서 내가 연애를 끝낸 양 이별 애도 시간을 갖기로 했다.

8. 시즌 2의 새로운 남친이 누군지 아는데, 난 아직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웅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9. 시즌 2를 보고 싶은 욕망을 누르기 위해 오래간만에 게임기를 꺼냈다. 한 때 미쳐서 밤새 했던 게임기를 옷장 깊숙이 숨겨놓았는데 드디어 작동해 줄 때가 온 것이다.

10. 이 게임을 딱 5판만 하려고 마음먹었다. 과연 가능할지도 조금 두렵다.

11. 이십 대에 대한 추억과 후회가 새삼 든다.

12. 다시 이십대로 돌아가 연애를 한다면, 조금은 똑똑한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금은 더 똑똑하게 이별을 하고 싶다.

13. 다시 사랑한다고 해도, 모든 연애의 끝이 이별이라고 해도... 다시 사랑한다면 시치미 뚝 떼고 첫 사랑 하듯, 인생의 마지막 사랑인 양 최선을 다하라고... 사랑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오지랖을 떨고 싶어 진다.

14. 누구나 프라임 세포를 가지고 있다. 나이별로, 상황별로 바뀌어 나가는 것뿐이다.

15. 고로, 누구나 구질구질 찌질한 흑역사가 있고, 찬란히 빛나는 전성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16. 내 인생의 전성기는 아직 안 왔다고 믿고 싶어 진다.

17. OST 가 예술이다. 다시 제대로 들어봐야겠다.

18. 나이와 정신 상태의 불일치로 인해 균형을 찾아가야만 하는 드라마 시청 후유증이 남았지만, 이 또한 금세 사라질 것이다. 일상의 복귀와 함께...


아무튼, 나의 친구들 덕에 행복한 이십 대 시간 여행, 연애 대행 경험을 하게 된 드라마였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가 함께 나와 유치할 것 같지만, 연애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심리를 다룬 재미가 있다. 아마도 오은영 박사 뺨칠 세포들의 활약 때문인 것 같다.

젊은 청춘 남녀의 만남, 설렘, 사랑, 추억, 남녀의 차이, 다툼, 이별, 이별 후유증, 이별 극복, 직장 생활을 섬세하게 그린 드라마이다.


몇 번의 이별을 겪고 나서 어렵게 어렵게 마음의 문을 열고, 뜨겁게 다시 사랑하고, 1년여의 시간을 울고 웃고 함께 한 남녀는 처음 만났던 그곳에서 다시 만나 연애를 종료한다.

연애가 종료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인생이 끝난 듯 애도할 수 있는 열정과 순수도 나이가 들면서 사라질 것이기에, 여력이 있을 때 실컷 울고 불고 다시 일어나도 될 것 같다. 언제 또 그래 보겠냐?!


유미가 이별을 감지하고 부모님의 집에 가서 집밥을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많은 음식을 먹기 위해 위장의 파티션을 컴퓨터 드라이버 나누듯 나누는 장면도 압권이었다. 새삼 나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대학 때 언제 가든, 단 한 번도 마중과 배웅을 해주지 않은 적이 없으시다. 그 모든 것에 당연한 것이 없거늘, 고맙고 미안하다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며 지내왔다.


살아가면서 많은 감정들을 가지고 산다. 인생의 우선순위 또한 바뀌어 나간다.

결국 남녀 간의 사랑은 타이밍인 것 같다. 서로의 프라임 세포가 일치하는 남녀가 매칭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인생의 최우선으로 믿고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나가라는 건전한 교훈을 남겨준다.

이 드라마가 티빙이 아니라 넷플릭스에서 상영되었다면 더 인기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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