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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Jan 13. 2023

어떤 질문은 답을 모른 채 놔둬야 한다

영화 - 5 to 7

< 5 to 7, 빅터 레빈 각본 및 감독, 안톤 옐친 / 베레니스 말로에 주연, 미국 로맨스, 2015년 >


 미국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사랑 이야기다. 불륜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로맨스 영화로 기억하고 싶다. 굉장히 복잡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단순하고 명확하게 사랑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불륜을 미화하거나 난해한 프랑스 문화를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에 사는 24살 작가 지망생인 브라이언은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연애마저 포기하고 산다. 그런 그에게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서 보게 된 길 건너에서 담배 피우는 여인은 정말 큰 매력을 느낄 첫인상을 나에게도 선사해 주었다. 연애마저 포기했다던 이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길을 건너 담배 피우는 그녀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들로 서툴게 말을 걸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연락처를 묻는 대신, 다음 주 금요일에 같은 장소에서 보자는 로맨틱한 제안을 한다. 서로의 이름만을 안 채 이들은 헤어진다. 인어공주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아리엘이 브라이언의 인생에 우연히 나타난 날이다.


 드디어 첫 데이트를 하게 된 두 남녀는 미술관에서 설렘 가득한 시간을 가진다. 이렇게 호감을 가지고 공원 산책을 하며 서로에 대해 차츰 알아가기 시작해 나간다. 대부분의 남녀의 시작과 다름이 없었으나 이때 영화는 충격을 던져준다.

 브라이언이 한눈에 반한 이 멋진 프랑스 여인은 그보다 9살이 많고, 아이가 둘인 유부녀였다. 브라이언은 너무 큰 충격을 받고 그녀와 더 이상의 만남은 어렵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녀는 자신의 황당하고도 자유분방한 사고를 "확신"이라는 단어로 아쉬움을 내비치고, 자신은 매주 금요일 같은 장소에 있을 거란 말을 남기고 둘은 헤어진다.


 그날 이후 브라이언은 아리엘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드디어 거부하지 못하고 3주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나고 이들의 불륜은 시작된다. 그녀는 평일 5시에서 7시까지 만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 역시 다른 애인이 있고, 서로의 가정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특이한 프랑스 문화와 부부의 황당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하루 두 시간의 만남은 때론 풋풋하고, 때론 애틋하고, 때론 치명적이며, 때론 순수했다. 둘의 시간이 더해갈수록 둘의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여기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아리엘의 남편도 브라이언의 존재를 알고 인정해 주며, 이들은 서로 간의 협조적인 규칙을 지켜나가며 이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로서의 재능을 거절당해 지쳐있던 브라이언에게 드디어 좋은 소식이 전해진다. 그의 성공을 뛸 듯이 기뻐하며 축하해 주는 아리엘의 모습에서 소녀 같은 모습이 느껴졌다. 그녀는 항상 브라이언이 잘 될 거라고 그의 미래에 확신을 가졌었다.

 브라이언은 이런 그녀와 하루 두 시간이 아닌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했고, 그의 상금을 다 투자해서 Dior 반지를 사고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서로의 룰과 신뢰가 깨졌다고 거절했지만, 브라이언의 진심 어린 고백에 그와 함께 하기로 한다.


 처음으로 둘 사이의 룰인 PM 5시가 아닌, 4시에 만나기로 한 날...

아리엘은 나타나지 않은 채 손편지와 반지를 남겨놓았다.

  

 비난받기 충분한 소재인 불륜 이야기며 정신 나간 아줌마의 자기 합리화와 같은 변명일지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사랑은 이 편지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리엘은 20대 시절 일에 지치고 힘들던 시기에 남편을 소개받고 존경하며 살아왔지만, 불행히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완벽한 사랑이란 것에 대해 믿지 않았기에 남편의 정부조차 인정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에게 "확신"을 갖게 된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 내려간다.

 브라이언을 만나며 행복하고 살아있음을 느꼈고, 그의 프러포즈에 너무 흔들린 이야기를 전한다. 나이 때문에, 생활 방식의 차이 때문에, 남의 시선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슬픔과 이별을 전해받은 브라이언은 반지가 담긴 봉투를 그녀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뉴욕 거리를 걷는다.

  

 그가 사랑에 빠진 그 거리를 이별 직후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위태롭게 걷는다. 폐인처럼 이별앓이를 하면서도 그녀의 말을 존중하고 이별을 엄격히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에서 고통 속에서도 성숙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는 그의 절망을 글로 써 내려간다. 그는 <인어>라는 책을 출판하고 작가로서 성장해 나간다.

 

 " 그녀는 날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날 남자로 만들어 주었다. "


 몇 년 후, 가정을 꾸리고 사는 브라이언은 아리엘과의 첫 데이트 장소인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된다. 각자의 가족들 사이에서 서로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지만, 표정 하나하나가 말없이 서로에게 사랑과 지지를 보내줌이 느껴졌다. 헤어지기 직전 악수를 청하기 위해 장갑을 벗은 그녀의 손에 끼어진 Dior 반지,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여운으로 남는다.

 이 영화의 극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빅터 레빈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여주인공의 매력, 영어 발음,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나는 웃음, 담배 피우는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자유분방하며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 파리여인이 낯선 나라에서 경험한 확신에 대해 친절한 묘사가 아니어도, 감독은 그 확신은 그저 나이 어린 남자와의 유희가 아니었음을 영화 전체를 통해 표현해 주었다.

 이 영화는 비록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이야기 뿐 아니라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엿볼 수 있었다. 브라이언 부모님의 사랑에서는 존경심이 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아리엘과 남편의 존중과 배려가 읽혔다.

 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브라이언 엄마의 말씀이 생각난다. “ 자연과 사랑은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


 이 영화를 보며 문득 사랑과 여행에 대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쩌면 사랑은 여행처럼 셀레고 신나는 경험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행 장소보다는 어느 시기에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그 여행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여행은 늘 새롭고 신나는 것만은 아니기에 함께 할 파트너와의 서로 간의 합과 배려, 존중, 사랑이 그야말로 중요하다.

너무나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는 그 사랑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인생이라는 여정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이 여행은 달라진다.


 평생을 그녀와 함께 하고팠던 청년은 곁에 없어도 늘 함께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며, 그녀 역시 같은 마음일지는 굳이 알 필요가 없다.

 그녀의 말대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면 서로 미치도록 싫은 점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것조차 굳이 알 필요 없단 생각이 든다.

 그들은 불완전한 시기에 사고처럼 또 선물처럼 우연히 만나서,.완전한 사랑을 갈망했던 시간과 그 마음을 공유했고 추억을 간직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불편한 주제임에도 그 속에서 완벽하고 품격 있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시각에 따라 이 주제는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기에 훗날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또 달라질 수 있을 거다.

 실제로 남주 안톤 옐친은 이 영화 상영 이듬해 예기치않은 사고로 죽었기에 영화에 몰입하게 되어 사랑과 인생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며 본 것 같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과 영화 <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OST와 비슷한 멜로디도 영화를 보는 내내 좋았다. 언젠가 뉴욕을 다시 여행한다면 구겐하임 미술관, 크로포드 도일 서점도 가보고 싶어 진다. 센트럴 파크 벤치의 글귀도 정성껏 살펴 보고 싶다.


" I will hold your heart more tenderly than my own. "

" I remember you everyday. "


편견 없이 인생 이야기를 다룬 영화 자체로 본다면, 가슴 아프지만 멋진 사랑 이야기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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