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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Jan 10. 2024

요리로 철이 들어가나 보다

겨울 제철 반찬 - 쇠미역 초무침

 며칠 전 엄마께서 검은 비닐봉지를 주셨다. 그 안을 보니, 쇠미역 두 묶음이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귀한 제철 음식 재료일 텐데도 사실 받는 순간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보통의 엄마라면 반찬을 만들어 주실거라는 생각으로 살짝 투정이 생겼다. 그리고, 쇠미역을 씻고 데치고 무칠 과정을 생각하니 번거롭게 느껴졌다.

이틀이나 손을 대지 않고 이 귀한 식재료를 방치해 두었다. 그러다 재료가 상하는 것도 염려스러웠고, 엄마가 시장에 가셔서 사다 주신 정성도 고마웠기에 쇠미역 무침을 시작했다.


< 쇠미역 손질법 >

정보를 찾아보니 밀가루를 묻혀서 깨끗이 씻는 손질법이 있었다. 난 그냥 굵은소금으로 문질러 헹궈내는 방식을 택했다.

물을 한 솥 끓이고 굵은소금을 한 스푼 넣은 후, 한번 씻어낸 미역을 데친다. 갈색의 쇠미역이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바뀌는 순간 바로 건져내어 찬물로 헹군다. 이때의 팁이 있다면 노끈을 풀지 말고 손으로 그 부분을 잡아서, 끓는 물에 노끈이 들어가지 않게 미역 다발을 넣었다가 빼는 게 좋은 것 같다. 이러면 찬물에 헹군 미역을 썰 때 좀 편한 것 같다.


< 재료 >

1. 쇠미역

2. 굵은소금

3. 양파, 당근, 쪽파

4. 갖은양념 (다진 마늘, 간장, 매실청, 설탕, 식초, 참기름, 깨소금 등)


< 요리법 >

1. 데쳐서 자른 쇠미역의 물기를 제거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2. 큰 그릇에 먹기 좋게 자른 쇠미역을 담고, 갖은양념과 양파, 당근, 쪽파 자른 것을 함께 무친다.

3. 부족한 간을 맛보면서 맞춘다.


<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아니, 철이 들어가고 싶다! >

제철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좋은 식재료를 굳이 알아본다.

전엔 양념 계량에 예민했다. 지금은 대충의 손대중으로 적당히 요리한다.

깨를 직접 가는 과정이 좋다.

내가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것도 기분이 좋아진다.

쇠미역을 손질하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처음부터 직접 모든 것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럽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걷어올린 그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돈주고 사는 것 이상으로 매우 고마운 일이다.


주로 남이 해 주던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음식 만들기에 열중할 때가 있다.

직장 다니면서 식사 준비하는 것을 기꺼이 해내는 고단함으로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이 번거로움과 고단함이 당연한 즐거움으로 변할 날이 올 수도 있을거다.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의 보람과 그 맛의 예찬에 스스로 빠져든다.

그러나, 꼭 내 손으로 해 먹어야 한다는 집밥에 대한 강박 없이 그때 그때 상황과 컨디션에 맞추어 살아간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일상을 하루 하루 살아나가는 과정 중 하나로 소중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음식을 하다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직장 다니면서 살림하고, 당신 도시락과 우리의 도시락까지 싸주던 그 시절 그녀의 고됨을 당연시 알았던 날 반성한다.

이제는 엄마의 반찬을 받아먹는 것이 아닌, 내가 엄마에게 반찬을 해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은 엄마의 밥이 좋다. 앞으로 오랫동안 그러고 싶다.


아직 철들려면 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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