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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Feb 12. 2024

낭만적 사랑의 대가

영화 - 차박

< 차박-살인과 낭만의 밤, 형인혁 감독, 데미안/김민채 주연, 대한민국 스릴러, 2023 >


난 영화를 보기 전 나름 신중히 고르는 편이라 여겼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시간과 감정을 두어 시간 정도 고스란히 내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 여운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몇 번의 실패가 축적되었기 때문에 영화 선정 전 나름의 절차가 생겼을지 모른다.


이 영화를 보게 된 몇 가지 나름의 이유가 분명 있었다.

우선, 한국에서 흔치 않은 슬래셔 무비라는 평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지도 모르는 자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하는 설정으로 관람객이 커다란 공포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호러 영화의 일종이라는 말에 나도 영화 속 공포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런 마케팅을 보니 기존 영화들과 차별화된 공포 영화의 연출에 대단한 자신감과 혁신을 내비친 것이라 생각했다.

둘째, 김민채라는 배우가 이 영화로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사실로 인해 작품에 더 신뢰가 갔다. 정보를 찾아보니, 제8회 포틀랜드 호러영화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영화 예고 속 그녀의 눈빛에 압도되었다.

셋째, 아이돌 1세대 격인 GOD 데미안의 나이들은 모습과 연기가 궁금해졌다.

넷째, 한 때 차박과 캠핑 등에 관심을 가졌기에 영화를 보면서 간접 경험을 하고 싶었다.

다섯째, 이 영화가 현재 넷플릭스 영화 차트에서 2위인 데다가, 검색해 보니 네이버 평점이 9점대로 매우 높다는 점이 가장 큰 끌림이었다.


영화는 신혼부부의 차박 여행에서 일어난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룬다.

서로 변함없이 사랑하며 결혼 1주년을 맞이한 수원과 미유 부부는 또래의 신혼부부보다 뭔가 더 어른스럽고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듯한 성숙한 느낌을 주었다. 이들은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차박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런데, 행복하게 준비한 이 여행을 떠나기 전인 영화 초반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미유의 사촌 동생은 께름칙한 말로 미유를 협박하고, 찜찜함을 풍기며 잠시 등장한 것만으로도 영화의 복선이자 이야기 흐름의 큰 줄기가 될 듯싶었다.

부부가 차박 목적지로 가는 길 곳곳에 실종 사건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 또한 불길하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난데없이 삽을 든 남자가 차에 달려들어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위협을 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사진을 찍어준다더니 미유의 실수에 크게 분노하고 트집을 잡으며 행패를 부린다. 협박을 하던 그마저 떠나자 차박의 명당이라는 풍력 발전소 근처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다.

하루 종일 벌어진 일들이 관객의 입장에서는 뭔가 어설퍼 보였고, 공포영화의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범인과 동기를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아서 초반에 이미 김이 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슬래셔 무비의 장치이며 엄청난 반전이 있을 거라 여기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가면서 끝까지 보기로 했다.


무언가 석연찮은 마음에 불길함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미유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쓰는 남편 수원의 모습은 부자연스러웠다. 석양을 바라보며 와인을 함께 마시고 사랑을 나누며 영화의 간절한 부제처럼 차박을 통해 낭만의 밤을 연출하려고 한다. 그러나, 공포 영화답게 갑자기 나타난 가면 쓴 낯선 남자의 등장과 함께 스릴러와 로맨스 중 한 축은 이 영화 속에서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영화에 몰입하기보다는 수원 역을 맡은 데미안의 세월의 흔적을 살펴보던 날 꾸짖듯, 갑자기 가면을 쓴 자에게 수원과 미유는 공격을 당한다. 수원은 칼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미유는 산길로 도망친다.

이제부터 드디어 상을 수상한 여주인공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구나 싶어 져서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쫓기는 와중에 낮에 보았던 삽을 든 아저씨가 나타나서 미유의 도망을 방해한다. 뭔가 범인을 헷갈리게 만들고 싶은 의도였는지 모르나, 산속에 등장한 두 남자가 누군지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빠른 정답 맞히기만큼이나 미유는 범인을 빠르게 죽여 버리고 만다. 미유의 결단력 있는 공격은 공포 영화인지 게임인지 조금 혼미하게 만든다.

천문대로 도망친 미유 앞에 여행 전 협박하던 사촌 동생이 나타나서 구구절절한 지나간 사랑을 이야기하더니, 그 사랑을 증명한다며 갑자기 자살을 한다. 미유를 구하기 위해 이 산속으로 온 명분마저 무색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끔찍한 일을 겪은 미유는 차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수원이 살아있는 것이다. 반전이라기엔 미미하고, 그저 뜬금없는 수원의 등장으로 인해 영화에 대한 기대는 거의 바닥이 되어버렸다.

둘은 함께 이 산길을 도망치다가 다시 나타난 삽을 든 아저씨와 마주친다. 이 분 또한 미유가 지체 없이 차로 밀어버려 바로 해결해 버린다. 불사신이자 여전사 같은 미유는 뜻하지 않게 거듭된 살인을 하고, 비로소 산을 벗어나 남편과 둘이 남게 된다.

부부는 차를 타고 가며 이 모든 일의 동기를 밝혀 나가기 시작한다. 관람객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그들의 말로 듣게 되는 셈이다. 이 사건은 극 초반에 일찌감치 던져진 '사촌 간의 사랑'이라는 불미스러운 판도라 상자를 연 남편의 계획에 의해 벌여진 사건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 영화의 반전 없는 직관적인 시나리오로 인해 난 잠시 엉뚱한 생각마저 해버렸다. 남편이 가면 쓴 지인에게 살인을 사주할 때, 그 남자가 갑자기 수원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길래 '근친상간'과 함께 '동성애'까지 다루는 줄 알고 조금 머리가 복잡해질 뻔했다. 다행히 이것은 나의 노파심이었다. 그렇게라도 뭔가 예상치 못한 반전이나 공포 장치를 찾고 있었나 보다.

공포보다 더 큰 관객의 허무함을 뒤로한 채 영화는 끝이 난다. 차 안에서 긴 호흡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부부는 차 안에서 멋진 배경 음악 속에서 오직 공허한 눈빛 만으로 영화를 이끈다. 음악을 들으며 저 두 사람은 남은 삶 동안 어찌 살아갈지 잠시 걱정해 보기까지 했다.

영화가 제시한 살인과 낭만, 사랑과 집착의 그 엄청난 간극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허무해진 나머지 다시 이 영화의 네이버 평점을 살펴봤다. 그제야 나의 실수를 발견했다. 우선 평점에 참여한 사람이 현재 시점 10명이라는 점이다. 표본의 양이 적을 때 생기는 통계의 오류를 관가 했다. 그마저도 평점을 잘 준 그 소수의 사람들의 글에 눌려진 '싫어요' 버튼 수는 '좋아요'의 수치보다 월등히 높았다. 아무튼,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나의 탓이다.

이런 실수를 통해 잠시 정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는 특정인만이 참여하고 거창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주권을 가진 국민이 삶의 전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여야 한다. 사회적 문제에 전혀 동참하지 않으면서 문제 해결에 관한 고민과 의견 제시 없이 불만만을 표출한다면 이 사회의 발전과 성장은 어려울 것이다.

결론은 다른 이들의 관람평만 의존하지 말고, 더 많은 관람객들이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제시하고 다양한 의견이 공론화될 때 영화 산업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거창하게 말해 본다.


이 영화에 대해 살펴보다 보니, 러시아 국제 호러 액션 판타스틱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김민채라는 배우의 열연은 영화의 여러 가지 아쉬움 속에서도 빛이 난 것 같다.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느낌은 아쉬움이었다. 누군가가 열심히 만들었을 테고, 이렇게 국제적 명성을 쌓은 영화에 대해서 나는 여러 의문과 찜찜함으로 영화 관람을 마쳤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시도해보지도 못한 차박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공포까지 얻게 된 영화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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