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물 오이 탕탕이!
어제 오래간만에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근황과 여름 나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더운 여름, 불 앞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매일 대충 때우거나 배달 음식을 먹고, 나가서 사 먹는 것도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다.
그러다가 <오이 탕탕이>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오래간만에 다시 만들어보게 되었다.
처음 이 음식을 접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만두 가게 었다. 만두가 주메뉴인 단골집에서 사이드메뉴로 오이무침이 있었는데, 뭔가 느끼한 맛을 잡아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주문해 보았다. 기존에 좋아하던 갖가지 요리법의 만두 요리에 처음 시켜본 오이무침을 한입 먹는 순간 입안에 도는 상큼함이 너무 근사했다. 오이 한입으로 인해 평소 좋아하던 만두 요리들이 그날따라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 오이무침이 또 먹고 싶어 져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레시피를 검색하다 보니, 이건 이미 유명한 오이 탕탕이라 불리는 음식이었다.
<재료>
1. 오이 3개 : 잘 씻어서 가시만 대충 제거하고 껍질 채 지퍼백에 넣어 탕탕 쳐준다. 잘게 내려칠수록 양념이 더 잘 베어 든다. 가로 결, 세로 결로 쪼갠다는 느낌을 가지고 내리친다.
2. 식초 두 숟가락 : 상큼도를 높이기 위해선 취향 껏 더 넣으면 된다.
3. 마늘 두 작은 스푼 : 마늘을 바로 찧어서 넣어준다. 그러면 풍미가 더해진다.
4. 소금 반 스푼 : 맛을 보고 가감한다.
5. 설탕 한 스푼 : 지인말로는 설탕을 마지막에 넣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6. 깨 잔뜩 : 깨를 갈아서 많이 넣어주는 게 포인트인데, 깨범벅이다 싶을 정도로 넣어준다. 깨를 아낌없이 양껏 넣으면서 부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참기름과 깨를 아끼지 않는 사치를 기꺼이 부려본다.
이건 요리라 할 것도 없다. 재료만 있으면 매우 간단하다. 그런데, 맛있기까지 하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먹는 순간 바로 네가 진정한 요물이구나!! 이런 느낌이 든다.
별기대 없었는데, 정말 근사하고, 여름 철 최고의 별미다. 꼭 여름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손이 갈만한 반찬이다.
보통 여름철에 오이냉국을 많이들 먹는데 난 별로 즐기지 않아서, 오이냉국보단 오이탕탕이가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만들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맛이 더 베어 들고 국물이 자작해져, 국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내면 된다.
술안주로도 제격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술을 부르는 안주가 될 것 같다.
정말 이 녀석 요물이다! 마음에 딱 든다. 너 도대체 뭐야? 싶을 정도로!!
요리를 하면서 깨를 갈 때 나무 재질의 절구 용기를 사용하는데, 이것 또한 아주 마음에 든다. 이 절구를 얼마나 아끼는지 요리 도중 바로 씻고 말려준다.
미리 빻아둔 식재료가 아니라 요리 시작과 동시에 마늘을 빻고, 깨를 으깨는 것이 나의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이 정도의 정성만 있으면 오이 요리의 풍미가 아주 근사해진다.
얼마 전 우연히 동방신기의 김재중이란 연예인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자신은 배달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고 한다. 배달 음식의 몇 분의 일 가격의 돈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그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 아깝다고 했다.
어린 나이 큰 자산을 이루고 바쁠 것 같은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생소했다.
단순히 검소한 생활 방식뿐 아니라, 번거롭더라도 음식을 직접 해 먹으려 노력하는 점도 좋게 보였다.
물론, 비싼 돈이라도 지불하고 먹어야만 하는 손이 많이 가고 맛을 따라 하기 어려운 음식들도 있을 것이다,
오이 탕탕이!
별 것 아닌 요리지만,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다.
어떤 요리는 먹고 싶을 때마다 단골 음식점을 찾아가야만 하는 수고로움이 생기는데, 이건 생각날 때마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서 좋다.
재료가 너무 간단해서 좋다.
요리법 또한 번거롭지 않아서 좋다.
여름에 불을 사용하지 않고도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서 좋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입맛을 돋워 주는 요리라서 좋다.
어느 음식과도 어우러지는 별미라서 좋다.
생각할수록 장점이 많고 마음에 쏙 드는 음식이다. 그야말로 요물을 발견한 느낌이다. 아니, 보물이다!
사람으로 치면 늘 편하면서도 평생 함께 하고픈 진국을 만난 기분이다.
이번 여름은 너로 정했다. 아니 평생 모든 계절...
잘 부탁해!! 나의 음식 요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