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있는 그녀에서 김희선이 연기하는 우아진은 항상 당당하다. 그녀의 당당함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재벌집 며느리였을 때가 아니라, 바로 재벌그룹 며느리 자리에서 내려와 평범한 옷가게를 열었을 때였다. 그녀는 여전히 너무나 행복해보였고, 그녀를 아껴주는 친구들과 같이 진심을 다해 환히 웃었다. 본인이 가진 물질적인 것들을 다 잃었을 때에도 본인을 여전히 좋아하고 아낀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그녀는 가장 반짝반짝 빛났다.
우아진은 스스로에게 떳떳하다. 그녀는 한번도 허상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힌적이 없었다. 남편이 바람핀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남편과 이혼하면 본인이 누리고 있는 부와 명예를 잃게될 것을 알면서도 본인의 신념을 지켰다. 이 사실은 그녀의 가치관이 물질적 풍요 또는 남편의 행동과 같은 본인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외적인 것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과 그로 인해 비롯되는 만족감 등과 같은 내적인 것에 향해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어떤 것보다도 본인의 자존감과 가치관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녀는 스스로 존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을 수 있었다.
우아진의 단호함과 떳떳함은 우리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내가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질척대는 사람이라면, 우리 엄마는 쓸데없는 것에 대해서는 연연해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본인이 생각하는대로 감정은 따라온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명품이라고 다 예쁜게 아니고, 저가브랜드 혹은 보세라고 다 안예쁜게 아니라고 누누히 강조한다. 나는 엄마의 이러한 관점이 검소함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명품브랜드여서 샀는데 그게 명품이라는 사실 빼고는 전혀 매력적인 부분이 없어 당근마켓에 내놓게 되는 아이템이 있고, 브랜드를 떠나 맨날 입게 되고 찾게 되는 아이템이 있다.
엄마는 내게 늘 말했다.
“ㅇㅇ아, 너가 행복한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해.”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던 순간에도,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준비하던 회사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엄마는 항상 같은 말을 했다.
그때는 그저 나를 위로하고자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 말에 담긴 진실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정말로, 내가 행복한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
내가 좋아해서 매달리던 잘생긴 전남자친구도, 좋은 학교도, 연봉이 높은 회사도 나의 행복과 튼튼한 마음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나는 그걸 몰라서 계속해서 외적인 것들에 매달렸고, 새로운 것들을 내가 욕망하는 대상 리스트에 추가했다.
엄마는 솔직하다.
아니 솔직한 걸 넘어서서 직설적이다.
우리 가족은 농담으로 엄마가 프랑스인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숨기지 않고, 우회해서 말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
엄마는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나에 대한 사실들을 여과없이 얘기해준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그런 사람이라 나는 조금 더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고, (한걸음씩 늦게라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는 과감하고 창의적이다.
내가 중학교 때 나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조기 유학 경험이 있는 나는 다시 돌아왔을 때 암기 중심인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도 어려웠다.
중학교 3학년, 새학기가 된 시점에 내가 엄마에게 울면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얘기하자 엄마는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했다.
분명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 건 나였는데 나조차도 “읭?”이 절로 나오는 해결책이었다.
학교에 가기 싫으니 가지 말라니.
학교에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나?
나는 엄마 말대로 학교에 가지 않았고, 몇달간 도서관에 다녔다.
엄마가 매일 직장에 출근을 하면서, 엄마 직장과 가까운 도서관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고, 인강으로 공부를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처음으로 누리는 자유였다.
학교를 다닐 때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이러한 불행의 원인을 온전히 학교의 탓으로 돌렸다.
나에게는 나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학교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불행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 밖의 세상은 나에게 인생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나의 선택에 따라 내가 사는 인생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도서관에는 무수히 많은 책들이 있었고, 나는 그날그날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정한 책들을 통해 내가 겪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문예창작지를 읽으며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의 취향을 탐닉했고, 미국대학에 간 경험담을 읽으며 미국 유학생들의 삶을 경험했다. 여행 책자들도 읽고, 뉴욕 타임즈도 읽으며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들도 열려서, 나는 아프리카 악기 전시회를 구경하기도 하고 교과서에 실린 시를 쓴 시인과의 만남에 참여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먹을 걸 참 좋아하는데 학교 급식 대신 도서관의 구내 식당의 다양한 메뉴들 중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참 매력적이었다.
나의 주도하에 내가 사는 인생이 달라진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로 내 인생은 바뀌었다. 나는 학교에 돌아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내가 원하는 인생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따뜻하다.
직설적이고 단호한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엄마는 정말 이타적이고 따뜻한 사람이다.
아빠의 아버지, 친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렸을 때 엄마는 할아버지를 우리 집에 데려오자고 했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허리 건강이 매우 안 좋아져서 수술을 하게 되며 몇달 동안 할아버지를 보살피기가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형제들 사이에서는 할아버지를 시설에 보내자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만류, 심지어 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기어코 우리 집으로 할아버지를 데려왔다.
작은 어려움들이 있긴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래도 우리 집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가 다시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셨고, 얼마 안 지나 세상을 떠나셨다.
나중에 엄마에게 할아버지를 왜 보살폈냐고 물어봤을 때 엄마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심플하지만, 강렬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처럼 되는 것을 꿈꾼다.
엄마는 본인의 감정에 대해 산뜻하고, 지혜롭고,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당당하다.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잊지 않는다.
엄마는 정말이지, 품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