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로리 파트1의 숨은 흥행 이유
앉은 자리에서 더글로리를 다봤다.
주변 사람들도, 안 본 사람들은 있어도 한번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서 며칠 안에 다 봤다고 한다.
더글로리는 어떤 점이 특별한걸까? 어떻게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끌고 있을까?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고, 김은숙 작가의 대본이 뛰어나고, 감독이 연출을 잘하고... 이런 것들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양파 껍질 까듯이, 한 꺼풀 벗겨내어 더글로리가 흥행에 성공한 진짜 이유들을 분석해보았다.
* 파트1 스포일러 포함
이 세상의 모든 복수극들은 재밌다. 더 큰 잘못을 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벌을 받음으로써 정의가 구현되는 것을 보면 통쾌함이 든다. 보통 "친절한 금자씨"와 같이 한명의 복수극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시원함을 느낀다.
그런데 더글로리에는 복수를 하고자 하는 인물이 무려 3명이나 나온다.
1. 끔찍한 학교폭력으로 학교를 그만둬야했던 문동은
2. 아버지를 살해당하고,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받으며 고통 받는 주여정
3. 그리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강현남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는 문동은의 복수도 응원하지만 주여정과 강현남의 복수도 응원하게 된다.
특히, 주여정의 아버지가 살인자와 원한관계도 아니었고 그저 의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다가 환자의 칼에 찔려 죽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주여정이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도현이 연기해서 그런지 몰라도, 엄마와 문동은에게는 강아지같이 한없이 다정한 눈빛을 보내다가 집에서는 갑자기 혼자 칼을 꺼내들어 사람을 찌르는 연습을 하는 것을 보면 측은하게 여겨진다.
한명이 아닌 여러 명의 힘은 위대하기에, 복수를 꿈꾸는 3명이 힘을 합쳤을 때 한명 한명이 각자 할 수 있는 복수, 그 이상의 시원하고 임팩트 있는 복수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드라마에서 최고 빌런은 박연진과 전재준일 것이다. 이 둘의 어릴 때 모습을 보면 치가 떨리고, 현재 일상에서 하는 갑질들을 보면 이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본격적인 복수극이 전개되기 이전인데도, 우리는 박연진과 전재준의 강한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취약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박연진은 평소에는 양아치 그 자체이지만 예솔이한테 만큼은 좋은 엄마이다. 문동은이 박연진이 보는 앞에서 예솔이 머리 옆에 가위를 들자 박연진은 자식을 아끼는 여느 엄마가 그렇듯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박연진은 남편에 대한 사랑도 전재준과의 대화 도중에 뒤늦게 깨달을 (?) 정도로, 진실성과 따뜻함이 결여된 인간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예솔이에게는 따스한 목소리로 대하고, 예솔이가 등장하면 담배를 숨기며, 문동은이 담임인 걸 안 이후에는 예솔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혹시 다쳤을까봐 달려가서 상태를 확인한다.
반면, 전재준은 인성 빼고 재력과 외모 등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일상에서 큰 불편함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색약이라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관객이 봤을 때는 그저 불륜일 뿐이기는 하지만, 과거에 박연진과 사귀었고 그녀를 사랑했는데 박연진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빼앗긴 첫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가장 의외였던 모습은 예솔이가 본인의 친자라는 점을 알았을 때 예상치 못한 부성애를 보이며, 예솔이를 와락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박연진과 전재준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자칫하면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빌런이 될 수 있었던 이들의 캐릭터에 입체성을 불어넣었다.
복수극의 주인공은 자고로 신뢰가 가야 한다.
악역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한 사람이어야 한다.
문동은은 Self-made 캐릭터다. 엄마의 서포트도 없이 혼자 컸는데, 잘 컸다.
공장에서 틈틈히 공부해서 교대를 갔고, 장시간동안 복수극을 치밀하게 준비해왔으며, 매사에 차분하고 냉철해 쉽게 실수를 할 것 같지 않다.
문동은이 똑똑하고 차분하고 치밀하기에 나는 마음 놓고 그녀의 복수극을 관람할 수 있다.
아주 시원하게 되갚아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실제로 파트1의 다음 장면에서 문동은이 대응했던 방식은 정말 영리했다.
고등학교에서 상을 받는 박연진에게 모두가 듣는 앞에서 큰 박수를 보내며 극찬을 함으로써 세련되지만 속시원한 방식으로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이와 반대되는 예시로, 예전에 작은 아씨들이라는 드라마에서 김고은이 연기했던 첫째딸 캐릭터는 고구마 그 자체였다.
어리버리하고 눈치 없는 캐릭터로, 별안간 실수를 해도 놀라지 않을 캐릭터였다.
그나마 둘째딸, 셋째딸이 똑부러져서 좀 걱정이 덜 되긴 했지만 그래도 김고은이 등장할땐 항상 불안했다.
여차저차해서 잘 끝나긴 했지만 보는 내내 고구마같은 감정을 30% 정도 느껴야 했다.
악역들 외에도, 더글로리의 주요 등장인물은 대부분 입체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우리는 그 캐릭터의 한 가지 면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면을 같이 보며 캐릭터를 보다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다.
박연진의 남편, 하도영이 대표적이다. 하도영은 "나이스"하지만 "개새끼"이다. 건설사 CEO라는 타이틀, 젠틀한 매너, 깔끔하고 댄디한 패션을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박연진이랑 결혼한 이유가 "제일 적게 입었는데 다 디올이어서"라고 얘기할 정도로 본인의 속물적임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박연진과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원에서 만난 의문의 여자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접근하기도 한다. 그의 의외성을 띄는 행동들은 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하고, 기대를 하게 만든다. 지금은 박연진과 같은 편이지만, 본인에게 불리할 것 같으면 문동은으로 편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인물이다.
강현남은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지만, 전혀 침울한 캐릭터가 아니다. DSLR로 사진을 찍는 행위에 호기심을 보이며, 문동은에게 직접 담근 김치를 선물할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본인을 "매맞지만 명랑한 년"이라 할 정도로 밝고 잘 웃는 사람이다. 일반적인 피해자의 모습에서 보이는 어둡고 우울한 모습이 아닌 의외성을 보여줌으로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호기심이 들게 한다.
더글로리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들은 대부분 현실에 있을 법해서 몰입도가 커진다.
실제로, 문동은과 주여정의 복수극을 촉발시키는 두 사건은 현실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1. 문동은의 고데기 사건: 청주 고데기 학교폭력 사건 (https://richtuja.tistory.com/259)
2. 주여정 아버지 살인 사건: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살인 사건 (나무위키 참고)
그 외에도,
- 대형교회 목회를 통해 재력을 쌓은 김사라의 집안
- 스튜어디스 후배에게 갑질하는 선배 스튜어디스 최혜정
- 음지에서 마약을 하는 김사라
등등....
더글로리에 등장하는 다양한 모티브는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하여 리얼리티를 살려주고 있다.
이상 금요일에 공개될 파트 2를 눈빠지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더글로리가 인기있는 이유에 대하여 분석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