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트렌치. 야! 너두?

by 심마니
헐리우드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길거리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치고 웃는 모습이다.

기온의 정점에 이르는 오후도 아니었지만 그다지 이른 오전 시간도 아닌 11시가 좀 안 된 시간, 나는 높은 습도 탓에 인상을 찌푸리며 걷고 있었다. 원체도 사람들을 잘 보면서 걷질 않지만 미간도 눈살도 절로 각이 진 상태였다. 게다가 1시간 남짓. 짧은 외출 시간이었지만 나는 두 명의 여성을 기억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제목으로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야! 너두?'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베이지 리넨 일자핏 바지를 입은 여성 두 명을 본 것이다. '두 명의 여성'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나도 검정 상의에 베이지 하의를 매치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똑같은 옷은 아니지만 비슷한 착장이었고, 그 시간대 총 세 명의 여성이 한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목적지는 각자 달랐지만 서로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걷고 있었기에 마주하며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여러 날 동안 길거리에서 마주친 수 십 명의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해도 두 명은 머릿속에 남아 있다.


후덥지근한 여름을 보내고, 쾌적하기도 약간 차갑기도 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가을을 맞이하면, 우리는 옷장 속 트렌치코트를 찾는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꼭 한 두 명쯤 트렌치코트를 코디한 다른 누군가들을 마주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같은 옷 다른 느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어떤 다양하고 많은 생각과 감정을 마주하는지가 궁금해서 글을 쓰는 중이다.

누구에게는 위 같은 상황에서 별다른 감정이나 기분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저 치약을 칫솔에 짜서 올리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뇌에 직접 입력하거나 출력하기보다 이제는 자동반사적으로 하는 습관 그 자체인 것처럼, 기억 저편에 자리 하나 남겨주지도 않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앗, 조금 민망한데? 살짝 부끄러운데?' 정도의 약한 감정이 동반되었을 수도 있고, 오히려 '뿌듯함'이나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라는 나만이 아는 위세를 떨쳤거나, '여러 사람이 선택한 착장인 걸 보니 내 선택 혹은 안목이 괜찮은 듯?'이란 생각에 흡족했을 수도 있다.



나에게 어울리는 퍼스널 컬러를 찾듯이, 많은 사람들은 '나'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파악하려 하며 좀 더 과장하자면 정복하려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알아야 내일을 알 길이 없는 불확실한 세상살이에서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이러한 '자기 이해'에는 에너지와 시간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돈을 집중적으로 들이는 심리 검사, 자기 분석, 심리 상담이 몹시도 유용하겠다. 하지만 시간도 여건도 돈도 아쉬운 팍팍한 살림살이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 이해'와 '자기 탐색'을 돕는 간단하지만 복잡하고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방법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물이 흘러가듯 시간이 흘러가듯 나의 생각도 감정도 흘러가게 두기만 하면 안 된다.

강렬한 감정 혹은 은은하지만 계속 잔상이 드는 느낌, 생각 등이 있다면 '나'와 관련이 있는 '이슈'일 수 있고, '나'를 자극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특별하고 큰 이벤트나 상황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먼저 드는 생각과 느낌, 기분과 정서를 놓치지 않고, 돌아보며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이 '자기 이해'의 첫걸음이다. 간단한 듯 쉬워 보이지만 그 순간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아 되새김질이 필요한 때가 많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내가 어떤 생각 특히 어떠한 주관적인 판단이나 강하게 다가오는 기분, 정서가 올라올 때 잠시 카메라 셔터를 누르듯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

'무슨 생각을 했나? 어떤 기분을 느꼈나?', '왜 그런 기분이나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등등.

소소하고 다를 바 없던 똑같은 일상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 생각과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판단을 미루며 '궁금해하는 것'이 '자기 분석'과 '자기 이해'의 지름길이다.



나 같은 경우에 조금 부끄러웠다. 아마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것 같다. 세 명의 여성이 같은 색깔의 상하의를 입고 있었고, 꽤나 가까이 걷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의식 나아가 판단을 할 것만 같았다(정확히는 외모에 대한 평가).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 내가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냐면, '부끄러운 감정'을 얼른 누르려고 '그래도 색상 매치를 잘했으니 다른 두 명도 같은 착장을 입었겠지'라는 생각으로 불쾌감을 대체시켜 버렸다.

나는 불쾌한 감정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불편해서 어떠한 '올바른(것 같은) 생각'으로 주의를 전환시키는 특징이 있구나.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지속되다 보면 해소되지 않은 부정적인 잔여 감정들이 쌓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를 다독일 겸 불편했던 그 순간에 다시 나를 데려갔다. '그래도 괜찮다'라고 말이다.

아마도 글을 쓰는 이유가 여러분들과 자기 이해와 분석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 먼저가 아닌, 나를 위로하고 다독임이 우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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