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복을 먼저 입어야 겉옷을 수월하게 입을 수 있고, 이 순서를 지켜야만 각자의 기능 발휘도 가능하다. 겉옷을 먼저 입는다고 생각하면 모양새도 우습거니와 내복과 겉옷 본연의 자기 성질과 모습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질 좋은 내복의 조건은 꽤나 까다롭다. 매 순간 살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소재나 원단이 부드러울수록 좋은 내복일 것이다. 더불어 신축성을 갖춰 적절히 늘어나야만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팔과 다리를 내복에 넣을 때 잘 늘어남과 동시에 몸에 찰싹 달라붙어있어야 다음 겉옷을 받아줄 여유 공간이 마련이 되므로 크기는 내 몸에 꼭 맞아야 한다. 반면에 외복, 외투나 겉옷은 어떨까? '착한 외투'가 되려면 갖추어야 하는 조건들은 내복과는 사뭇 다른 점들을 가진 것 같다. 한겨울 방한용이나 스포츠용과 같은 특수한 기능성이 요구되는 겉옷이 아니고서야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외투에는 유행을 좇는 트렌디함 혹은 개인의 미적 기준을 수북하게 얹는다.
마치 피부과에서 '바디 울쎄라'같은 리프팅 시술은 없듯이 우린 내복이나 바디로션에 투자하기보다는 얼굴에 바르는 기초 스킨, 로션, 메이크업 화장품, 그리고 겉옷에 몇 배 혹은 수십 배에 달하는 훨씬 더 많은 금전적인 소비(혹은 투자)를 한다. 옷장 속 내복은 수적으로도 외복에게 밀린다. 아마 의복이란 특성이 사회에서의 '나'를 표현해 주는 도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당연한 이치일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외(外)'복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
내복은 겉옷의 속에 파묻혀 눈에 띄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그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겉옷의 기능을 한껏 발휘하려면 내실 있는 내복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건물의 기본 토대, 무게를 받치는 구조적인 기초 공사와도 같다.
'외복'은 (많은 경우)'타인'을 그리고 '사회'를 향하지만 '내복'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떤 때는 외복을 든든하게 지원사격해 주어 사회적인 '나'를 튼튼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많은 때 '나'를 편안하게 북돋워준다.
나의 '내복'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는 가족일 수도 있고, 넷플릭스일 수도 있고, 자극적인 음식일 수도 있다. 막상 떠올렸을 때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내복'이 한 벌 쯤은 있어야 하고, 잊지 않고 '내복'을 점검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 계절이 바뀌었을 때 외투를 사기 위해 아울렛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비교하며 입어보는 시도 같은 노력을 말이다. 내가 가장 편안해하는 것,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고,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것들.
고백하자면 나의 내복은 마음속 품고 있는 '꿈', '소망'이다. 가장 '나'답고, 힘들 때 꺼내보는 앨범이나 서랍 속 일기처럼 되뇌고 되새겨도 지겹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