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Lee May 16. 2020

결혼은 장난이 아니야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1

  2014년의 어느 봄날, 긴 연애를 마치고 사랑하는 부인, 아니 그때는 여자친구였겠지. 사랑하는 랑금과 함께 결혼을 하였다. 정신없었지만 참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우리만 이렇게 싸우나 싶을 정도로 투닥거리고 아, 정말 이렇게까지 결혼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신경 쓸 것도 많았다. 또한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두 가문의 만남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서로의 가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가족으로 맞이하는 시작을 준비한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간 결혼 준비부터 결혼, 그리고 신혼여행. 7박 9일의 일정으로 프라하-체스키크롬로프-할슈타트를 다녀오며 처음 체스키크롬로프를 방문하게 된다. 인상이 깊었던 체스키크롬로프 이야기는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생활의 시작, 당시의 나에겐 그냥 혼돈이었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두 마리의 맹수를 한 우리에 가둬놓은 듯하다.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두 인격체가 하나의 공간에서 두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생활양식을 만든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나, 이제서야 깨달았지만, 나는 그런 게 없을 줄 알았는데 결혼에 대한 나만의 기준과 환상이 분명히 있었다. 함께 지내는 삶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과 같은 게 있었던 거다.

  예를 들어 치약은 아랫부분부터 눌러서 사용, 싱크대에는 설거지거리가 있으면 안 됨, 빨래통의 3분의 2가 넘으면 바로 빨래하기, 수건은 긴 쪽을 기준으로 반, 그리고 한 번 더 반, 그리고 넓은 쪽에서 반 접기.. 등등. 많은 여성들이 싫어할 만한, 참 깐깐하기 그지없는 그런 남자. 글을 적으면서도 매우 부끄럽고 후회된다. 


  둘 다 일에 지쳐 빈 깡통이 되어 집에 들어오면 서로 대화할 힘도 없어 멍하니 있다가 하루가 가고, 주말이 되면 침대 또는 방바닥과 하나가 되어 빈둥빈둥하는. 무슨 약속들이 또 그렇게 생기는지 휴일에는 여기저기 방문해야 할 곳들이 많아졌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관계라는 끈을 놓을 수 없는 현실이 큰 부담감으로도 다가왔던 듯하다. 이 부분에서도 서로의 사회가 있고, 교차되지 않는,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마찰을 빚기도 했던 듯하다. 


  "나는 이 사람까지 챙겨. 아니 왜 그 사람까지 챙겨? 그 사람이 부인 챙겨줘? 아니 난 그냥 이 사람 챙겨주는 게 좋아." 와 같은.

  직장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또 다른 마찰이 생겼다. 나는 직장을 아주, 지극히 직장으로만 대했지만, 아내는 투철한 사명감과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를 매우 신경 썼다. 


  "직장은 돈으로 엮인 관계야 부인,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 없어. 그렇게 일한다고 돈을 더 주나? 누가 상 줘?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챙기지 않았도 돼!"

  "난 이일에 큰 보람을 느껴.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일 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해.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건 굉장히 기분 나빠"

  뭔가 아내 직장에게 내가 밀린 느낌. 서로 이해받길 원했던 듯하다. 돌이켜 보면 그때, 아내를 안아주지 못한 것, 그렇게 힘들게 아등바등 거릴 때 사랑한다 한 번 더 얘기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난 따뜻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매우 매몰차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를 알고 있었을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아내는 따뜻한 사람이다. 온기를 가지고 있는. 아내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적이 없다. 그런 이 사람을 나는 바보 같다 생각했었다. 결혼을 하고 더 가까이서 보니 더 바보 같아 보이고 사람들에게 손해만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연유로 나는 아내에게 차가운 말들, 가시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아내는 선인장이 되어 나를 찔러댔다. 서로 그렇게, 상처만 가득했던 신혼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든 시간이 불행했다는 건 아니다. 둘 다 나들이를 좋아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서로의 자아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는지 힘든 시간들은 이어졌다. 그러다 체스키크롬로프가 떠올랐다. 모든 것이 평온했던 그곳, 생각만 해도 평안을 주는 그곳. 아 그곳에 가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 미스터 킴이 했던 제안이.


  "여기서 함께 사는 건 어때!"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