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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17. 2020

체스키크롬로프와의 만남_ part. 2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3

  "안녕하세요, 숙박을 예약한 숭호와 랑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 어서 와요,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자, 이리로 들어와요."


  1513년에 지은, 500년이나 된 옛 건물, 한적한 동네에 사는 유일한 한국 사람. 이전에는 지휘자 였다고. 참으로 낭만적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체크인 만 삼사십분 가까이한 듯. 펜션과 마을에 대한 설명은 5분 정도 되었을까? 나머지는 정말 범상치 않은 질문들과 자신의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답변들과 이야기들이 맘에 들었는지, 미스터 킴이 괜찮으면 내일 차를 함께 마시자고 했다. 랑금 얼굴도 나빠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좋다 답변했다.


  다음날 오전, 대접받는 듯한 조식을 경험하고 미스터 킴과 함께 차를 마시러 집을 나섰다. 가까운 카페에 가겠지 하고 가벼운 맘으로 나가려는데 여권을 챙겨오란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자기가 좋아하는 카페 리스트 중 한곳에 갈 것이라고. 헐. 오스트리아? 그때는 오스트리아가 엄청 먼 저기 어딘가라고 생각해서 매우 놀랐다. 비가 조금씩 왔다 안왔다, 해가 비췄다 말았다 하는, 오락가락한 날씨였지만 이동하는 내내 행복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20분쯤 가자 거대한 호수가 나온다. 리프노. 체코의 바다라 불리는 이곳. 놀랍게도 인공 호수다. 차가 호수 앞에서 멈추길래 아, 이제 다 왔나 싶었다. 킴이 내리길래 우리도 잠시 차에서 내려 바깥바람을 쐬며 사진도 찍었다. 근데 킴이 차를 배에 실어 호수 저편으로 간다는 것이다. '에? 진짜? 그게 가능? 우와~ 신기하다! 어.. 근데 이렇게까지?'. 랑금과 나는 서로 눈치 보듯 쳐다보며 신남과 기쁨, 부담 사이를 오가는 감정을 확인 했다. 그럼에도 진실돼 보이는, 킴이 주는 편안함에 호의를 부담으로 받기 보단 고마움으로 받아야 겠다 생각했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오스트리아에 위치한 카페까지 이동하는 내내 킴과 나는 대화를 나눴다. 뒷자리에 앉은 랑금은 아마 가만히 쉬지도 않고 떠드는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을 듯싶다. 이런저런 주제를 가지고 나눴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생각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카테고리 글에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배를 타고 건너와 비포장 산길을 한 15분 쯤 달려 들어가면 오스트리아 국경을 지나게 되고, 조금 더 이동하면 그림처럼 지상 4층 규모의 INNS HOLZ라는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뭔가 신기한 광경이다. 이렇게 외딴 곳에 이런 건물이. 오스트리아 전통 건물의 현대식 해석이랄까. 목재가 많이 보이게 인테리어를 했는데 주변 자연과 참 잘 어우러진다. 건물 뒤로는 통나무 오두막같이 생긴 개별 숙박 건물들이 여러 개 있다. 지금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 리스트 중 하나가 된 이곳.


  그렇게 도착해 차를 마시며 킴과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을 비틀어 볼 줄 안다 해야 할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지 않는 굳은 의지와 신념을 느낀다.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킴은 우리가 맘에 들었는지, 이곳에서 함께, 같이 살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남들은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을, 그냥 하는 이야기 일 수도 있는데, 이 말이 내 맘을 크게 울렸다. 모르는 사람에게, 만난 지 하루 밖에 안된 사람에게, 같이 살자고? 이게 말이 되나?


  뭔가 영화와 같은 하루가 저물었고 체스키크롬로프 성 바깥쪽에 위치한 옐레니 자흐라드(녹색 정원)를 걸으며 랑금과 고요하고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옛 건물들을 눈에 담으며 어둠이 내린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사람이 쫙 빠져 걷기 참 좋았다. 랑금에게 이곳은 다음에 꼭 다시 한번 들르자 했는데 랑금도 그러고 싶다 했다. 아, 이래서 뽁과 쑤가 그렇게 추천을 했구나. 뽁과 쑤는 이곳을 추천한 걸 후회한다 했다. 이리로 우리가 떠나올 줄을 몰랐기에.


  다음날 아침, 어제에 이어 잘 차려진 조식을 대접받고 아쉬움 가득 안고 체스키크롬로프를 떠나려는데 킴이 우리에게 일정을 묻는다. 할슈타트 다녀올 때 시간 되면 들러 잠깐이라도 인사하자고. 이런 작은 부분들이 나의 맘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다.


  그렇게 체스키크롬로프와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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