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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17. 2020

긴 여행의 시작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7

  "여보세요?"

  "어! 여보세요? 혹시 숭호?"


  민비네 집에서 놀고 있던 중에 070으로 시작하는,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광고 전화겠거니 하고 별생각 없이 받아보았는데 나를 아는 남자의 목소리. 누구지?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지?


  "네, 전데요. 누구시죠?"

  "아! 아! 휴, 다행이다. 잘 지냈어요? 이게 얼마 만이에요!"

  "네.. 누구.. 시죠??"

  수화기 너머로 기뻐하는 목소리, 약간 흥분한 듯 한 어딘가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다. 나의 물음에 미안해하며.


  "아! 미안 미안해요. 나에요 미스터 Kim"

  "아!! 안녕하세요!"

  눈이 번쩍 떠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민비네 집을 내 집 드나들듯 하다 보니 민비 방을 내방처럼 자연스레 들어간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신혼여행 때 이야기들부터 이후 지내온 이야기들, 그리고 최근 글을 남긴 것까지 화기애애하게 통화를 하였다. 시간이 되돌아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를 그래도 기억하시네요.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겼었어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니깐."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오스트리아까지 가서 차를 마시고 깊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러네요, 돌이켜봐도 참 기억에 남는 곳이에요. 함께 같이 살자는 말, 기억하세요?"

  "그럼요, 이리 와 함께 살아요! 그렇게 시간에 몸을 맡기며,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사람이 사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도 해보고, 여기 먹고 살 거리는 걱정 마요! 이거 운영하면 되니까!"

  "네? 그 펜션을요??"

  "왜, 그럼 안돼?"

  잠시 멍하니, 이분은 장난일까 진담일까. 혹 하는 마음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지금의 이 사회를 떠나고픈 마음, 아내와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나였으니.


  "장난 아니에요, 진짜예요. 이거 맡아서 운영해요. 안 그래도 좋은 주인 찾고 있었으니까."

  "아, 진짜요? 진짜 그래도 돼요?"

  "그럼요, 맡아서 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인수해요."

  충격적인 제안. 운영을 해보고 가져가라니. 나를 뭘 믿고? 고작 이틀 함께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이 사람의 감정의 깊이는 어디까지일까 싶었다. 마치 의심을 가지면 죄책감이 들 정도로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였다. 


  짧은 시간 통화했다 생각했는데, 전화를 끊고 보니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뭔가 귀신에 홀린 느낌 같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민비가 뭔 통화를 그렇게 오래 하냐며 빨리 나와 놀자고 하는데 붕 떠있는 느낌에 얘기가 귀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그 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랑금에게 킴과 통화한 이야기를 해줬다. 화들짝 놀라 하며 내용을 궁금해했고, 최대한 상세히 설명해 줬다. 


  "정말? 정말? 진짜로?"

  "응, 그렇다니까!"

  서로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며 이건 사기가 아닐까, 진심인 걸까, 왜 하필 우리인 걸까,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혼돈의 신혼생활이었지만 이렇게까지 큰 결정을 줄만한 일들은 없었는데, 인생을 뒤바꿀만한 사건이 시작되었다. 


  내게는 천국 패밀리라는 또 하나의 가족이 있다. 정말 생사고락을 함께 해오며 전장을 함께 지난 듯한 가족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그냥 가족이다. 우리들의 맏형인 제트, 그 아내 맹스디, 그리고 민비, 뽁, 쑤, 나, 랑금.  천국 패밀리가 모여 나의 이 사건을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좋은 기회일 것 같다고 한번 도전해보라 응원을 해줬다. 돈을 떠나서 해외에서 살아보는 경험은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말. 이 이야기를 듣는데 어느 글에서 읽었던 것과 오버랩이 되었다. 사람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에 하나의 문화만 겪어 본 것이라는 말. 그래, 내 인생 언제 한번 다른 문화를 경험하게 될까. 한살이라도 더 젊을 때 도전해봐야지 않을까.


  길어도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랑금과 나의 긴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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