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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21. 2020

여행의 목적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12

  "이야, 외국에서 펜션을 한다고? 돈 많은 갑네"

  "어우, 야. 다음에 나도 한 번만 재워주라."

  랑금과 나는 처음 체스키크롬로프로 올 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지 않고 왔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얼마나 이곳에 머물지도 모르는 결과의 중첩(?) 상태로 떠나왔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할 때 주변 사람을 통한 홍보나 판매는 초기에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길게 본다면 실이 많을 거라는 판단도 한몫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알게 된 사람들에게 연락이 올 때면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이런저런 설명을 해야만 했다. 매일 같이 연락 오지는 않았지만 뜨문뜨문, 해외 나갔다며, 왜 나갔어, 거기서 뭐해, 같은 연락이 1년 정도 이어졌다. 

  사람이 큰일을 겪으면 주변 사람이 정리된다는 이야기를 티브이나 책으로만 듣다가 내가 겪어보니 신기했다. 그 큰일이란 좋은 일일 수도, 나쁜 일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을 알게 된 대다수의 사람들은 랑금과 나의 결정을 응원해 주고 좋은 추억 만들며 건강히 잘 지내라는 축복을 해주었다. 반면 알고 지냈던 이들 중 몇몇은 비아냥대는 이들도, 너네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거기까지 갔냐는 투로 연락을 했다. 평상시 자주 연락이라도 했으면 그런가 보다 싶었을 텐데 오랜만에 한 연락이 이런 식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중 S 군은 대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왔던 동생인데, 이제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굴지의 회사에 취업한 친구였다. 내 딴에는 많이 아낀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불편한 행동들을 해오더니, 여기에 온 소식을 듣고는 대뜸 첫인사가 '거기서 뭐 하세요?'였다. 순간 추억은 사라졌고 아, 이 친구와 나는 결이 다르구나라는 걸 알았다. 여행이 끝나가는 지금, 그 빈자리들은 다른 알곡들로 가득 채워졌다. 긴 여행 중 만난,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해 주는 이들이 주변에 남아, 잃고 난 빈자리만큼 다시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달아 간다.

  처음 이곳에 올 때의 다짐은 이랬다. 무엇보다 랑금과 행복한 삶을 누리길 바라고 원했지만, 물질적 풍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나 역시 펜션을 하면 부자라는 생각이 있었고, 또 이런 펜션을 운영하게 된다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킴의 제안이 달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딴곳에 하나뿐인 한국인 민박, 소위 독점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 좋은 사업이었다. 게다가, 옆에 이렇게 듬직한 킴이 있어준다면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함께 살자는 감성이 더불어, 랑금과 나에겐 체스키크롬로프에서의 삶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인생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처음 해외뽕(?)에 취해 뭐라도 된 사람이냥 기쁘다 착각했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이국적인 날씨와 하늘, 문화, 음식, 심지어 공기와 물까지 모든 게 새로웠으니 당연하다. 거의 매일 마을에 있는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음식들을 경험해보고 길이 이어진 곳이라면 어디든 마을 곳곳을 걸어 다녔다. 한국에서는 손잡고 이렇게 여유롭게 걸었던 적이 있었나, 매일 얼굴만 보면 박 터지게 싸웠는데 공원을 편안히 걷는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주인만 바뀌었을 뿐 이미 예약이 되어있던 손님들은 계속 오고 있어 이제 시작인데 벌써 성공한 듯했다. 가끔 이상한 손님들도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좋은 손님들도 많이 왔으니.

  그러다 문득, 지쳐있는 랑금을 보게 되었다. 함께 행복한 줄로만 알았었는데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있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날들도 있었고 무기력하게 창밖을 바라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멍하니 있는 모습의. 순간 언제부터 그랬던 것일까, 왜 난 이제야 보았을까 싶은 생각에 머릿속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날이 너무나 좋아 나가고 싶다 했을 때 손님이 온다는 핑계로 혼자 나가게 했던 적도 있고, 오리에게 빵주러 가자 할 때 뭘 굳이 그렇게 하냐 타박했던 적도 있었다. 처음 해보는 펜션 일인데 내가 다 안다는 양 쓴소리로 다그치기도 했다. 내 부하 직원도 아닌데 가르치려 들기도. 생각해보니 그랬다. 힘들어했던 모습을 보고도 무시한 적이 분명 있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더운 날씨에도 묵묵히 장을 보러 다녀왔지만 따뜻하게 맞아준 적이 몇 번이나 되었었는지. 나만 행복했던 것일까, 저런 상태로 즐거워하는 나를 보며 랑금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다 든 질문에 덜컥 겁이 났다.

정말 랑금이 원해서 이곳에 왔던 건 맞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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