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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31. 2020

부엌 역학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18

  "오늘 뭐 먹을까?"

  "오늘은 짜장면!"

  "에에? 그게 가능해??"

  "응! 어제 파스타 면으로 짜장면 만드는 법 찾았어. 맛있대 히히"


  한국에서 살 때 랑금이 해준 음식을 많이 못 먹어봤다. 상대적으로 덜 바빴던 내가 음식을 하면 랑금이 먹질 않았다. 너무 실험적인 음식을 많이 한다고 핀잔을 많이 들었다. 지금 부엌은 완전한 아내의 공간이며 호출이나 심부름, 설거지를 제외하면 냉장고까지만 맘 편히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예전에 Z.N형에게 그런 조언을 들었다.

  "부엌에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절대! 네가 고를 생각하지 마. 그건 안될 일이야."


  결혼하기 전으로 기억하는데, 그땐 정확히 뭔 말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잘 안다. 누군가에겐 요리하는 게 즐거움이고 기쁨일 수 있다는걸. 체코에 살며 랑금에게 우울감이 찾아온 건 정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커리어 우먼으로 열심히 살다 부쩍 많아진 시간이 주는 공허함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시간이 많으면 평소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네가 있는 나와 네가 없는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란 것만 알아둬_ 언젠가-비투비]

  시간이 없을 때 자유 시간과 시간이 있을 때 자유시간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종이 성냥갑 안에 벼룩을 한참 두었다 밖에 놔주면 종이 성냥갑 높이만큼만 뛴다고 한다. 주변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평소에 즐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우리에게, 특히 랑금에겐 무수히 많은 선다형 문제 중 답을 골라야 했을 것이다. 아니지, 문제도 본인이 내고 답도 본인이 맞춰야 하니, 처음 풀어보는 시험이었을 것이다. 

  어떤 문제를 내야 하나 고민을 하던 랑금은 본인이 낼 문제보다 주어진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루라는 시간은 세 개의 문제를 매일 내줬다. 문제를 받은 랑금은 기뻐했고 인터넷이란 참고서에서 이것저것 찾아가며 오픈북 테스트를 치러 갔다. 시험은 매번 행복하게 같이 채점하였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요리를 하고 남은 설거지가 더 부담되는 숙제였음을 깨달았다. 맛있게 음식을 음미한 뒤 평화로운 시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포만감을 깨고 일어나 뒷정리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고도 손님을 받아야 한다는 핑계로 아내가 설거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해봤다. 요리하는 것과 설거지 하는 것 중 무엇이 더 힘들까? 결론은, 설거지가 더 힘들다 생각했다.

  요리는 생산의 영역이다. 식재료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이상 맛이 섞일 수도, 더 맛있는 맛을 낼 수도 없다. 우연이나 실수에 의해 발견될 수도 있겠지만. 각각의 재료와 기구들은 셰프의 의도에 따라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낸다.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멋진 창조의 영역이다. 재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같은 요리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재료가 많다고 꼭 맛있진 않고, 재료가 없다고 꼭 맛없지도 않다. 재료 안에는 어우러짐이란 요소가 있고 여기에 시간이란 변수까지 더해지면 결과는 무한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결과물은 판단하는 이에 따라 다른 평가가 붙는다. 예술과 동일하다. 아틀리에를 누군가 제 맘대로 드나든다면 화가는 몹시 신경 쓰일 게다. 그래서 랑금이 자신의 주방을 그렇게 아끼는 것 같다. 

  설거지는 정리의 영역이다. 음식이란 결과를 만드는데 사용되고 남거나 흩어져 있는 재료와 기구들을 버리거나 씻고 정리하여 원래의 위치에 돌려놓는다. 

  열 역학 법칙에서 질서의 상태는 무질서의 상태로 향한다. 잘 작동하는 손목시계를 가만히 놔두면 고장 나거나 분해될 수 있어도, 분해되거나 고장 난 시계가 자연히 합쳐지거나 고쳐질 수는 없다. 따분한 얘기가 길었는데, 결론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요리는 즐거움이 동반하지만, 흩어진 무질서를 다시 원래의 질서로 되돌리는 설거지는 즐거움이 따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드는 데는 에너지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부인, 내가 왜 설거지가 요리보다 더 어려운지 알아냈어!"

  위의 이야기를 신나게 이야기하니 랑금의 표정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변하며 피식 웃고 말았다. 

   "남편은 진짜, 어휴. 진짜 남달라. 그냥 먹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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