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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뉴 Mar 20. 2021

어쨌든, 연애

그와의 삶, 나의 생활, 그 어딘가에서

대학 가면 다 연애한다는 엄마 말만 믿고 연애 한번 못한채 10대를 보낸 나는, 어쩐지 대학에서도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했다. 첫번째 연애는 1개월 만에, 두번째 연애는 2개월 만에, 그리고 세번째 연애는 3개월만에 쫑내며 참 규칙적인 연애를 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보낸 5년 동안 연애한 기간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으니, 10분의 9는 싱글이었던 셈이다.


그 10분의 9 되는 기간 동안 나는 친구들과 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열심히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느라 연애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웠고, 충분히 바빴다. 그래서 왜 다들 연애 타령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애 말고도 의미있고 재밌는 것들이 세상에 가득한데, 왜 드라마도, 소설도, 마치 연애가 전부라는 듯이 구는거야?


라고 말하던 내가 지금 연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당시의 내게 룸메이트가 해줬던 말이 기억나서다. 그 친구는 아마도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애를 안하면 사는 것이 그저 '생활' 같지만, 연애를 하면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는 것 같다고. 나는 알쏭달쏭한 그 말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멋있는 표현인 것 같아서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정확히는 졸업식 당일에)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 처음으로 연애다운 연애를 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오래 전 룸메이트가 해준 말이 나에게 있어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거다.


남자친구와 함께하는 주말은 '삶' 같다가도, 남자친구 없이 홀로 보내는 평일은 어쩐지 '생활'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것 같다. 그와 있는 동안에는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은채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있는 그대로, 지금 이대로 충만한 듯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미래에 대한 그 어떤 걱정도, 그렇다고 기대랄 것도 없이, 지금 너와 내가 여기에 함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삶.


그러다가 또 다시 월요일이 찾아오면 주말에 잠시 쉬었던 나의 생활을 다시 이어간다. 나 홀로 밥을 차려먹고, 나 홀로 일을 하고, 나 홀로 산책을 하고. 삶 속에서의 나와 달리, 생활 속에서 나는 현재보다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한다.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에게 때로는 벅찰 만큼 꽉 채워진 시간표를 쥐어주는 식이다. 미래의 커리어를 위해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지, 미래의 여유를 위해 지금 열심히 돈을 벌어야지.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줄곧 이렇게 지내왔던 것이다.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있으면서 '아- 좋다'라고 할 줄 모르는, 굳이 뭔가를 해야만 '아-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며 만족스럽게 잠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꼭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곁에 있는 누군가로 인해 충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삶을 갈망하는 한편으로는 생활에 더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 생활에 충실해야 삶을 더 만끽할 수 있는 거고, 삶이 있기에 생활을 이어나갈 힘도 있는 것이기에. 생활 속의 연애, 그게 결혼이라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영원할 것 같던 사랑언젠가는 변한다지만, 그는 유일하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다. 나에게 고백하던 날의 그도, 나와 가장 오래 사귄 오늘의 그도 살이 조금 찐 것 빼고는 한결같다. 변덕스러운 나를 한결같이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받아주는, 한결같이 따뜻하고 좋은 사람. 나도 그를 닮아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


그로 인해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스스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가 없는 평일에 나는 생활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와의 연애, 그라는 존재가 이미 내 생활 깊숙이 들어와있기에, 나는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도 삶을 완전히 잃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그래서 세상에 연애 말고도 좋은 게 얼마나 많든, 어쨌든, 오늘도 나는 그와의 연애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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