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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y JP Mar 26. 2020

WFH-Day 8

2020. 3. 25. 수요일

2011년도에 처음 뉴욕에 왔을 때에는 뉴욕에서 버스를 탄다는 걸 생각할 수 없었는데,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구글맵과 피죤(Pigeon)이라는 어플로 버스노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년 가을쯤 필라델피아에서 맨하튼으로 막 이사왔을 때는 맨하튼의 '따릉이'라고 할 수 있는 씨티바이크 연회원에 가입한 후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뉴욕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H1가 유모차를 뗀 후부터는 H1와 맨하튼에서 움직일 때 (예를 들어, 일요일에 어퍼이스트 쪽에 있는 센트럴 장로교회에 갈 때) 버스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H1가 유모차를 뗀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면, H1는 만 4살이 되어서도 계속 유모차를 타고 다녔었다. 작년 11월에 영화 겨울왕국2를 보러 맨하튼에 있는 AMC 영화관 링컨센터 지점에 갈 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모차를 타고 극장에 갔다. 때로 프리스쿨 선생님이신 미스 트리나(Ms. Patrina이지만 아이들은 미스 트리나라고 부른다)가 "Are you a baby? Why are you using a stroller?"라고 놀리면, 발끈해서 "No, I am a baby anymore.  I have a baby in Korea, but I am a big girl!"라고 대답하며 유모차를 타지 않고 집에 걸어서 가겠다고 할 때도 있었지만, 주말에 외출할 때에는 늘상 유모차를 타겠다고 선택하던 H1였다. 그런데 겨울왕국2를 보러 간 극장에서, 메트로키즈 프리스쿨 치타반 친구인 카나미(果南美)를 우연히 만났다. 사실 전세계 모든 아이들이 엘사의 팬이고, 부모들은 '제발 겨울왕국2에서 엘사와 안나가 새로운 옷을 입고 나오지 않기를' 바라던 때였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카나미는 만 3살이 되면서 과감하게 유모차를 처분해서 이제는 더이상 유모차를 타지 않고 극장에도 걸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H1는 자존심이 꽤 상했나보다. 그 날 영화가 끝나고 카나미 가족과 같이 링컨센터 맞은 편에 있는 카페 피오렐로(Fiorello)에서 점심을 먹은 뒤 집으로 돌아갈 때, H1는 끝까지 카나미 앞에서 유모차 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걸어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날 이후부터 H1는 절대로 유모차를 타지 않았고, 대중교통을 타고 주말에 여기저기 다니기가 말도 못하게 수월해졌다.  


한 달쯤 전에 H1는 프리스쿨에 가고, 혼자 링컨센터까지 걸어가서 M11버스를 탄 적이 있다. 금요일이어서 회사로 가야 했지만, 급한 일이 없었고 그 날따라 64번가 전철역에서 1호선을 타고 회사로 출근하기에는 무언가 아깝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무언가는 나에게 주어진 자유였던 것 같기도..) 에어팟을 귀에 꽂고 스포티파이로 My Fav 폴더에 있는 음악을 들으며 '아무 버스나 타고,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려야지'라는 마음으로 타게 된 버스가 M11버스다. 그 날 워싱턴에 일하러 간 하타나카상(畠中さん)이랑 라인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다보니 버스는 어느새 14번가 & 7번 애비뉴를 지나, 그보다 더 남쪽에 있는 웨스트빌리지 쪽에서 좌회전을 하고 있었다.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내려서 다시 북쪽으로 걷다보니 익숙한 길이 나왔다. 어느 주말에 교회에 갔다가 H1과 함께 34번가 쯤에서 신발을 사고, 그 근처를 지나던 아무 버스나 타고 내렸던 동네였다. 스텀타운 커피 쪽을 찾아가볼까 하면서 구글맵을 켰는데 스텀타운은 생각보다 동쪽으로 꽤 걸어야하는 반면, 서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첼시마켓에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남쪽에서' 첼시마켓을 향해 걸어가게 되었다. (그동안은 보통 북쪽에서 첼시마켓을 찾아갔었다) 1월, 2월은 시간이 날 때마다 스키장에 다니던 때였는데, 어느 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내 옆에 앉은 60대쯤 되어 보이는 분과 짧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필라델피아에서 로스쿨을 다녔다고 이야기하니, 그 분도 필라델피아와 맨하튼 중간쯤에 있는 동네(트렌튼 정도였던 것 같다)에서 스키를 타러 온 거라고 하며 필라델피아도 잘 안다고 했다. 그 분은 필라델피아 다운타운에 있는 리딩터미널마켓을 좋아한다고 했고, 나도 그곳이 첼시마켓의 로컬 버전인 것 같이 느껴져 좋아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흥미로워 하면서도, 첼시마켓은 이제 너무 상업화되어서 예전의 멋이 사라지고 관광객들만 가득한 곳이 되어버렸다고 아쉬워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날 이후로 나는 웬지 뉴욕에 살면서 첼시마켓을 좋아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느껴졌다. '뉴욕에 처음 온 관광객들이나 신기하다면서 찾아가보고 랍스터를 먹으며 인증샷을 찍는 곳 아냐. 난 이제 뉴욕에서 살면서 일도 하고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관광객과 구분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우습고 부끄럽기까지 하지만, 아무튼 그 때의 감정은 그랬다. 화창한 날에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첼시마켓이 보이니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여긴 여러 번 와봤으니 나는 더 이상 첼시마켓을 '구경'하러 가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이폰으로 사진은 계속 찍었다. 이제는 어쩌면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다시 못 가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첼시마켓이고 리딩터미널마켓이고 모든 것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첼시마켓에서 랍스터는 먹어봤지만 아직 타코는 안 먹어봤고, 직전에 갔던 윈덤(Windham) 스키장에서 점심으로 자주 먹은 하드 타코에 푹 빠져있던 터라, 인도네시아에서 온 로스쿨 친구 부디(Budi)가 추천해 준 로스 타코스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걷다보니 줄이 길게 늘어선 로스 타코스를 발견했는데, 예상대로 패스트푸드처럼 주문 후 음식을 받아서 아무 곳에서나 대충 타코를 먹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윈덤에서 늘 먹던 비프 칠리를 생각하며 비프 타코를 주문했다. 건강을 생각해서 콜라는 주문하지 않았는데, 2분 후 타코를 먹으면서 음료수를 시키지 않은 걸 목매이게 후회했다. 부디가 첼시 마켓의 로스 타코스를 추천해줄 때, 나이지리아에서 온 로스쿨 친구 페미(Olufemi A. Omosuyi인데 우리는 줄여서 페미라고 불렀다)는 자기 스타일이 아니었다며 별로였다고 이야기했는데, 내 의견이 정확히 페미와 일치했다. 그 타코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일단 소프트 타코라는 게 맘에 안 들었다. 밀가루가 아닌 콘으로 도우를 주문해서 나는 하드 타코가 나올 줄 알았는데, 모든 타코는 소프트 타코였던 거다. 또, 크기가 어느 정도일 지 몰라서 타코 하나만 주문했는데, 정말 손바닥보다 작은 타코가 나와서 그 때까지 일어나서 아무 것도 안 먹은 내 성에 절대 찰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첼시마켓에 있는 또다른 타코집인 타쿠미 타코를 찾아갔다. 이름모를 타코 두 개와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는데, 하나는 하드 타코로 나머지 하나는 소프트 타코로 나왔다. 하드 타코는 맛있었지만 소프트 타코는 영 별로였다.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타코를 삼키며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아차. 어느 딜 관련해서 뉴욕 로펌의 한국인 파트너 변호사님이 홍콩에 있는 파트너 변호사님에게 나를 소개한 상태였고, 홍콩에 있는 변호사님이 나를 급하게 찾으며 몇 가지 질문을 남겨둔 상태였다. 사무실로 부재중 전화도 와 있었다. 이제까지의 여유롭던 마음은 민들레 꽃씨처럼 사라졌고 나는 얼른 1호선을 타고 회사로 갔다. 걸어가면서 계속 핸드폰으로 이메일 답변을 보냈다. 50번가 역에서 내려서 6번 애비뉴쪽으로 걸어가며 바라본 타임스퀘어는 늘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쳤고, 할 일을 안고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괜히 신이 났다. 진짜 변호사가 된 느낌이 들면서 '혹시 나 워커홀릭 아니야?'하는 망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내가 자주 하던 업무에 관한 질문이어서 업무에 대한 부담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내가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업무가 어제 마무리되었다.


한국 로펌과 연계해서 진행하게 되었고, 예상대로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영국에 있는 변호사에게 '이제 본건은 마무리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기쁘다'는 이메일을 보내게 된거다. 예상치 못했지만 신나는 기분으로 시작된 업무가 차분하고 심지어 착잡한 마음까지 드는 상황에서 마무리되었다. 첼시 마켓에서 업무를 시작한 이후로도 나는 H1와 함께 뉴욕에서 스키장을 여러 번 더 갔고, 심지어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하면서 타호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헤븐리 스키 리조트에서도 스키를 탔다. 그 후 H1를 한국으로 먼저 보낸 후, 혼자서 포틀랜드를 여행하고 뉴욕에 돌아왔는데,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렇게 다채로운 시간을 보냈는데, 불과 열흘만에 미국 상황이 정말 심각해졌다. 오늘도 일어나서 남편과 한참 통화하고, 유투브로 NBC 뉴스를 보다가 늦은 점심을 해먹고 낮잠을 잔 후 시오리상(詩織さん)과 일본어 수업을 한 시간 했다. 집에 있으면 시간이 참 안 가는 듯 하면서도 별 걸 안 했는데 저녁 시간이 되어 버린다. 시간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남편이 알려준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웹사이트로 가서 회원가입을 하고, 디지털 콘서트홀에 들어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한 달동안 디지털 콘서트홀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뉴욕 메트오페라도 무료로 라이브스트리밍을 해주지만, 프로그램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서 베를린 필의 디지털 콘서트홀에서 조성진을 검색했다. 보스(BOSE) 스피커를 맥북과 연결해서 묵직한 음감으로 조성진의 2017년도 연주를 듣고, 앵콜곡인 드비쉬의 Suite Bergamasque는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앵콜곡이 끝나고 (인터미션 후의 곡인)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사실 나는 조성진의 앵콜곡을 반복해서 들을 생각이었는데, 다음 곡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향곡인 브람스의 4번 교향곡이었다. 1악장 첫 시작부터 템포와 부드러움, 호흡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지금 여섯 번째인지 일곱번 째인지 계속 반복해서 이 교향곡을 듣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좋은 연주를 집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니, 매일 할 일 없이 티비를 보거나 지겹도록 들은 스포티파이 재생목록만 반복하다가 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감상하니까 정말 좋다'고 생각하며 기분이 좋았는데, 계속 듣다보니 '이 연주를 내가 공연장에 가서 들었어야 하는데.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 홀(David Geffen Hall)이나 카네기홀에 가서 마음껏 연주를 들을 수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의 심각한 상황이 더 우울하게 다가왔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어서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난리고, 나는 한국에 있는 H1과 H2가 보고 싶으면서도, 이제 떠나면 마치 영영 마지막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선뜻 발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한국에 들어가면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할텐데, 내가 부모님 댁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고 부모님은 잠깐 부산에 가 계시라고 하는게 좋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늘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갈 때면 공기가 달라져서인지 몇 주동안 목감기에 시달렸었는데, 이번에도 혹시 목감기가 오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게 2020. 3. 16. 월요일이었고 그 때만 해도 아직 날짜가 10번대였는데, 이제 어느새 2020. 3. 25.가 되었다. 4월이 되기까지 일주일도 안 남았다. 출국일을 향해 시계는 점점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고, 나는 여기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서 무언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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