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ia Mar 27. 2024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소

윤동주, <무서운 시간>

무서운 시간


                                                                           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소.

슬픈 천명을 받아 홀로 침전하고 있다 느끼면서도 마지막 남은 숨을 몰아쉬며 남겨준 윤동주의 시편들.

죽을 자인 산 자들과 죽음으로 결국 영원한 삶이 완성될 자들을 사랑하며 쓴 그의 시는 살아가는, 죽을, 다시 살, 영원히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 울림을 준다.


폭격기를 몰고 떠난 조종사들은 돌아오기 전 폭탄을 다 떨궈야 한다지.

싣고 돌아오는 길 착륙하다 터지면 큰일이기에.

코카인 주사를 맞고 이륙한 조종사 중 차마 폭탄을 투하하지 못하고 홀로 너른 바다에 침전한 사람들도 있었을까.

누군가를 죽인 후 사는 삶을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젖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팔소리를 기다리자고 마지막 호흡을 다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간 동주를 저 하늘에서 만나는 날, 따뜻하게 한 번 안아줘야겠다.

고마움과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담아.

매거진의 이전글 잊었노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