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4: M이 그리운 날
우린 비슷한 게 많았다.
항암 중 먹고 싶은 것도 같았고(수박, 귤, 폴라포와 같은), 자다 중간에 수없이 깨는 시간도 비슷했다.
같은 삼중양성 유방암 타입이었고, 항암 날짜도 같았다.
외국인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비슷했다.
시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우리는 병원에 가지고 들어온 텀블러마저 똑같았다.
누워만 있던 M이 몇 달 만에 처음 휠체어에 앉은 날,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환호했다.
우리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에게도, 이모님에게도, 나에게도 기적 같은 날이었다.
처음 보조기구를 활용해 일어났다 앉은 날에도 우리는 모두 행복해했다.
그날을 넘길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던 밤도 있었다.
숨 쉬기를 어려워하며 괴로워하던 밤, 통증이 너무 심해 비명을 지르던 밤에는 같이 울었다.
하나님, M을 살려주세요, 통증을 줄여주세요.
기도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퇴원 후에는 요양병원으로 옮긴 M을 만나러 갔다.
독성항암 후유증이 심했던 때라 자주 가볼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아쉽고, 한 번이라도 더 보러 갔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언니가 와서 좋은가 봐요, 저렇게 많이 웃네 하시던 어머님.
조금 더 자주 가서 웃게 해 주었더라면.
한참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는 동안 M은 호스피스에 가 있었다.
손이 떨려 여러 번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는 바람에 핸드폰이 비활성화가 되어서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다시 연락이 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왈칵 눈물이 솟았다.
우는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 편의점에 들러 색색가지 과일을 사서 갔는데, 다행히 맛있게 먹어주었다.
꼭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수요일에 다시 와서 하루 자겠다고, 곧 다시 만나자고 하고는 또 올게! 하며 병실을 나섰다.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길게 머물걸.
한 번 꼭 안아줄걸.
M은 내가 찾아갔던 그 주 금요일에 눈을 감았다고 한다.
원래 가려던 수요일에는 가족 면회가 잡혀 갈 수가 없었다.
참으로 곱고, 예뻤던 M.
헤어지기 직전 함께 기도한 시간에 위로를 삼는다.
그 나라에서 언젠가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못다한 이야기들 도란도란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