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매달려 13

by 브리

#폭우


강원도에 접어들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을 탄 빗방울이 차장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해지자 루오는 말이 없어졌다.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이며 시야를 확보했지만 어두워진 도로와 세찬 비는 초보 운전자에게 버거운 듯 보였다. 명원은 핸드폰으로 날씨를 검색하고는 이 비가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을 알았다.


“안되겠다. 저기 차 좀 세워봐. 내가 운전할게.”

고속도로에서 내려 국도로 접어들었고 조금 있으면 제천 IC로 진입해야 한다. 명원은 부스럭거리며 운전대를 잡을 준비를 했다. 루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형.”


형, 한마디만 했는데 목소리가 심상치가 않다. 명원 뿐만아니라 뒷 좌석에 있던 수민도 고개를 돌려 루오를 보았다. 뭔가를 꾹 누르며 참고 있는, 그러니까 괜찮은 것처럼 꾸며내는 기운이 가득한 목소려였다.


“왜?”

“형.”


루오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사이 차는 부드럽게 차선을 바꿔 갓길로 들어섰다. 명원은 얼른 비상등 버튼을 눌렀다. 루오는 짜증스러운 듯 머리를 뒤로 기대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입술이 일그러져 있었다.

“너 왜 그래?”

“형. 나 속이 안좋아.”

“뭐? 언제부터?”

“삽십분전부터.”


그때라면 추측가능한 건 휴게소다. 휴게소에서 사 먹은 게 잘못된 걸까? 김밥, 어묵, 소세지, 휘핑크림이 가득한 카페라떼, 우동. 의심이 가는 게 너무 많다. 명원은 일단 루오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열은 없다.


“정확히 증상이 어떤데?”

“속이 미슥거리고 배가 아파. 화장실 가고 싶어.”

“체했나보다. 야. 그러게 작작 좀 먹지. 닥치는 대로 입에 넣더니만.”

“배고팠단 말이야. 그리고 남기면 다 쓰레기잖아. 나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먹은 거라고.”

“일단 나랑 자리 바꿔.”


명원은 황급하게 차 문을 열었다. 비소리가 소란스러웠다. 루오는 배를 움켜쥐고 엉거주춤 차에서 내리더니 곧바로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 잠깐 사이에 두 사람의 어깨는 축축히 젖을만큼 비는 거셌다. 수민이 옆으로 몸을 옮기며 루오를 안으로 들였다.


탁,


뒷좌석 문이 닫히자 마자 루오는 앞으로 쓰러지며 수민에게로 넘어갔다. 놀란 수민이 팔을 벌려 루오를 안았다. 자연스럽게 루오의 이마가 수민의 어깨에 얹혔다.


“형. 빨리. 나 화장실 좀.”


식도를 쥐어 짜서 간신히 나오는 목소리로 루오가 중얼거렸다. 그는 왼손으로 입을 틀어막고서 몸을 웅크렸다. 수민은 자기도 모르게 루오의 등을 쓸어내렸다. 엄마가 어린 아이에게 하듯 적당히 힘을 줘서 토닥였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검색하던 명원이 그 모습을 심난하게 바라봤다. 진짜 아픈가? 약간은 쇼인가? 얼만큼 아픈거지? 차 지붕 위로 내려꽃는 빗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명원의 불안도 덩달이 부풀어올랐다. 평소라면 당연히 걱정이 먼저겠지만 여기까지 그들을 끌고 온 장본인이 아프다고 하니 얄밉다는 생각이 든다. 명원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그저 가벼운 체기에 멀미일 것이다. 분명. 분명히.


그들은 가까운 주유소로 들어갔다. 명원이 화장실 앞에 대충 차를 대자 루오는 빛의 속도로 화장실로 들어갔고 수민이 급하게 루오의 뒤를 따라 뛰었다. 루오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게 보였지만 빗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명원은 주차 구역에 제대로 주차를 한 뒤 빗속을 뛰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기는 작은 주유소 화장실인만큼 화장실이 겨우 두칸뿐이었다. 그나마 남녀가 나뉘어져 있는 게 다행이었다. 양쪽으로 나뉘어진 입구 중 수민은 어디로 갈까 갈피를 못잡더니 건물의 짧은 처마 밑에 섰다. 명원은 일단 남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으나 루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도 수민의 옆에 가서 어깨를 웅크리고 섰다. 두 사람 다 촉촉이 젖어 있었다.


수민의 화장은 번져서 뭉개졌고 윗옷은 젖어 속옷 라인이 비쳤다. 그녀는 아주 실용적이고 단순한 스포츠브라를 입고 있었는데 단독으로 입어도 될만큼 무난해보였다.

-어디까지 가는 거냐. 김명원.


명원은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카락 끝에 달려 있던 물방울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수민이 손등으로 튄 물방울을 닦았다. 그 바람에 아이라인이 더 번졌다. 명원은 수민의 눈 끝에서 점점 커져 가는 검은 얼룩이 신경 쓰였다.


“다 젖었네요, 화장실 가서 거울 보고 얼굴 좀 닦아요. 지금 팬더 됐으니까.”

“그렇지만 루오가...”

“그러니까 얼른요. 시간 끌지 말고.”


망설이던 수민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이내 나왔다. 꼼꼼하게 닦아내기보다 그냥 물로 세수를 한바탕 한 모양이었다. 눈 주위 검은 색은 사라졌지만 입술에는 아직 붉은 립스틱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마에는 휴지 조각이 찰싹 붙어 세수한 티를 냈다. 여러 모로 무던한 여자다. 아니 실용적인 여자다. 명원은 그 점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다만 수민은 좀 더 덜렁거리긴 하지만.


“얼굴 이리로 대봐요.”

“왜요?”

“한국에선 웬만하면 휴지로 얼굴 안 닦아요. 내 생각이 짧았네. 차에 가서 수건 있는지 찾아 볼걸.”

명원은 휴지조각을 떼서 보여 주었다. 수민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마를 어루만지며 웃었다. 웃음은 길지 않았다. 수민이 목을 빼고 남자 화장실쪽을 보며 물었다.

“루오 괜찮을까요?”

“모르겠어요. 화장실에서 나오면 상태 보고 약국에 가든 병원에 가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회사에 전화를 해야 할지 말지도. 잠시 뜸을 들였다 명원이 덧붙였다.

“강원도까지 가는 길이 참 머네요.”


좀처럼 그치지 않는 비를 보고 있던 수민이 고개를 돌려 명원을 보았다. 묘하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마음 한쪽에 온기가 느껴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 궁상맞은 상황이 나아졌다. 수민은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지도상으로는 두 시간 반이면 간다고 했는데. 지금 기분으로는 가는데 이박 삼일은 걸리는 거 같아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벌써 그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말했던 별마로천문대에 갔을 거에요.”

“천문대? 거긴 왜?”

“우린 별을 보는 걸 좋아했거든요.”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하는 상황에 딱 들어맞지 않는 대답이었다. 일단 수민의 얼굴빛이 부드럽게 변한 것부터가 그랬고 현재진행형인 것 같은 취미생활도 그렇고. 하지만 아빠라 생각해도 괜찮을 답변이긴 했다. 명원은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그런데 한국에도 우기(雨期)가 있나요? 무슨 비가 이렇게 내려요?”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게 분명하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얼마나 다양한 날씨를 겪는지 수민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천문대 이름을 안다고?


“금방 그칠까요?”


명원은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을 꺼냈다. 아까도 검색했지만 다시 한번 검색창에 ‘강원도 날씨’를 입력하면서 남자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구토 소리에 신경을 쏟았다. 비가 그칠지, 루오의 구토가 멈출지 누가 좀 명확하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형. 나 죽을 거 같아.”


시간이 지나가도 루오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빠졌다. 삽 심분쯤 지났을 때 후들거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긴 했으나 그 잠깐 동안 얼굴이 핼쓱해져 있었다. 루오의 말에 따르면 몸 안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게끔 다 배출시켰지만 여전히 아랫배가 아프고 속은 울렁거린다고 했다. 하도 토하니 이제는 위액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괜찮은가 싶어 밖으로 두 걸음 옮겼다가 다시 급하게 문을 닫고 들어가 변기를 붙잡았다. 그게 벌써 다섯 번쨰였다. 일단 멀미는 아니다. 그리 가볍지도 않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급체거나 장염이 의심되었다. 그 말인즉 무조건 병원을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명원은 이마를 문지르며 고민에 빠졌다. 그때 주유소에서 일하는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참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니 확인차 온 모양이다. 수민이 차분하게 병원이 근처에 있냐고 물었다.


“한 20분 가면 병원이 있긴 한데 시골병원이라 이 시간에 의사가 있을려나 모르겠네. 그냥 119를 불러 가는게 제일 편해요.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도 알려주니까.”

명원은 화장실 파닥에 철퍼덕 앉아 있는 루오를 심난하게 바라봤다. 수민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루오를 지탱했다. 루오는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리며 수민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고서 눈을 감고 있었다. 창백하고 파리한게 영혼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수민이 눈을 들어 명원을 재촉했다. 명원은 과연 얼마나 빨리 자신들이 강원도 병원에 실려 간 사실이 알려질 지 가늠하려다 집어치웠다. 어디에 먼저 전화를 할까? 119? 회사? 엄마? 명원은 한번도 자신이 무기력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깨달은 건데 명원은 누군가를 전적으로 책임져 본적도 없었다. 그때였다.

“119에 전화해요. 얼른.”


수민이 루오의 몸을 감싸안고서 말했다. 명령조의 말투여서 명원은 조금 놀랬다.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매끈하게 넘기고 수민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명원을 쏘아보면서 엄격한 선생님처럼 지시했다.

“루오가 몸을 떨어요. 탈수 될까봐 겁나요. 빨리 수액을 맞는게 좋겠어요. 얼른 전화해요.”


그리고 덧붙였다.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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