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점이 그득그득
40년 만에 처음 시작한 주택살이가 이제 막 두 달을 넘었다. (왠지 몸도 마음도 바빠 브런치를 게을리했다.) 주택으로 이사한 소감이 어떤지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대답은 늘 같다.
"너무 좋아. 너무너무!!!"
뭐가 그토록 좋은 것인지.. 기존의 삶과 비교하며 좋은 점을 하나하나 따져본 적은 없지만 몇 가지 굵직하게 달라진 점은 있다.
첫 번째는 '단독' 주택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 가족만의 단독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파트에 살 때는 우리의 생활 패턴이 아랫집, 양 옆집, 윗집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단속한 적이 많았다. (밤 10시가 되기 전에 꼭 잠을 자야 하고, 9시 이후로는 피아노를 치거나 리코더를 부는 것, 노래를 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심지어 고기를 굽거나 생선을 구울 적에도 복도에 냄새가 가득 찰까 봐 신경을 많이 썼었다.
주택에 살면서 당연히 이웃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하며 살고 있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든가, 너무 크게 웃지 말라든가, 밤늦게까지 놀지 말라든가.. 하는 금지령은 대부분 해지되었다. 주변에 피해를 끼치기 싫어 늘 촉을 세우며 살던,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는 게 참 많았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악역을 맡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은 바로 단 to the 독 주택이기 때문에. 움하하. 어디 그뿐이랴? 누군가 집 주소를 물을 때 'ㅇㅇ아파트 ㅇ동 ㅇㅇㅇ호' 대신, '단독'이라 말할 때마다 느껴지는.. 입꼬리가 움찔움찔,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은 아직까지 꽤 신선하다.
두 번째 좋은 점은 바로 '옥상'이 생겼다는 것. 아파트가 답답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캠핑을 가서 자연의 바람을 쐬는 것을 좋아하던 우리 가족에게 옥상은 그야말로 캠핑장을 방불케 한다. 온갖 캠핑용품은 이미 옥상에 24시간 설치되어 있고, 햇볕이 좋은 날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부르스타에 삼겹살을, 바람이 찬 날에는 담요 하나씩 어깨에 두르고 오들오들 떨면서 라면을 먹는다. 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옥의 기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가까이에 있는 유치원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꽤 기분 좋다. 3년간 TV 없이 살던 지난날도 좋았지만 옥탑방에 TV를 설치한 후로는 아이들과 주말마다 여유롭게 뒹굴거리며 깔깔깔 웃어대는데, 한 없이 나태해지는 기분을 느껴보는 게 참 오랜만이라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세 번째 좋은 점은 집이 골목 안에 위치해, 조용하고 아늑하다는 것이다. 대로변에 있던 아파트에 살다가 골목 안으로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그 차이는 극명하다. 특히 저번 집은 대학병원이 가까이에 있어서 삐용삐용 급히 달리는 앰뷸런스 소리가 30분에 한 번씩은 들렸던 것 같다. 그때마다 작게 성호를 그으며 구급차가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기를, 그리고 구급차에 타고 있던 환자가 별 일 없이 병원에서 걸어 나오기를 기도하곤 했는데 한 편으로는 긴박한 사이렌 소리처럼 늘 내 마음이 긴박하고 초조했었다. 지금의 집이 좋은 이유는 그때와는 다른 '안정감'이 들어서인데, 골목이라는 커다란 품이 한 집 한 집을 감싸 안아주고 있는 느낌이다.
또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큰 이불을 햇볕에 말리고 팡팡 털 때, 집 앞을 지나가던 아이의 친구가 아이 이름을 부르며 놀자고 할 때, 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이 더 가깝고 안전해진 것도,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답답하지 않게 격리 기간을 잘 지내게 된 것도.. 이 집에서 지내는 날이 하루하루 더해질수록 주택으로 이사오길 잘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밤늦게 외롭게 설거지를 하다가 담벼락에 앉아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경험도 주택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 (이제는 설거지하는 순간이 설레기까지 한다.)
이제 겨우 주택에 두 달 살아본 비기너가 멋모르고 좋은 점만 나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허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다음 시간(?)에는 잃은 것에 대해서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약간의 맛보기로, 잃은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내 무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