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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록홈즈 Jun 27. 2022

싹트네 싹터요

이 골목에 사랑이



김치, 반찬, 두루마리 휴지, 와인, 쌀, 간장, 감자, 옥수수, 요구르트, 화분, 고추, 가지, 상추, 커피, 쿠키... 장바구니 리스트가 아니라, 주택으로 이사 온 후로 이웃에게 받은 것들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이 골목에서는 소리 소문 없이 많은 물건들이 비밀리에 오가고 있다. 전래동화 <의 좋은 형제> 였던가.. 형과 아우가 서로의 집에 쌀가마를 몰래 가져다 놓았다가 어느 날 쌀가마를 진 채 길에서 마주쳐,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처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의 좋은 이웃들은 나누고, 받고, 다시 나누고, 받고를 반복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진 골목에서 마주쳐 부둥켜안고 운 적은 없다. 그건 좀 상상만 해도 상상이 안 되는 재질이다.





우리 집 2층 안방에선 앞 집 옥상이 살짝 보인다. 앞 집 아저씨는 하루에 두 번씩 옥상에 올라가 텃밭을 일구시는데, 옆에서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솜씨가 보통이 아닌 듯하다. 겨울 내내 텅 비어 있던 화분들이 하나 둘 초록빛으로 변하더니, 어느새 넝쿨이 되고 노랑, 하양 꽃이 피고 이내 주렁주렁 열매를 맺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 집으로 배달 온 결과물들이다. 가지, 고추, 상추 모두 농약 없이 기르셨다는데 싱싱하고 탄탄하고 맛도 좋더라. 바로 그날 가지를 넣고 파스타를 해 먹었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잘 먹던지..





쑥스러움이 많은 첫째 아이와, 쑥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없는 둘째가 마음을 합쳐, 앞 집에 가져다 드릴 꽃을 동네  트럭에서 샀다.   아저씨가 옥상에 올라오실 때마다 푸른 계통의 셔츠를 입고 계셨다면서, 파란색을 좋아하시는  틀림없다는 귀여운 추리 끝에  녀석은 푸른 계열의 꽃을 골랐다. 해바라기는 이제  시작될 장마철에,  안에서라도  꽃이 해님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가 골랐다.





우리 집에서 대각선 방향에 있는 한옥에는 귀여운 삼 남매가 살고 있는데, 이제는 뭐 거의 친조카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우리 집 아이들까지 합세해, 다섯 명이 골목에서 뒤엉켜 놀다가 헤어지기 아쉬울 때는 이쪽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기도 하고, 저쪽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민망함과 고마움에 엄마들은 간식거리를 가지고 서로의 집을 방문하고.. 잠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맥주 한 캔을 까게 되고.. 그러다 치킨을 시키고.. 'ㅇㅇ엄마'가 아닌, 서로의 이름을 묻고..


이런 게 바로 이웃 간의 정이요 사랑인 것이다.





제주도에서 막 도착한 초당 옥수수가 너무 달고 맛있길래 몇 개 나눴더니 바로 그날 햇감자가 답례품으로 돌아왔다. "어휴- 뭘 이런 걸 다!!!" 이제 이런 인사는 우리 사이에 생략하기로 한다. 이미 우리는 구황작물의 띠, 아니 아니 뫼비우스의 띠 같은 사이가 되었으므로.





햇감자를 쪘더니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그 주에는 스콘 가게에서 감자 스콘이 아주 인기가 좋았다지. 매주 토요일마다 골목에 퍼지는 온갖 종류의 스콘 향 중, 감자 스콘 향이 가장 고소하고 따숩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웃의 찐 애정이 찐하게 담긴 찐 감자를 스콘에 넣었기 때문이게찌. 햇감자에 대한 답례로 감자 스콘을 드린 것은 당연찌사.





가게 오픈한 것 축하한다며 이웃이 선물로 주셨던 작은 화분은 다섯 달 만에 쑥쑥 자라 화분갈이를 한 번 해주었다. 스콘 사러 오실 때마다 고사리를 보며 기분 좋게 놀라시는 이웃. 나도 덩달아 으쓱하며 기분이 좋다.





옆 옆집은 아주 맛있는 커피 집인데, 갓 구운 스콘이 맛있어서 한 두 번 가져다 드린 게 다인데, 자주 커피를 타서 가져다주신다. 그것도 일회용 컵이 아닌 유리컵에. 아마도 우리 부부가 커피를 사러 갈 때마다 텀블러를 들고 갔던 것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한 존중의 일환으로 일회용품이 아닌 유리잔에 커피를 담아 주시는 것 같다. 다 마신 컵은 깨끗이 씻어서 스콘 하나 넣어 반납. 아 정말이지 주고받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이 동네, 이 골목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가 매주 다른 동요를 학교에서 배워오는데, '싹트네 싹터요' 동요야말로 우리 골목의 주제곡이 아닐까 생각된다.


싹트네 싹터요

내 마음에 사랑이

싹트네 싹터요

내 마음에 사랑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사랑이 싹터요

싹트네 싹터요

내 마음에 사랑이



싹트네 싹터요.

이 골목에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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