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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록홈즈 Jul 28. 2022

오늘 밤 너와 나 단 둘이서

파리 파리


주의: DJ. DOC를 알아야 제목 이해 가능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유독 벌레를 싫어한다. 아니, 무서워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벌레는 싫지만 자연은 좋아해서 아파트에 살 적엔 한 달에 두어 번 꼭 캠핑을 다녔다. 그때마다 벌레가 싫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숲은 벌레들의 집이야. 우리가 벌레집에 놀러 온 거니까 싫더라도 조금 참아보자-" 해놓고는 어깨에 무당벌레가 앉으면 졸도하기 직전까지 소리를 질러대는 모순적인 엄마. 바로 나다.


이런 내가 주택으로, 그것도 오래된 동네의 오래된 구옥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아무리 실내를 리모델링했어도, 바깥 환경은 내 힘과 돈으로 바꿀 수 없기에, 나는 매일 낡은 벽돌 구멍을 타고 들어오는 벌레들과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이 녀석들과 정이 들어가는 중이다.


동거 중인 친구들을 소개하자면 모기, 파리, 나방, 돈벌레, 초파리 등이 있고, 녀석들은 하나같이 참 징그럽게 생겼는데 그중 갑은 단연코 돈벌레다. 실은 제대로 된 이름을 몰라, 멋대로 지네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구글링을 한 결과 녀석의 이름이 돈벌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벌레는 좌우 양쪽으로 15쌍의 다리가 나 있는 데다 끔찍한 건 다리가 잘리면 계속해서 다시 생긴다는 것이다. 돈벌레는 다리를 공격을 받으면 재빨리 다리를 자르고 도망간다. 서늘해지는 가을 무렵이면 벽 틈을 통해 집 안으로 주로 침입한다.

돈벌레를 퇴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보이는 족족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돈벌레를 죽이면 몸이 터져 액체가 튀어나와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돈복이 나간다는 미신 때문에 꺼림칙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원활한 이해를 위해 이미지를 올리고 싶지만 구글에서조차 돈벌레 이미지 앞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혐오스러울 수도 있으니 열람 시 주의".

따라서 그 이미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고, 돈벌레는 주로 지하에서 나타나는데 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녀석인지라 나는 우리 집 지하의 습기를 잡기 위해 65만 원짜리 제습기를 구매했다.


구글에서도 설명해 주었듯, 보이는 족족 죽이면 된다는데 굳이 비싼 제습기를 산 이유는? 녀석을 잡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생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징귀엽다는 뜻이다. (징그럽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약간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돈벌레는 번식력이 적고 다른 해충을(저도 해충인 주제에) 잡아먹어주는 익충이라는 설도 있어서 그냥 습기가 잡히면 알아서 나가겠거니- 하는 마음이 지금으로서는 큰 것 같다.


내가  계속 돈벌레 얘기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하자면, 며칠  동네에 가오픈한 핫한 커피숍이 있어서 동네 지인과 들른 적이 있다. 오래된 복사집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였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무척 낯이 익은 녀석을 만날  있었다. 이름하여 . . .


함께 간 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거의 카페를 박차고 나가려 했으나, 나는 (약간 우쭐대며) 지하에서 자주 보이는 녀석인데 해롭지 않다며 아무렇지 않게 녀석의 옆을 지나쳤다. 그리곤 생각했다. 주택에 산지 6개월 만에 내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돈벌레는 징그러워서 죽이지 못하는 반면(돈복 나갈까 봐 아님), 눈에 보이는 족족 잡아 족치는 벌레도 있다. 초파리와 하트 나방이 주로 살생의 대상이다. 벌레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전부 손에 휘감을 만큼 벌레를 싫어하는 내가 초파리와 나방을 족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파리채 덕분이다. 파리채의 가장 큰 장점은 벌레를 죽였을 때 별다른 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초파리와 나방이 눈꼽보다도 작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주택살이의 필수 여름템은 다름 아닌 파리채라 말하고 싶다. 단, 이름은 파리채지만 실제로 파리를 잡아본 적은 없다. 파리는 (창문에 몇 번 머리를 박기는 하지만) 들어왔던 창문이나 문으로 기가 막히게 탈출을 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서 본의 아니게 벌레와 마주하는 날이 늘었다. 그래서 가끔은, 아니 가끔보다 조금  자주, 아파트가 그리운 적도 많다. 계속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파리가 집에 들어올 리가 있었을까? 돈벌레를  적이 있었던가? 파리와 돈벌레는커녕, 주기적으로 소독을 해주는 업체가 있어서 싱크대에  흔한 초파리조차 한 마리 없었던  같다.

말 그대로 벌레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했던 곳. 다시 그 안전지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지만, 아직은 주택과도 벌레들과도  친해지고 싶다. 매일  파리채를 들고 벌레와   둘이서 파리 파리를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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