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짝사랑
하얀바탕에 깜빡거리는 커서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내 머릿속도 같이 하얗게 된다.
안그래도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뇌를 빼놓고 살고 있는데 뇌를 돌려야만 하는 상황에서마저 아무생각이 안난다면 큰일이다.
조잡한 나의 생각에 대해 글을 쓰면 고작 열명정도 읽을까? 열명이 보는 글이라면 쓸 수 있지.
내 글에 대한 폄하나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만약에 만오천명이라면 나는 무섭고 부끄러워서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이다.
오늘은 혼자 읽는 글을 쓸 때와 남도 보는 글을 쓸 때 나의 온도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브런지 작가로 진입한 이후 글쓰기에 대한 나의 태도가 달려졌다.
- 고작 열명이 읽는 글이라도 정기적으로 써야한다는 압박이 생겼다. 물론 비공개로 글을 쓸 때도 매년 나의 새해 계획은 '정기적으로 글쓰기' 였지만 새해계획은 그냥 계획일 뿐이었고 강제성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의 우선순위에서도 매번 밀렸지만 글쓰기는 괴담처럼 늘 살아서 새해계획 리스트 1번을 차지했다.
- 글감과 글의 구조에 대해서 생각한다. '뭘 쓸까'에 대해 일과 중에 문득 고민하고 '그래서 너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묵묵부답. 우선 글감을 떠올리는 거부터 쉽지 않다. 오늘은 이걸 써볼까? 하다가 잠들고 오늘은 좀 더 생각해서 글을 써야지 하다가 드라마를 보고 오늘은 진짜 빌드업 좀 하자구. 하는 날에는 친구들과 약속이 잡혀버린다. 여전히 나의 친구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었구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알게되었다. 미안하다.
- '오늘은 뭘 먹을까'와 같은 1차원적인 생각만으로는 펜을 들수가 없다. 남들이 보는 글은 더 근사하고 통찰력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새로운 인사이트도 필요하고 남들과 다른 나만의 특별함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글을 쓰지 못하겟다. 억지로 자판을 두드리다보면 내가 쓸 것 같지 않은 단어와 별 생각 없었던 주제에 대해 중언부언하다가 결국 시원하게 다 날려버린다.
-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는 게 뭔가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하려고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라이킷이 많았으면 좋겠다. 알림표시가 있나 없나를 하루에 세번, 네번씩 확인한다.
간절한 파란점 하나를 보자마자 신이 나서 누가 라이킷했는지 보고야 만다. 4초 전. 싸이월드를 늘 새로고침하던 새내기 시절이 문득 겹친다.
같이 호흡하고 공감하고 있다는 생존신호 같은 파란 점을 매일 매시간 매초 기다린다.
글을 쓰는 이 순간마저도 나는 솔직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 세번, 네번??
- 끝없는 퇴고. 도대체 언제까지 퇴고만 하나. 퇴고만 하다 글을 다 외워버릴 것 같은데.
발행버튼을 누르기가 망설여진다. 오타가 있을 것 같고 문맥이 안맞는 것 같고 마침표를 찍었나. 안찍었나.
사람들이 좋아할까. 읽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라도 누군가는 내 글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그치. 나는 쫄보다. 발행버튼이 무서운 쫄보.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것도 잘 읽히는 글을 쓰는 것도 공감을 얻는 것도 단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것은 나의 이야기라는 것.
정기적으로 쓰느라 억지로 글감을 짜내는 것, 라이킷을 많이 받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솔직하지 못한 글을 써버리는 것이 지금 가장 염려스럽다.
도입, 본문, 결론을 생각하느라 아예 시작조차 못하기도 한다.
첫 글을 발행한 지 아직 한달도 되지 않은 주제에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알아서 춤을 추듯 글이 써지고 하룻밤만에 셀수도 없는 라이킷이 쌓일거라고 생각했나.
사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이 왔을 때 작가로 인정 받았다는 성취가 없진 않았다. 오히려 작가로 인정받았다고 어깨춤을 추지 않았던가.
어디가서 글을 쓴다고 말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자신있게 발행버튼을 누를 수 있는 날까지 꾸준히 글을 쓰겠다. 예전처럼 내 친구 글쓰기를 무책임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글쓰기만을 위한 시간도 규칙적으로 내어주겠다. 뒤죽박죽이어도 일단 아무말이나 쓰기 시작하면 어떤 날은 줄줄 써지기도 또 다른 날은 다 날리기도 하겠지. 그렇게 밀당하다가 친해지는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