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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토끼 Jun 05. 2024

내가 먹을 양파썰기

기분이 썩 좋은데?

서로가 사랑할 때 했던 말들이 얼마나 빠르게 의미가 사라지는지 배우고 있다. 보고싶고 만나고 싶은 감정과같이 일상을 보냈던 익숙한 시간들이 그만하자는 단 네글자에 단칼에 잘려나갔다. 시간이 언제 그렇게 지나갔나 십년이라는 시간이 허무할 정도.


나 없으면 못산다고, 우리는 가족이라고 오십년뒤에 헤어질 수 있다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우린 가족이 아니었다. 어떤 가족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연락을 끊고 손절을하나.


너의 짐을 정리했다 박스 하나로 정리된 너의 물건들. 빨리 치워버리고 싶다. 이걸 핑계로 연락해볼까. 미련있어 보이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나의 이성과 감정이 분리된 오만가지 생각. 너의 방에 있는 나의 물건들은 어떻게 됐을까. 버려졌을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꾸만 튀어나오는 너의 물건과 너의 사진. 최대한 안보이는 곳에 둬버렸다. 너는 내 사진들을 버렸을까.


서울 온 동네에 너와 안다닌 곳이 없다. 심지어 지방까지도. 어딜가든 나는 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너를 떠올리지 않게 되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걸까.

식당들이 카페들이  너무 많다. 나의 동선 곳곳에서 발목을 잡는다.


너의 하루가 어떨지... 혼자 밥먹고 술이나 먹고 나를 그리워하는건 아닌가. 그런 너를 짠하게 생각하는 건

엄청난 나만의 오해고 오만이다. 어디까지나 너의 선택이었고 밥은 나도 혼자 먹는다.

나는 나를 짠하게 생각해야 한다.


오래 만났던 시간만큼 서로에게 긴장할 필요가 없어서 편안해져서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처럼 신경쓰지 않아도 늘 옆에 있어서 든든했는데 그래서 좋았던 많은 것들이 이제 헤어지는 이유가 되었다.


헤어지고 돌아보니 많은 것들이 안맞았다.

음악도 영화도 음식도 심지어 드라마도.... 이런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같이 할 수 있는 노력, 의지가 문제였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걸 각자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나....... 그래도 사랑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언어와 행동이 없었던 것 까지 나는 눈치도 없이 사랑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는지 늘 알고싶고 확인받고 싶었을 뿐인데 매일매일 질문하는 내가 너를 힘들게 했나보다.

너를 안고 체온을 느끼고 싶었을 뿐인데 너에게 붙어있어서 너를 귀찮게 했나보다.

너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너무 많은 불평을 늘어놓았나보다.

달달한 드라마 주인공들과 너를 나도 모르게 비교하다가 잔소리를 많이 했나 보다.


사랑할 때 괜찮았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사랑하지 않아서 다 힘들어졌나보다. 힘들어서 사랑하지 않게 된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도 너와 같이 있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너에게 악역을 맡겨버린 것 같아서 미안하다.


나는 좀 더 가슴이 떨리는 관계를 원했고 가족이 아니라 사랑받는 여자친구가 되고 싶었다.


너는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너를 움직이게 할 동력이 없는 것 그 사실을 내가 안다는 것이 너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막는다. 나도 예전과 같은 우리 사이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의 일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간이 많아져서 책을 더 읽을 수 있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챙겨보고 그림을 그리고 손뜨개를 한다. 그러다보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모든 일은 그렇게 균형에 맞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오늘 나는 새로운 동선을 짰다. 새로운 것을 먹고 새로운 카페를 갔다. 나만의 동선.

혼자 치킨은 못 먹어도 밥을 해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내가 먹을 만큼만.

난 이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 이런 걸 좋아하게 됐다고 너에게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 진짜 우리가 헤어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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