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은 병원까지 가는데에나 사용하는 것.
얼마 전, 유년기를 지나 다시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온 사촌동생 귤에게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그리고 내가 우울증 약을 타러 가야 하는데 너도 가서 검사라도 받아보겠냐고 했다.
-성격 테스트 같은 느낌이더라.
귤은 생각보다 쉽게 따라나섰다. 사실은 얼마 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난다면서.
면담을 하고 나온 아이는 울고 있었고,
성격 테스트 같은 문답지를 풀면서도 울고 있었다.
-방금 그 환자가 제 동생입니다. 어떻던가요.
이미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선생님이기에 염치를 무릅쓰고 귤의 상태를 물어봤다.
-음... 스트레스 상황이 있나요? 본인이 원인을 모르더라고요.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저장 강박이 있는 듯한 친척 어른의 딸입니다.
-아... 그러면 말이 되네. 지금 굉장히 중증이고 치료를 꼭 받아야 해요.
놀랍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귤이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나의 일상을 괴롭히던 원인 중 하나는 귤의 엄마였고, 나는 귤을 걱정해왔다.
*
귤의 엄마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했던 그분은 더 이상 없다.
지금 그분은 너무 변했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돌아보건대 그는 시집살이라는 이름의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당시 어린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혹은 내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의미가 없는 헛소리를 했고 헛것을 보고,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체중 감소와 무기력함이 모르는 사람이 봐도 느껴질 정도였단다.
그의 상태를 보고 집 안에서는 이혼 준비를 시작했었다. '이혼은 흠'인 시대의 사람들이었지만, 내 새끼 잡겠다는 공포감은 무엇도 이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사위의 눈물의 호소와 맹세가 이어졌다. 분가를 할 것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접촉을 최소한으로 하기로 약속했다.
무엇보다 이혼을 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강했다. 당시는 이혼에 지금만큼 관대하지 않았고, 슬하에 두 아이를 둔 그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어머니 심정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했던 모양이다.
귤을 병원에 데려가고 이틀 후 귤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왜 나랑 상의도 없이 애를 병원에 데려가? 난 싫어]
[싫은 게 문제가 아니고 애한테 필요한 치료야.]
긴장된 마음을 감추고 귤에게 연락을 했다.
[괜찮아?]
[엄마가 언니한테도 뭐라고 했어?]
[나한테는 별말 안 하셨어. 괜찮아?]
[엄마가 나한테 약 집어던졌어...ㅎㅎㅎ]
[아... 덜덜 최악이었네ㅋㅋㅋㅋ 괜찮아?]
우울증 환자로서 주변에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몇 가지 있는데
-의지로 이겨내라고 말하는 것.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냐고 묻는 것.
-병원에 가는 것을 막는 것.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귤의 엄마는 앉은자리에서 그 모든 것을 해내신 듯했다.
[귤아. 아무리 그래도 약 끊기 전에는 나랑 한 번만 상의해줘. 의사 선생님이 중단하라고 하기 전에는 중단하면 안 돼]
[응 알았어]
그러나 귤은 병원에 갈 날을 놓쳤고, 약도 먹고 있지 않다.
*
딱 한 번.
명절날 우리 집에도 싸움이 일어났다. 여느 싸움이 그렇듯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갑자기.
싸움이 격해지자 나는 바로 밑에 나이인 내 동생과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에도 훌쩍 거리며 울던 아이도 있고, 눈이 동그래져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던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굳이 좁디좁은 내 동생의 방에 한 데 모였다. 그렇게 놀란 마음을 진정하려고 한 것 같다. 제일 나이가 많은 나와 나의 동생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려야 했고 아이들을 위로해야 했다.
-감정이 좀 격해지신 것 같지.
-그러게. 하하. 나도 좀 놀랐다.
나와 동생의 연기는 형편없었다. 서른에 가까운 우리에게도 놀랄 만한 일이긴 했으니까.
그리고 보았다. 귤에 남매의 그 평온한 얼굴을.
이 정도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마치 그냥 우리끼리 놀러 나온 듯이 평온한 얼굴을.
귤네 남매는 열 살이나 많은 우리보다도 많은 것을 겪어 왔던 것이다.
귤네 엄마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고 한동안은 귤의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귤의 엄마는 원망 같은 분노를 쏟아냈다. 내가 아는 나의 그가 아니었다. 귤의 엄마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우울과 분노를 가슴에 품었다.
어디서 서운한 일을 얘기하면 같이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에구 우리 송어
하고 안아 주던 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딸에게
-네가 힘든 게 뭐가 있냐, 의지가 부족하다! 그까짓 것으로 먹었으면 난 백 알은 먹어야 된다!
고 윽박지르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
우울증을 '의지'로 이겨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 우울증을 이겨 내신 것이 맞는지.
그냥 단지 해소하지 못하나 것들을 나도 보르게 주변에 흩뿌리고 있고
그것이 주변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우울증으로 병원에 가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사회의 편견과 주변의 질책을 받을 위험에도 나아지기 위해 병원을 찾은 사람이다.
나의 기분이 나의 소중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를 택하는 사람들이다.
달리는 차에 몸을 던질 용기나,
높은 다리에서 강바닥으로 나 스스로를 내던질 용기가 나에게는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강한 의지를 가졌다.
아니 혹은, 그만큼은 병들지 않았거나.
남을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아직은 남아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성인 당신,
월경을 힘줘서 참을 수 있는가?
우울증도 그렇다. 어차피 호르몬의 문제다.
남성인 당신,
갑작스러운 발기가 당신의 책임인가?
우울증도 그렇다. 어차피 호르몬의 문제다.
나는 내가 억지로 살아낸 오늘이
내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지옥 같은 하루가 되지 않게 하려고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 그 에너지를 정신과로 들어가는데 쓴 것 뿐이다.
당신은 나에게 의지가 없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가?
당신은 나만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해본 적이 있는가?
정신과에 가지 않은 당신,
당신은 충분히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다.
하지만 그만큼 지치고 힘든 사람이다.
제발, 병원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