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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어 Jun 19. 2022

희생, 그 철저한 자기만족에 대하여.

희생배틀

우리의 통화가 끝나가면 수순처럼 외할머니는 눈물 젖은 목소리를 낸다. 


할머니가 병든 엄마 때문에 얼마나 눈물을 흘리는지, 엄마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는지. 


그러면 나는 할머니를 위로하는 대신 

치졸한 반항심으로 이 정도로 멈춘 것에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의 희생정신은

나를 굉장히 성가시게 하기 때문이다. 


*


할머니는 똑똑한 사람이다. 


신혼. 

별도 달도 다 따주겠다는 남편에게 수줍게 알파벳을 가르쳐달라고 했다는,

학구열이 높은 똑똑한 사람. 


그런 할머니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형제가 많아서, 부모님이 힘드실까 봐 알아서. 할머니가 초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할 수는 있었는지 우리는 아무도 묻지 못했다. 

아마 초등학교까지는 졸업하라고 권고에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 그만두셨을 분이었기 때문에. 


어린 나는 하느님께 제발 할머니가 자기 몫을 챙겨 먹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는데. 

그것은 실제로 할머니가 당신의 몫을 모두 남에게 나눠 주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한 기도였다. 


*


할아버지의 집은 서울에 있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동생이 돌이 되기도 전에, 

경기도 어디 변두리에 살던 우리들은 할아버지의 다세대 주택의 1층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은 2층. 


층계가 한 여덟 개 정도는 됐던 것 같다. 그 층계만 오르내리면 할머니의 집이었고 어린 우리는 신났었다. 

할머니의 집에는 투니버스(만화 전문 케이블채널)가 나왔고, 

할아버지가 오시기 전 까지는 만화를 맘대로 봐도 됐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할머니도 우리 집에 오기가 편했다. 

돌이었던 동생이 성인이 될 때 까지도 아빠는 그 집에서 자립하지 못했는데 할머니의 방문은 하루에 최소 세 번이었다. 

직접 한 반찬을, 국을 가지고 오셨고 

때로는 집안 곳곳을 청소해주기도 하셨다. 


초등학생이 되고서부터 나는 그런 할머니가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우리를 위해' 장판을 드러내고 시멘트를 맨 손으로 만지다가 손이 퉁퉁 부은 것을 본 이후로

나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해야 했었는데. 


그때부터였다. 


할머니의 희생이 철저한 자기만족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고모가 어디에서인가 얻어 왔다는 간장이 두 병이 있었다. 

할머니는 간장 맛을 보겠다며 씻지 않은 손을 간장병 안에 넣어서 쪽 빨았다. 

그리고 침이 묻은 채로 다른 병 안에 손가락을 다시 넣어 간장 맛을 보았다.


초등학생이 보기에도 이해할 수 없는 위생관념이었다. 


이게 뭐지. 


나는 더 열심히 할머니 뒤를 따라다녀야 했다.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쓰레기통을 손으로 뒤지기 시작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치매가 왔거나, 비슷한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쓰레기통을 뒤지다니? 


왜 그러시냐는 내게 할머니는 자비로운 얼굴로 괜찮다고 하셨다. 

종량제 봉투를 아껴서 살림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할머니는 자신의 손은 얼마든지 더럽혀져도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행동이었다. 

오히려 불쾌한 행동이었다. 

쓰레기를 내버린, 그 집안 모두의 의사를 반하는 행동. 

하지만 할머니는 더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제발 그만하시라고 해보지만, 

어차피 손은 물로 씻으면 깨끗해진다며 짐짓 거룩하게 말씀하셨다. 


아니 그보다 쓰레기통을 왜 뒤지시는데요. 


할머니는 어떤 말도 못 들으시는 듯 이거는 왜 버렸냐며 '아직 쓸 만한' 것들을 바닥에 줄을 세워 놓으셨다. 

그리고는 손을 정말 물로'만' 씻고 

반찬통을 열어 반찬을 손으로 뒤적거리셨다. 


왜? 

할머니는 '우리를 위해' 반찬통에 있는 반찬을 정갈하게 정리하셨다. 

씻지 않은 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런 할머니를 내내 따라다니면서 너무 상식 밖의 행동을 말리거나, 

아니면 할머니가 더럽혀 놓은 것들을 몰래 처리하는 일들 뿐이었다. 


아니 대체 그걸 왜 하시는데요. 

손도 안 씻고 그렇게 만지실 거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맘대로 하세요. 난 다 갖다 버릴 거니까. 


할머니는 묵묵히 자애롭게 그 비난들을 견디시다가 오롯이 견디시다가 겨우 유난 떨지 말라는 말 정도를 하시고는 했다. 


그러면 나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게 되는 것이다. 

손녀의 비난 앞에서 그런 미미한 반응밖에 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마음 아프다가도 

굳이 청소기나 걸레도 안 쓰고 

굳이 맨 손으로 마치 손바닥 지문이 닳게 하겠다는 기세로 온 방바닥을 쓸던 할머니가 그 손을 또 씻지 않은 채로 어딘가로 뻗으면 기함을 하며 말리게 되는 것이다. 



*



할머니는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는 시어머니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집에 절대 찾아가지 않았다. 

이사를 하고서도 초대하지 않는 아들에게 눈치 한 번 주지 않고

정말 몇 년 후에야 초대받은 후에야 갔던 할머니는 멋진 시어머니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밤낮없이 집에 쳐들어와서 

모든 것을 뒤집어 놓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읍소했다. 


이사를 가야 한다고. 


어차피 아빠가 벌어 오는 돈은 적었고, 동생과 내가 대부부의 수입을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아빠는 결정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할머니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엄마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설명을 했지만 

아무도 모시지 않는 장인 장모를 가까이서 모신다고 생각하고 있던 아빠는 날 불효자로 매도했다.


아빠의 수익은 점점 더 없었고, 엄마의 병세는 악화됐다. 

당연한 수순으로 아빠가 집에서 엄마의 간호와 살림을 시작했다. 

그리고 살림을 시작하고 몇 주만에, 아빠는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30년을, 

내가 1년을 버텼던 그 시간을 

아빠는 3개월도 버티지 못했다. 


#


아빠는 기본적으로 직접 겪지 않고서는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시기에 알았다. 

이사를 가고서도 아빠는 외할머니에게 카드키와 비밀번호를 줬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현관문이고 방문이고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시는 할머니의 말 상대는 오롯이 내가 해왔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안된다고 했지만. 

아직 할머니의 말 상대를 해보지 않았던 아빠는 또 같은 실수를 범했다. 

나를 또 불효자로 매도하며.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혹은 더 많이 우리 집에 오셨다. 

그리고 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쯤이면 아빠와 할머니의 싸움은 심화되어 있었다. 


도저히 참기 힘들어서 할머니 집으로 가서 읍소했다. 


할머니 왜 굳이 아빠랑 부딪히세요. 

할머니는 그러셨다. 짐짓 거룩한 말투로. 


"엄마 보살피면서 받은 스트레스 나한테 푼다고 생각한다" 고 하셨다. 


아 이 얼마나 숭고한 희생정신인가! 

그 숭고함 앞에서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할머니가 밥이 되다 질다 하지 않으면, 

청소가 이러네 저러네 하지 않으면, 

엄마를 케어하는 방법에 대해 훈수를 두지 않으면,

아빠가 운동을 나가는 거로 불만을 얘기하지 않으시면,

아빠가 화날 일이 없는데도요? 


나는 읍소했다. 내가 너무 힘들다고. 

그러니 제발. 제발 그만하시라고.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아빠한테 그런 취급당하는 것도, 

내가 살아하는 아빠가 할머니한테 그런 취급당하는 것도. 

나는 너무 싫다고. 


할머니는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 씩 집에 오시지만 

이제는 전화를 하시고 방문을 알리시고 

저녁을 먹기 전, 그러니까 아빠가 오기 전에 집을 떠나신다. 


*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왠지 오늘은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날.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공연을 보내 드린 다음이었고

할머니는 한참 '아픈 딸을 사랑하는 불쌍한 자신'을 나에게 위로받았다. 


그래서 저녁을 잡숫고 가시라고 했다. 

동생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오만상을 찌푸리고 들어온 순간. 

간과했던 사실을 생각했다. 


요즘은 아빠가 더 하다는 사실. 


*


아빠는 엄마를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 했다. 


하루에 네 번 먹는 약을, 굳이 24시간으로 계산해 자다가도 일어나 약을 먹게 했으며. 

혹시 엄마가 찝찝할까 봐 두 시간마다 깨워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차라리 깊게 통잠을 자는 게 낫지 않겠냐는 내게, 

아빠는 거룩하게 엄마를 위해 자신이 고생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아니 아빠, 엄마가 통잠을 자야 한다고. 


수면의 질 등을 근거로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다. 

매일 밤 아빠의 거룩한 희생은 계속되었다. 과학적 근거는 물론, 엄마 본인에게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채로 두 시간이 지난 기저귀는 엄마의 수면을 방해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결국 내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수면의 질 문제로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가지고 온 후에야 통잠을 재우기 시작했다. 

왜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의사 앞에서 나는 울고 싶어졌다. 


그러게요. 제가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죠. 


이토록 자기 본위의 희생을 무기로, 아빠는 대우받고 싶어 했다. 

당신의 희생의 대가라고 생각했는지, 나와 동생이 당신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고 굳게 믿었다. 


집안 온갖 것들에 대해 화를 내고 성질을 냈다. 

아빠의 거룩한 희생에 의한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나와 동생의 짐으로 남았다. 

퇴근하고 들어오자마자 거실이 어지럽다고 성질을 낸 적도 있는데, 

그 앞에는 아빠가 늘어놓은 물건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


글로 정리를 하다 보니, 

엄마가 아빠에게 끌린 이유는 자신의 엄마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합리적 의심마저 들기 시작한다. 


두 분은 꼭 닮았다. 

자기가 희생을 하고 있고, 

나만큼 희생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 


그렇지만.


사실 정말 성가시다는 점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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