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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ji 린지 Jul 04. 2020

{소설} 손이 예쁜 그녀는 #1

손이 예쁜 그녀의 짧은 이야기



그녀의 손은 한 번도 넘어져 본 적이 없는 손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여자였고, 위험부담이 큰 하이힐은 절대 신지 않는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의 손은 언제나 안전했고, 상처 하나 없이 반듯했다. 정말이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여자라서 그녀가 넘어지거나 발을 헛디디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녀의 손은 늘 빛났고, 또 예뻤다. 





 위험한 칼을 잡거나 손빨래를 하거나,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도 그러한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문과를 선택했고, 대학도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사실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의대를 가고 싶어 했었다. 멋있는 의사 가운과 사회적인 존경심 때문에. 하지만 그녀는 수술용 칼이 두려웠으며, 특히 외과는 수술 전 소독 과정에서 손이 많이 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의대의 꿈을 접기로 했다. 미련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특히나 수술을 집도하거나, 무언가를 시술하는 도중에 반드시 착용해야하는 라텍스 장갑을 그녀는 경악할 만큼 싫어했다. 그녀의 손이 가장 빛나야 하는 그 순간에 장갑 따위로 손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러한 이유들로 문과로 전향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손은 대학시절 가장 빛날 수 있었다.

 펜을 잡은 손은 굳은살이 베이지 않을 정도로만 글을 쓰면 되었고, 손이 피곤할 때쯤이면 녹음기와 키보드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그녀는 펜을 잡은 그녀의 손을 가장 좋아했다. 글을 쓰기 위한 순간이 아니라 단지 펜을 잡고 있는 그 순간을 말이다. 어두운 방에서 스탠드 불빛만 켜둔 채 그 아래 자주 읽지는 않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책을 한권 꺼내놓고 여러 가지 펜을 번갈아가며 잡아보는 것이 그녀의 취미이다. 한번 시작하면 밤을 샐 수도 있을 만큼 좋아했다. 덕분에 그녀의 책상엔 여러 종류의 펜들이 가득했다. 색연필부터 최고급 만년필까지. 그 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연필이다. 연필을 잡고 스탠드 불빛 아래서 손의 포즈를 취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연필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연필이 살금살금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주 가끔은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이기도 했다. 연필과 종이가 맞닿을 때의 사각거리는 느낌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도 위험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는 하지 않는다. 닳아버린 연필을 예쁘게 깎을 때 마다 손이 번거로워 지니까. 연필을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정작 자주 사용하는 것은 잉크 펜이다.

 


 그녀의 핸드백에 언제나 들어있는 것은 최고급 핸드크림과 에센스 오일이다. 그녀는 사계절 내내 손에 많은 투자를 한다. 하지만 미련하게 네일 샵을 가거나 손 마사지를 따로 받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떻게 나의 소중한 손을 맡길 수 있겠어?

 그래서 그녀는 직접 손을 관리한다. 기본으로 가지고 다니는 최고급 크림들은 기본이며 그녀의 방에는 언제나 손을 -특히 겨울철에는 더더욱- 촉촉이 보호해줄 도구들이 늘 비치되어 있다. 그녀의 친구가 마사지기를 구입했을 때 그녀는 수분보습시트가 내장되어있는 손 수분 장갑을 구입했다. 손톱 관리도 손수 하고 있다. 하지만 매니큐어는 바르지 않는다. 그녀의 손톱은 핑크빛이 살짝 도는 맑은 상태가 가장 예뻤다.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손 모델을 해보는 것은 어때요?

그녀를 조금 알게 된 사람들은 그녀에게 손 모델을 권한다. 그러면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뜨거운 조명아래 몇 시간씩 손을 혹사 시키는 것은 저에게는 힘든 일이예요. 게다가 원치도 않는 포즈로 손을 움직이는 건, 참을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두 손을 자연스럽게 볼에 가져다댄다. 그러면 질문을 했던 사람은 아- 하며 짧은 탄성과 함께, 정말 예쁜 손이네요. 라면서 미소로 화답한다. 그리고 더 이상 그녀에게 손 모델을 권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러한 질문을 받는 게 이젠 좀 귀찮다고 얘기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얼굴도 손도, 제법 잘 나가는, 돈벌이가 괜찮은 소위 평론가라는 작가 직업도.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하다고 그녀 스스로 생각했던 것은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2년 전 까지만 해도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3번째 남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남자친구들과 헤어졌던 이유는 모두 그녀의 손 때문이었다.  


(계속-)



*2008년 즈음에 썼던 캐릭터의 스케치 같은 짧은 작품입니다. 

*조금 다른 버전으로 시나리오 각색 작업도 함께 진행중입니다. (공모전 및 포트폴리오 용-) 

*이 글과 좋은 인연이 닿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anlinji22@naver.com / 글 관련 문의는 메일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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