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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Nov 12. 2024

가을날 묵호항에서 보낸 하루

방랑객들의 이유 없는 반항  가출

10월의 끝자락을 지나, 늦가을을 맞이하는 11월의 첫 주말. 친구들과 함께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며 우리의 모임, '양가규수댁'의 여정을 시작했다. 모임 이름의 유래는 고등학교 시절 성적표에  “양”과 “가”만 적히던 우리를 유머로 표현한 것이다. 그 시절, 성적보다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동행해 온 친구들이기에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행복하다.


“여행 가자!”

“좋아~”

어디로 갈지, 뭐 할지 미리 정하지도 않고, 그저 떠나고 싶다는 충동 하나로 마음이 모였다.

11월의 어느 날, 바람처럼 시작된 아줌마들의 이유 없는 가출 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집에 발렌타인 17년산 있어. 가지고 갈게."

"좋아, 먹고 죽자!"


출발도 전에 카톡방은 이미 흥분으로 들썩였다. 이유는 없지만, 그저 함께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여정. 떠날 채비도 갖추기 전에 마음은 벌써 여행지로 향해 있었다.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라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곳을 선택했다. 여행지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묵호항, 이 작은 동해의 항구 마을이 이번 여정의 주인공이다. 빨갛게 물든 단풍과 파란 하늘이 만나는 이곳에서 우리는 바쁜 일상 속 쉼을 찾아 천천히 걸으며 늦가을의 정취를 느껴보기로 했다.


묵호항은 강원도 동해시에 자리 잡은 항구로, 오래전부터 배와 사람이 쉬어가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석탄과 광물 운송의 거점으로서 주요한 항구로 발전하였고, 현재는 어업과 관광의 중심지로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은다. 묵호항을 대표하는 묵호등대도 이곳의 명물 중 하나다.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탁 트인 동해가 펼쳐지며, 이 항구의 역사와 현재가 조화롭게 녹아드는 풍경을 느낄 수 있다.


묵호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논골담길'이었다. 이 길은 마을 사람들의 숨결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벽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고, 좁은 골목마다 예쁜 벤치와 포토존이 숨겨져 있어 산책하는 즐거움이 크다.


걷다 보니, 논골담길 산책로에 나팔꽃이 피어 있었다. 어릴 적 나팔꽃 꼭지를 따서 줄기를 늘여 귀걸이처럼 귀에 걸고 놀던 그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처럼 우리는 나팔꽃을 하나씩 따서 귀걸이를 만들어 귀에 걸었다.

노란색과 빨간색의 꽃잎이 귀에 닿으니 순식간에 소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한참을 웃고 떠들며, 어릴 적 순수했던 장난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나팔꽂 귀걸이 걸고 소녀로 다시 태어나다..

논골담길 산책은 여유가 가득했다.  단풍이 물든 언덕 너머로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논골담길을 시작하는 곳에 또 하나의 특별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하늘자전거’였다. 로프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하늘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동해를 내려다보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경험은 상상 이상으로 신선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고요해졌다. 파란 물결 위를 날아가는 듯한 이 느낌, 시원한 수평선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지는 순간이 인상적이었다.

하늘자전거 "하늘을 날다"


잠시 페달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묵호항에서의 이 시간을 통해 일상적인 삶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했던 풍경과 여유가, 고된 일상 속 작은 위로가 되어 마음에 스며들었다. 이곳에서 만난 늦가을의 묵호항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의 사진 이야기]

묵호항 스카이 밸리
논골담길의 작은 카페


논골담길의 벽화
돌맹이 가족들
묵호의 향기
논골담길의 골목길
마지막으로 가장 행복해보이는 놀때만 나오는 웃음끼 있는 young




                                                                                           2024.11.1일 논골담길에서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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