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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Dec 05. 2019

엄마가 하지 말았어야 할 일

요즘 생각



 내가 아이를 길렀던 30년 전의 육아 환경과 교육 환경 지금보다 결코 나은 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를 일찍 낳기 잘했다는 농담을 한다.

그때도 일하는 여성 상당수가 양육의 문제로 곤란을 겪고,

크게 주목받았던 드라마 <SKY 캐슬>에 나오는 부모처럼, 죽음을 각오한듯 온갖 수단을 다해 아이 대학 진학에 힘 쓰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신문과 텔레비전은 조기 교육과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자주 다루었고,

부모들 사이에서도 아이들 교육이 이대로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많았다.

 그때 문제라고 했던 것들이 지금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더 나빠졌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모교육' 이야기가 내게도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양육 스트레스로 몹시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저녁 8시, 친지가 운영하는 여행사 사무실에 8쌍인가, 부부가 모여 밤 10시까지 교육을 받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밤 12시가 훌쩍 넘고는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지칠 줄 몰랐다.

당시 주요 화제는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였다.

우리 내외도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모임에서는 지난 주 교육 내용과 주고받은 정보를 실천한 경험들을 나눴다.

교육을 받고 가져간 정보에 자신의 정보와 지혜를 보태서 이렇게 해보았더니 더 좋았다는 간증이

참석자들 사이에서 쏟아졌다.  

부모됨에, 육아에 부모 역할 훈련은 여러 모로 쓸모 있고 신선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양육에 관해 남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눌 때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어느 말을 믿어야할지 갈등이 될 때 고마운 힌트를 얻기도 했다.

모임을 거듭하면서 부모 역할에 대해 조금씩 자신감도 생겼다.

부모 됨에 필요한 준비도 되는 듯했다.     


그러나 부모교육의 여러 지침은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다.

부모교육에서 배운 여러 가지 대화법이며 지침은 아이가 자라면서 키가 자라 맞지 않는 옷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아이는 자랄수록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어져 갔다.

내 말이 아이에게 안 먹히고, 제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 앞에서,

부모교육에서 배운 대로 좋은 얼굴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갈등이 심한 때는 저를 참고 기다리는 엄마를 우습게 아나?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무엇이 잘못됐나 자문도 해보고, 참아내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죄책감도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엄마라는 이름표는 달았으나 아이 못지않게 약하고 부족한 존재였다.

그걸 인정했더라면 좀 낫지 않았을까.

엄마도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준비를 잘해서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가 돼야한다’는 강박에 압도되었던 같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아이는 부모하기 나름’이라는 믿음이었다.

어떤 아이로 자랄 것인가는 양육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

특히 유년기 부모의 양육방식에 크게 좌우된다는 말은 나에게는 부담 그 자체였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해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건데,

아이의 삶을 돌보느라 내 삶을 돌보는 일은 뒤로 밀리고 있었다. 

때로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 달려가 보기도 했다.

잘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안도하고.

이웃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는 순한 편에 속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아이가 아니라 문제는 내게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니라 내가 예민하고 까다로운 엄마였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은 조급해지고, 짜증이 나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좋은 엄마'가 되고자 하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나를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서야

엄마로서 했어야 하는 일보다 하지 않았어도 되는 일이 많았으며,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육아 문제는 강물 위에 거품 같은 것이어서

흐르고 지나고 말면 사그러지는 것들이다.

형들이 앞서 당신들 체험에서 얻어 알려준 육아법도 내게  맞는 적절한 해법은 못 되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 키우기는 장기 두는 것 과 같아서 상대가 두는 수에 따라 장기알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형들의 답이 내게도 그대로 적용되지 못했을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죽을 것 같앗던 순간들도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게 허다했다.  

아이 시험 때 나도 같이 앉아 보냈던 시간,

각종 경시대회, 경연대회, 입시를 위한 자격증이나 급수따기 등등---

지금 생각하면 그런 대회도 있었나 싶은 대회까지 준비 시키며 아이를 들볶았던 일.

입시 성공의 조건으로 할아버지의 재산, 아빠의 무관심, 그리고 엄마의 정보라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던가.

"아이는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야."

세 가지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 냉소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느꼈던

심리적 불편함이나 아이들에게 들었던 미안함 등은 갖지 않았어도 되는 감정들이었다.  

그보다는 아이에게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잘 챙기고 도와주면 되었고

나를 돌보는 일에도 마음을 썼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지나간 다음에야 생각했다.

'나도 괜찮고, 아이도 괜찮다'는 생각을 그 때도 했더라면.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아이는 자라고 또 잘 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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