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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Dec 08. 2019

자식을 위한 기도

요즘 생각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생각하면 감정이 북받치어 숨이 막힐 듯한 순간이 있다.

자식의 일일 때 더욱 그렇다.  그런 몇몇 날들이 있었다.


그날은 작은애의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다. 둘이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엄마와 딸이 평일에 점심 한 끼 먹는 게 뭐 대단한 일일까 싶지만 일하는 엄마와 입시를 목전에 둔 고3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뜨기 전에 집을 나서서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 수험생.

고3 수험생 평일 한낮에 점심을 같이 먹는 일은 일상의 식사가 아니라 마음을 먹어야 가능하다.  

세상에 가벼운 시험이 있을까만은 고등학생은 돌아서면 시험이고 또 시험인데,

무슨 시험이든지 끝나면 아이는 녹초가 되었다.    


둘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니 아이가 먼저 와 있었다.

가로수 신록 사이로 햇빛이 싱그러운 한낮이었다.  

작은애는 얼굴에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신지 눈을 찡그리고 손바닥을 펴서 그 빛을 가리고 있었다.

똥머리로 틀어 올린 머리카락은 바람에 제멋대로 흩날리고 운동복 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나무에 아무렇게나 기대 선 여학생.  낯설었다.

실내에서, 밤에나 보는 아이에 익숙한 내게 햇빛이, 바람이 그 애를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바람이 불고 회오리가 가늘게 일자 먼지를 피해 아이가 돌아섰다.

익숙한 뒷모습, 고단한 뒷모습에 숨이 막힐 듯했다.

많은 고3들이 그런 시간을 살 테고, 그것은 또한 제 몫의 인생이며 그 또한 다 지나간다고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기기 힘들다.  

붉어진 눈시울로는 도무지 아이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다.    

입시생인 자식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참 없었다.

먹이고 입히고 돈을 내는 일밖에. 시간을 빌려줄 수도, 피곤을 대신 짊어질 수도,

그 무엇도 아이를 대신해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보통의 어미들이, 자식을 위한 마음이 어느 때고 지극하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소설가 박완서는 아들을 잃고 쓴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가장 좋은 것만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거의 접신의 지경이었다.

자라서 적어도 악하게 되지는 않을 것만은 확실하게 믿어서 놀러 보낼 때나 학교에 낼 때나,

잠을 재울 때나, 도시락을 쌀 때나 기도하듯 삼가는 게 어미들의 마음가짐."이라고 다.

 박완서 선생은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가톨릭 신자이다.

그는 아들을 잃고 하느님에 대한 원망이 적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기도를 멈출 수 없었는데,

"주를 믿어서도 사랑해서도 아닌, 단지 공포 때문이며,

만에 하나라도 남은 식구 중 누군가를 또 탐내실까 봐 무서워서 바친다."

단지 공포 때문에 올리는 기도라니 참담하지 않은가.

그렇게라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어미의 마음에 울컥한다.  

격식에 맞는 기도만이 하느님께 가 닿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 때나 우러나 바치는 기도, 그리고  자식으로 인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과 행동거지.

하느님인들 그것으로 부족하다 하실까?    

 

어려운 고비들을 무사히 무사히 넘기면 마침내 수능을 보는 날은 닥치고 온다.

 수능 전날에 고사장 가는 길을 미리 조사해 두어 당일 막히지 않는 최단 거리로,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것뿐.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가로질러 수험장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에게 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네 현실에서 아이가 치를 시험의 결과가 제 인생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음을 알기에.

교실 안으로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 숨 막힘은 절정에 이른다.

아이가 입실을 하고 난 후에도 혹시 무엇을 빠뜨린 게 있어 아이가 달려 나올까 봐, 미처 예상하지 못한 그 밖의 응급 상황이 생길까 봐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좀 더 지키고 서 있을 때였다.

시험 시작 시간이 닥쳐오고 무거운 교문이 닫히는데  ‘잠깐만요!’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렇게나 멈추더니 엄마와 수험생이 급하게 달려왔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둘러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인 양 안도했다.

아이가 무사히 들어가고 나자 그 엄마는 교문을 붙잡고 눈물을 쏟았다.

같이 울었다.    


그 날이 언제 적 일인데 나는 아직도 수능 날이 오면, 수험장으로 가는 아이들 모습을 볼 때면, 숨막히듯 북받치는 날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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