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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Dec 02. 2019

육아도 경력입니다!

요즘 생각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지금은 좀 덜하지만 페이스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저 글귀에 늘 당황하고는 했다. 진짜로 질문을 당한 듯 움찔하고는 했다.     

페이스북은 잠자리 날개보다 가벼울 수도 있는 인연까지 찾아주고 엮어주려고 애를 쓴다. 

어느 날은, 일 때문에 알고 지내던 P를 아느냐는 알림 문자를 페이스북이 보내왔다.

P는 몇 년 전에 함께 하던 일이 끝나고 그가 이직을 한 후 잊고 살았던 사람이다.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관계. 

그도 일 때문에 나를 만났으니 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을 아느냐?'는 문자를 받았다면 

소회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알림 문자 때문에 난데없이 생긴 궁금함에 P의 페이지를 열자, 

화면에 P가 어린아이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떴다.

'내 사랑 지완, 두 돌 축하해!'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어린아이를 두고 있었구나. 

몇 장 더 P의 사진과 글을 본다. 아이와 함께한 일상이 글과 사진에 담겨 있었다.

일을 그만두었구나, 짐작한다. 


"손주 봐줘야 해서 못 간다!"

친구 모임에 못 나오는 이유로 이보다 더 분명한 게 있을까? 

대체로 일을 했던 친구들이 손주 보기를 맡아하는 편이다.

그들은 일하는 여성의 아이 키우기의 고통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친가든 외가든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봐줄 수 있으면 그건 축복이다.

그 보다 많은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다. 

여성에게 있어서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그들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P도 예외는 아닌 듯했다.    


여성의 사회적 환경은 내가 P의 나이였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적지 않은 수의 여성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전히 어려운 것이어서 

경력 단절로 이어지고 경력 단절은 다시 사회와의 단절로 이어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회와 단절되었다는 느낌은 - 젖먹이와 복닦이듯 살다 불현듯 생기는-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몰려왔다.

하루 종일 아이와 많은 말을 하지만 늘 대화가 그리웠다. 

육아로 힘은 힘대로 들면서도 세상에서 나는 사라지고 만 듯한 상실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서울 하늘 아래서 나는 육아로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그건 완전한 소외라고 느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것도 잊혔다. 그 절박했던 감정조차 희미해져 

<82년생 김지영>을 소설로 읽었을 때, 김지영만큼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았다.

수많은 김지영들이 들으면 야속하겠지만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이 깜빡깜빡 들기도 했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공분도 되었다. 잊혔던 육아 스트레스가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더 흘러야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페이스북에서 P는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 답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니?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걷던 길 어딘가에서 멈춰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물론 생각도 멈춰있다." 

나는 그에게 보내지 않을 문자 메시지를 썼다.

 ‘그런 시간도 지나갑니다.’

페이스북을 닫도 나오는데 포털 화면에

“경력단절녀라고요? 육아도 경력입니다.”

'럼 육아도 경력이지. 그러나 정말 그런가? '

현실감 없는 기사 제목에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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