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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Nov 24. 2019

 시간을 견디느라 책을 읽었다

요즘 생각

     

나는 책을 언제 왜 읽나.

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어린이 책과 청소년 책들을 주로 읽어야 할 때가 많다. 

책 읽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해도 숙제처럼 읽어야 하니 좋아하며 읽기 어렵다.

그럴 때 나는 잡다하게 책을 읽었다. 물가에서 찰방이는 것처럼 얕게 얕게 읽어가기였지만 숙제처럼 읽어야 하는 지루함을 더는 데는 여러 책을 동시에 읽어나가는 게 도움이 되었다.


그 후로도 나는 잡다한 책을 동시에 읽어나가는 것을 계속하고 있다. 

호기심 때문에, 좁은 편견에 갇힐까 봐서, 무엇보다 한 책에서의 미진함이 다른 책에서 채워지기도 하고 뜻밖의 궁금증이 풀리기도 하고, 심지어 미처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던 것들을 입체적으로 알게 해 준다. 이런 것들은 근사한 구실이라는 것도 감추지 못하겠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이 책 읽다 말고 저책 읽는 나는 어쩌면 ‘어른 집중력 부족증후군’ 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으라는,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멀티태스킹 시대에 걸맞은 읽기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한 책을 읽다가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이어지는 읽기, 그야말로 가지치기 독서다. 이런 독서가 그저 습관이 되었다.

 잠자리에서, 화장실에서, 전철 안에서 등 각각 편한 대로 책을 읽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읽음으로써 지루함을 덜고, 이 책에서 미처 알아듣지 못한 것을 저 책에서 도움받아 이해에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유의할 점은 있다. 맥락 없는 가지치기 독서는 읽느라 들인 공력에 비해 쓸모가 적다. 맥락적 독서는 주제에 집중하는 읽기다. 역사책이든 과학책이든 문학책이든 장르가 다른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어떤 장르의 책이든 주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책 읽는 방법에 대한 책들을 읽다 보면, 그렇게 따라 하면 나도 뭔가 이룰 것만 같아진다. 그런가 하면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네가 읽는 방법은 틀렸어' 하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상처 받으면서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런 때는 건너뛰며 읽는다.

책 읽기의 좋은 방법은 따로 없는 것 같다.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읽는 형편이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읽다가 재미없거나 어려우면 그만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꺼내서 읽어보기도 하고, 그대로 안 읽은 책이 되기도 하고. 

책 읽는 기술이 뛰어나서 빨리 읽지도 못하고, 읽고도 안 읽은 것처럼 놓치는 것도 많다. 그런 것은 그것대로 인정한다. 그래도 되니 다행이다. 

책 읽고 시험 따위는 보지 않아도 되니까.    


언제부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지도 않는다. 도서관 책 빌려보기에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책은 내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산 책 글자 행간에, 책날개에 메모를 하기도 하고 본문에 밑줄을 긋기도 하고 해서 남에게 빌려주기도 좀 무엇하다.     

글을 읽다가 밑줄을 긋는 경우 대개는 마음을 흔드는 구절에서다. 

빌려준 사람에게 내 마음을 들킬 것 같아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읽다가 밑줄 친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때 내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생각이 있는 곳에 내가 있는 법이니까.      

   

때로는 내가 활자 중독 같은 게 있다는 생각도 한다. 뭐라도 읽을거리가 없으면 심심하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초조해진다. 길을 나서면 가방 속에 책 한 권씩 챙겨 넣는다. 때로는 한 줄도 읽지 못하고 무거운 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읽고 못 읽고는 차후의 문제이고 일단은 가방 속에 책이 들었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어떤 것보다 간단치 않은 삶의 시간을 감당하는 법을 몰라서였다. 독서로 삶의 지혜를 얻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나고 보니, 암담했던 시간을 감당하느라 읽은 것 같다.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날 때도 그 소리를 피해 다락으로 올라가 책을 읽었다. 진학 시험을 앞에 두고 극도로 불안할 때도 책을 읽었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도 책을 읽었다. 부끄러운 순간, 불안했던 순간, 참담했던 순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 어려운 때마다 나는 책을 읽었다. 대책도 맥락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시간을 견디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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