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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Jan 24. 2022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2


정말 우연히 보게 된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원제는 'Le portait de la jeunefille en feu'이다.

무슨 뜻인가 물으니 en feu가  '열정에 사로잡힌' 과 유사한 뜻이라고 한다.

<타오르는 초상>이라는 제목은 영화 속에서 미완성인 초상화를 불태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연유한 제목인가 짐작해 본다. 정작 초상화는 불에 타오르고 두 사람의 사랑도 타오르기는 하는데.  

이 영화는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을 경쟁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가부장적 사회문화가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던 때의 퀴어 로맨스다. 

11일간 외딴섬에서의 불같은 사랑. 

 주인공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화가와 모델로 만난다.

두 여자 모두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 서슴없이 뛰어드는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

사랑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18세기에 동성, 특히 여인끼리의 사랑은 죽어야 이루어지는 것.


"나보다 초상화가 먼저 당도해 있었다."

엘로이즈의 엄마가 마리안느에게 딸의 초상화를 의뢰한 목적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사다.

여자의 초상화를 남자에게 보내서 간택이 되어야 결혼이 성사되었던 거다.

영화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주제를 암시하는 당대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다.

 켈트족의 주 거주지였던 프랑스 북서쪽 해안가 브르타뉴의 외딴섬으로

마리안느가 배를 타고 들어올 때 뱃사공과 

완성된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남자의 집으로 가져갈 사람, 

딱 두 번 남성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 속에 남성은 없다.

엘로이즈의 언니가 자살한 것으로 잠깐 언급되는데, 자살의 원인이 가부장적 문화에 연원한다. 

남자는 없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여인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힘으로 표현된다.  

영화는 밀라노에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초상화를 보내주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표면적인 줄거리다.

초상화의 모델인 엘로이즈가 모델 서기를 거부하므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훔쳐보면서 그린 조각 그림을 퍼즐 맞추듯 완성해 나간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인가요?"

"이 그림은 나를 닮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도 닮지 않았다."

엘로이즈는 첫 번째 완성한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 마리안느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림에는 대상만 있을 뿐 그림 그리는 이의 시선 즉 화가의 시선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안느는 그림에도 스타일이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장식적이고 아름다운 곡선과 화려한 색채를 부각시키던 것이 당시 양식이었다.

그것보다는 어찌되었든 결혼 성사를 목적으로 한 그림이었다.

현모양처면 되었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원하니까.


마리안느는 다 그린 초상화의 얼굴을 뭉개버리고 다시 그린다.

이번엔 자신만의 시선으로.

부드럽고 다소곳한 엘로이즈가 아니라 당당한 한 여성으로 재현한다.

사실 엘로이즈는 그림이 간택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엘로이즈를 위한 그림이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가장 비극적인 사랑으로 알려진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복선으로 깔린다.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저택을 비운 사이,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그리고 하녀 ‘소피’는 오르페우스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가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는 조건으로 

지하세계의 문턱을 통과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지만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궁금한 마음에 조급하게 뒤를 돌아 보면서

아내는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가고 오르페우스는 영원히 그녀를 그리워하며 산다는 장면이다. 



세 명의 여성은 이 신화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담아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할 것인가, 

힘든 미래가 예상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시키는 것을 따를 것인지 분분하다.

이러한 신화적 설정은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영화는 마녀사냥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던 때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도 있다.

영화 중반의 마녀들의 집회는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사랑을 확인하는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마녀는 등장하지 않지만 모닥불 주위를 돌며 

여성들이 부르는 허밍 코러스는 음산하면서도 아름답다.

마녀의 우두머리 여성은 마을의 현자처럼 존중되며 몰래 여성들에 의술을 베풀기도 한다.

여자는, 노인 여성은, 남편없이 돈있는 여자는 마녀가 되어야했던 시대였다.

이 영화에는 음악도 없다.

이를테면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 혹은 '나의 아저씨 OST' 같은 음악이 없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비발디의 사계가 웅장하게 연주되는 것이 다다.

음악이 없으니 스치듯한,  지나는 소음 같은 소리조차 예민해진다.

그러자니 더욱 화면에 집중하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초집중하듯 영화에 집중하라는 감독의 의도가 있는 건지,

숨소리도 죽이고 두 사람에 집중하게 만든다.


열하룻동안의 격정적인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처럼 헤어진다.

두 사람, 특히 엘로이즈의 바람과 달리 밀라노의 그 남자의 간택을 받고,

여자의 운명이란 게 남자에 의해 결정되어지던 것은 서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화에서는 돌아보지 말라고 했지만 엘로이즈는 도망치듯 떠나는 마리안느에게 소리친다.


"나를 돌아봐."


돌아본다는 것은 영원한 이별을 암시한다.

신화에 기대어 해석한다면. 


7,8년 세월이 흐른 뒤 마리안느는 자신의 그림이 걸린 전시장에서 

자신의 딸과 함께 있는 엘로이즈의 다른 초상화를 만난다. 

그림 속 엘로이즈는 책을 들고 있다. 

그녀의 손가락은 마리안느가 그려준 그림이 있는 28쪽을 가리키고 있다.

28쪽엔 엘로이즈가 부탁해서 그린 마리안느의 나신 자화상이 있다.


"당신이 보고 있을 때 나도 보고 있다."


화가로서 모델로서 마주 설 때 엘로이즈가 한 말인데

이 장면에서 새삼 의미 있게 기억난다. 



여성 예술가에 대해 감독은 "소수의 뛰어난 몇몇 스타들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도, 

보관되어 있지도 않았다"라며 자료 조사가 쉽지 않았다고 인터뷰에서 후일담을 전한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초상화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여성을 모델로 한 초상화가 다수 등장하고, 

보다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여성 예술가들의 활발한 활동을 했다. 영화는 그런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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