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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Oct 24. 2021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는 방법

왜 하필 '뒷집 준범이'일까요?   

  

말은 생활을 딛고 살아가는 법입니다. 우리 생활이 바뀐 탓에 말도 바뀌고, 말이 바뀌면서 사람들이 품고 사는 정서도 변하는 것이겠지요. 이 책에서 몇 개의 낱말에 주목하게 되었는데요, 앞집이나, 뒷집, 골목, 마당 이런 말들입니다. 이 말들에는 아파트 이전의 생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앞집과 뒷집은 담을 두고 제 이름을 얻습니다. 담은 사람의 키를 넘지 않았지요. 앞집과 뒷집의 왕래는 대문을 통하기보다는 담을 두고 더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담을 넘어 떡 그릇이 건너가면 과일 그릇이 되돌아왔지요. 그렇게 오고 가던 떡 그릇 과일 그릇을 우리는 ‘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담이 사라지고 앞집과 뒷집이 사라지는 사이, 우리들은 이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달라진 탓인지 몰라도 저는 이 그림책에서 말하는 뒷집이라는 말에서 가난의 흔적을 느낍니다. 드러내 놓을 만한 것이 없어서 뒷자리에 물러나 있는, 앞집에 가려진, 초라한 모습이 뒷집이라는 말에 묻어 있는 것 같아요.    


<뒷집 준범이>는 할머니와 둘이 사는 유치원생 준범이가 새로 이사한 곳에서 동네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던 어느 하루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동네 아이들과 준범이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합니다.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코끝이 찡할 만큼 기특합니다. 아이들은 못 본 척하지 않고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을 미처 잡지 못한 아이도 끝내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래 사귄 사이처럼 그 낯선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고 받아들입니다. 그 단순함이 아이들의 힘이겠지요. 아이들은 준범이를 친구로 삼아버립니다.    


이것저것 따지고 재지 않는 아이들의 이 모습은 무관심과 체면 혹은 게으름과 경계로 담을 낮추기는커녕 아예 담을 없애버리고 통로를 막아버리는 어른들의 마음까지 흔들기에 충분합니다.    

     


뒷집에 준범이네가 이사를 왔습니다     

   

이야기는 표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높은 건물에 가려 해가 잘 들지 않는 듯 어두운 집 지붕 위로 고무공이 튀어 오르는 걸 보니 앞 건물과 낮은 집 사이에 누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낮은 집이 독자를 등지고 있어서 누가 그 장면을 보고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어요. 책을 열면 컴컴한 방안이 전면에 펼쳐지고 활짝 연 미닫이 창문 너머로 한 가족의 일상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아직도 이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한 장을 더 넘겨 속표지에 왔을 때 비로소 시선의 주인이 나타납니다. 표지에서 봤던 낮은 집의 앞모습이 보이고 삼분의 일쯤 연 창문 안쪽에 한 아이가 준범이 입니다.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는 밖이 궁금하지만 아이는 선뜻 밖에 나가지 못합니다. 아주 조금 열린 창문의 크기는 쭈뼛거리고 소심한 준범이를 표현한 것이지요.    


"준범이네가 이사를 했습니다. 시장 골목 낮은 집, 작은 방입니다." 첫 장은 준범이가 이사를 했고, 이사한 집 주변을 서술한 글만 있습니다. 다음 장부터 준범이가 창을 통해 내다 본 풍경이 펼쳐집니다. 미용실, 슈퍼 집, 짜장면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화면 전체에 그려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달라지는 그림의 크기입니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커지는 그림만큼 혹은 열린 창문의 넓이만큼 이야기는 넓어지고 감정도 고조됩니다. 바깥을 향한 준범이 마음의 크기만큼씩 화면은 커지더니 어느 순간 그림의 틀이 확 사라집니다. 준범이가 창밖의 아이와 눈이 마주친 걸까요? 준범이가 당황해서 숨어버린 걸까요?    


“야, 너도 이리 와. 같이 놀자.”


창밖의 인물들 중에서 한 아이가 척하고 손을 내밉니다. 이 여자아이가 낮고 작은 방에 이사 온 아이를 보고 모르는 척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놀자고 하는 바람에 읽는 이의 마음이 놓이는 순간입니다.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그림의 크기가 커진다고 했는데요, 이 그림의 크기가 창문의 크기라는 것을 짜장면 집 창문에 비친 준범이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의 크기가 커진다는 것은 창문이 그만큼 더 열렸다는 것이고, 창문의 크기만큼 준범이가 밖을 향해 갖고 있는 관심이 커졌다는 뜻이지요. 처음 강희네 집을 볼 때는 눈썹만 보일락 말락 하더니 앞집 가족들이 평상에 다 모였을 때는 준범이 얼굴이 거의 다 드러납니다. 준범이의 이 관심이 부러움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준범아, 노올자


준범이네 방안 풍경은 준범이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할머니와 둘이 찍은 사진이 주는 외로움, 낮에도 펼쳐진 이불, 준범이의 헐렁하고 낡은 옷, 그리고같이 놀자는 말에도 깜짝 놀라 제 방에서도 숨는 준범이. 그 모든 상황을 더 강화시키는 것이 어둑한 분위기입니다. 색은 이야기의 분위기,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준범이 마음은 창밖 너머를 기웃거립니다. 바깥을 향한 준범이의 관심은 강희네 짜장면 냄새를 맡고 이제 아이들이 어떻게 할 거라는 것을 짐작하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지요. 준범이는 발 돋음을 하고도 밖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어린아이입니다.    


같이 놀자는 말에 숨어 버린 이 장면 이후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장 궁금했습니다. 같이 놀자고 한 아이가 준범이를 잊어버렸을까 봐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니까요.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여지없이 저는 웃어버렸습니다. 역시 아이들입니다. 짜장면 냄새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창문에 매달린 준범이를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아이들이 준범이를 찾아옵니다. “준범아 노올자”라는 글자가 얼마나 큰지요. 그만큼 아이들의 목소리가 컸다는 것이겠지요! 아니면 준범이가 그만큼 놀랐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림의 틀이 없어지는 것과 동시에 이제 준범이와 아이들은 사건 속에서 뒤섞이게 되었습니다. 틀이 없어지듯이 아이들과 준범이 사이에 경계가 사라진 것입니다. 거의 무단 침입하듯 쳐들어온 아이들을 준범이는 두 팔을 벌리고 몸을 숙이고 기꺼이 맞아들입니다.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문 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햇살도 아이들과 함께 쏟아져 들어옵니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햇살이 밀물처럼 들어오면서 준범이네 방이 환해집니다. 이 책을 함께 읽은 어느 독자는 “아이들이 곧 햇살이다. 작가는 아이들이 햇살이라는 의미를 실재의 햇살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두운 준범이 방을 환하게 밝혀주는 자연의 햇살과 아이들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다시 한번 경험합니다.    


이쯤에서 성급한 독자들은 저 창문을 반쯤 넘어오고 있는 쟁반을 발견하고 “짜장면이다” 소리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희 엄마가 허리를 반쯤 넣고 건네준 저 짜장면 맛은 굳이 물어보지 않겠습니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순간, 그 좋은 느낌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다 같이 놀면 진짜 재미있거든요      

  

다 읽은 책을 엎어놓고 뒤표지와 앞표지를 나란히 놓이게 해 봅니다. 접었을 땐 준범이네 집만 보였는데 펼치니까 준범이가 살고 있는 시장 골목이 보입니다. 앞집과 뒷집이 아니라 신흥 반점과 나란히 앉아있는 옆집처럼 보입니다. 앞표지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펼친 페이지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림책은 안에서 다 못한 이야기를 종종 이런 식으로 다룹니다.    


우리는 <뒷집 준범이> 읽으면서 아이들이 친구 사귀는 법을 알았습니다. 불러서 안 나오면 우리가 가지 뭐하는 단순함이 때로는 친구를 맺는데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별 다른 말이 없어도 다음 글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바로 잎집은 음식점입니다. 그 옆집은 슈퍼입니다. 또 그 옆집은 미용실입니다."

"준범이네 바로 앞집에는 강희, 그 옆집에는 충원이, 또 옆집에는 공주가 삽니다. 모두가 친구입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준범이가 이제 더 이상 외로운 아이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앞 면지에 설거지하는 할머니에 매달려 있던 준범이가 뒷면지에서는 소매를 둥둥 걷고 주먹을 불끈 쥐고 '태권!'기합을 넣는 듯한 모습으로 할머니를 맞습니다. 관심이 아이를 달라지게 했어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김영진<친구 사귀기>(길벗어린이)

러셀 에릭슨 <화요일의 두꺼비>(사계절)

하이케 팔러 글,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우정 그림책>(사계절)

폴리 던바<안녕 펭귄>(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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