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패티 Oct 24. 2021

인간이 동물보다 자연을 더 잘 알까요?


인스타그램에는 슬픈 동물 없어요


2년 전, 함께 살았던 개를 저 세상으로 보낸 일이 있어요. 18살이 되던 해 여름, 진드기에 물린 치료를 받고 녀석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어요. 녀석을 보내고 한동안은 참 많이 허전했어요. 녀석이 가고 없는 빈 자리는 한 마리 동물이 가고 없는 것 그 이상이었어요. 녀석이 그리운 날은 인스타그램의 동물 사진을 보고는 했지요. 인스타그램의 동물들은 모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그들은 정말 행복한 걸까요. 우리가 녀석을 사랑으로 돌봤으니 우리와 함께 살았던 시간이 녀석에게도 행복했을까요? 


‘자기다운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바람처럼 달린다는 동물, 그러나 치타는 잘 모르겠다고, 그렇게 달려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먹이가 많은 호수를 찾아 몇 킬로미터씩 날아갈 수 있는 쇠홍학은 먹이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홍학도 가끔 날고 싶은 꿈을 꾸지요. 날갯짓을 해도 날 수 없어 훌륭한 날개가 있으나 쓸모없음을 슬퍼합니다. 홍학의 말은 동물원의 우리 안에 산다고 날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마음마저 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팔 힘이 세서 하루 종일 쇠창살에 매달리곤 한다는 긴팔원숭이. 나뭇가지를 타고 밀림을 누벼야 할 긴팔원숭이는 독자와 눈을 맞추지 않은 채 하고 싶은 다른 말을 참고 있는 듯합니다. 조련사의 말을 척척 알아듣는 똑똑한 돌고래는 친구를 만나서는 늘 바다가 그립다는 말을 한다고 해요. 먹이를 찾아 추위도 눈보라도 헤치고 다니는 북극곰은 눈보라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동물원 우리 안에서 얼음 한 덩이 위에 앉아 있는 북극곰은 '여긴 너무 덥다'고 하고요. 


어두운 밤을 달처럼 가르는 동물 올빼미는 자기가 멋진 사냥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요. '내가 그렇게 멋진 사냥꾼이라니.... 나는 오늘도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올빼미는 밤하늘을 날며 사냥하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고 해요. 높이 뛰기의 명수 바바리 양이 뛰어오를 곳이 없어 우리 안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 함께 노래도 하고 사냥도 하는 늑대가 지금 가족이 없이 혼자 지냅니다. 당연히 노래도 하지 않아요. 야성을 잃은 동물이 어떤 모습으로 박제가 되어 가는지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늑대가 보름달이 뜬 밤, 하늘을 향해 합창하는 늑대 무리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걸까요? 


프레리도그는 적이 나타나면 개 짖는 소리를 내는 동물입니다. 작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보다 큰 동물인 개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능력이 있어요. 적이 나타나야 개 짖는 소리를 낼 텐데 동물원에는 적이 없어서 소리 낼 일도 없습니다. 해처럼 떠서 날갯짓 없이도 몇 시간이나 하늘에 떠 있을 수있는 콘도르, 그러나 동물원에서는 마음껏 날개를 활짝 펼 일이 없어요.  


'콘도르'라는 말은 잉카 말로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이랍니다. 하지만 본성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 야생에서라면 살아가는 데 유용했을 능력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삶이 서글퍼요. 인스타그램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동물들은 행복할까요? 

     


인간은 자연을 동물보다 더 이해할까요?


글을 쓴 윤여림 작가는 "동물원에서 생각했습니다. 치타는 치타답게, 가젤은 가젤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의 모든 생명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말합니다.  


 '동물들이 나누는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그림책 <서로를 보다>는 지구에 사는 같은 동물이면서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과 동물이 서로에게 주는 이야기입니다. 동물의 눈에 비친 사람, 사람의 눈에 비친 동물은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그 생각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를까요?    


달리기도, 솟아오르기도, 뛰어오르기도 못하지만 누구보다 자유로운 동물은 인간입니다.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도 자연을 파괴하는 능력도 뛰어난 인간. 과연 인간은 자연을 동물보다 더 잘 알까요? 아이와 동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뭔가 이상하고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이 책이 떨어뜨린 질문과 생각의 씨앗인 것 같아요.     


이 그림책을 읽고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들이 본성을 잃어가고 자연스러움을 잃어간다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동물들의 본성은 점점 사라져 가는 겁니다. 동물이 자기 본성을 잃고 인간을 위한 존재로 전락해도 되는가, 더 나아가 인간은 과연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동물원 속 프리리도그는 소리를 낼 일이 없다고 해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물원 속 치타는 빨리 달려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치타가 맞을까요?

먹이를 찾아 몇 킬로씩 날지 않아도 되는 쇠홍학은 더 이상 고단한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되니 행복하지 않을까요?  

먹이도 풍부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수족관에 사는 돌고래는 왜 바다를 그리워할까요?

바바리양은 물이 귀한 암석이 투성이 황무지가  동물원보다 더 좋을까요?

우리가 동물원 울타리 속의 동물을 볼 때 동물은 인간을 어떻게 볼까요?

과연 인간은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이 동물보다 높을까요?



서로를 보다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거나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동물들이 아닌 것 같아요. 

그림은 자연 상태의 동물의 모습을 먼저 보여줍니다. 자연 상태의 그림은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여 거칠게 그렸습니다. 현장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어서 인공 상태의 동물을 보여줍니다. 인공의 구조물인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빛바랜 색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자연 상태의 동물은 펼침 면 전체를 사용해서 자유롭고 활동적인 공간을 확보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아이와 동물의 대조적인 대화. 이 장면은 펼침 면 한쪽은 아이와 동물의 대화가 있고 동물원의 동물은 나머지 한쪽을 채웁니다. 답답하고 갇힌 느낌이 더욱 도드라지지요.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안과 밖의 경계뿐입니다. ‘우리(牛李)’라는 말이 동물을 가두는 의미의 장소이면서 너와 나를 아우르는 ‘우리’라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 경계를 어떻게 뛰어넘을까 생각해 봐야 하겠지요. 그 시작이 서로를 보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본다는 것은 관심이고 관심은 사랑으로 가는 시작이 아닐까요?    


책장을 천천히 넘기면서 동물들을 오래 바라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기를 권합니다. 날개를 반만 펼친 콘도르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 보세요. 날개를 반만 펼친 콘도르는 자기를 온전하게 보여주지 못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콘도르는 이름에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을 갖고 태어났다지요? 이 그림책을 보면서 콘도르가 멋진 날갯짓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서로를 보다', 서로는 본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나는 서로를 본다는 것을 사는 곳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지만 서로를 향한 우정어린 응시를 하자는 마음이 담긴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큰 의미에서 인간도 동물이잖아요. 동물끼리 서로를 위하며 살자는 뜻이요. 


"그림을 그리며 동물들의 삶을 따라 먼 곳까지, 그들의 마음속까지 여행을 다녀온 느낌입니다. 이 책이 우리와 다른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귀와 눈을 열게 하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림 작가 이유정의 말은 곧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와 함께 18년을 살았던 개, 녀석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우리의 끝을 알면서 그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제임스 애그레이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 (풀빛)

이수지 <동물원>(비룡소)

다니엘 페낙 <늑대의 눈>(문학과지성사)

올리버 제퍼스 <이 사슴은 내거야> (주니어김영사)

간자와 도시코 <사슴아 내 형제야>(보림)


#다네엘 페낙의 <늑대의 눈>은 148쪽의 고학년 동화입니다. 알래스카에서 부모 형제들과 평화롭게 살던 푸른 늑대가 사람들에게 잡혀 10여년 간 동물원들을 전전하다 한쪽 눈을 잃는 사고를 당합니다. 이 늑대와 늑대를 보는 한 소년의 만남이 줄거리로 동물을 사냥한다는 것그리고 동물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황석영우체국을 기다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