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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23. 2021

황석영우체국을 기다리며

쓸데없이 진지한


 ‘황석영우체국’이  있다면  그게 어디일까요.


공식적인 이름은 ‘해남우체국’.


해남우체국이 ‘황석영우체국’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갖게 했으면 하는 사연이 있어요.





80년대에 소설가 황석영은 서울의 한 신문에 “장길산‘이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었어요.


소설을 신문에 연재하는 일은 여러모로 작가에게 큰 이득을 주는 일이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겠지요. 짐작하는 것처럼 가장 큰 스트레스는 매일 글을 쓴다는 것!





계절의 변화도 멈춘 듯한 겨울, 황석영은 해남으로 내려가서 신문에 연재할 글을 쓰기로 합니다. 문제는 원고를 전달하는 방법이었어요.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지 못한 때였으니까요. 빠르다고 하는 전보도 몇 글자 정도인데, 신문에 실을 소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그가 생각한 방법은 전화였습니다.


하지만 임시로 내려간 그가 전화를 개통할 정도는 아니었고, 짐작하건대 당시는 시외전화 통화료도 만만치 않았을 거예요. 가장 만만한 방법이 우체국에 있는 전화를 사용하는 것이었나봐요.





그는 날마다 하루치 연재 분량을 써서 우체국으로 들고 가 전화에 대고 소설을 읽어주었어요. 전화기 너머 서울의 신문사에서는 그걸 받아 적어서 신문에 싣고는 했을 테지요.


그러나 통화 감이 불량하던 시절 통화하던 기억 나세요? 시외전화란! 감 떨어지는 건 물론 통화 중에 끊어지기도 하던 시절 말입니다.


”네? 뭐라구요? 안 들려요. 다시 한 번 말해 보세요”


전화가 아니라 싸우는 줄 오해하게 했던 일도 다반사였어요.





황석영의 통화도 예외는 아니었을 겁니다. 처음엔 조곤조곤 읽었겠지요. 그러다 어느새 언성이 높아지고, 그러다 벌떡 일어섰을 테고,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지 않았을까요? 얼굴이 벌개지도록.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우체국 직원은 웃음을 숨기려고 얼굴을 돌리고, 그것도 안 되면 엎드려서 쿡쿡 웃었겠지요.

통화를 마친 소설가도 우체국 직원 보기가 쑥스러웠을까요?





그가 썼던 전화기에 ‘황석영전화’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 같아요. 황석영우체국은 좀 과하고‘황석영전화’ 정도로. 어렵사리 통화를 해서 신문에 소설이 실렸을 테니 사람들은 거기에 스토리를 담겠지요. 소통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화! 그리고 사연이 하나씩 더해집니다. 얼굴을 마주보고 하기 어려운 사랑 고백이 제격일 것 같습니다. 부부가, 연인이, 친구가,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거기에 특별한 사연이 더해져도 좋겠지요. 이를 테면 끊어질 듯 위태로운 관계의 연인이 이 전화로 통화하고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이가 되었다는.




공중전화는 이제 거리의 유물같아요. 그런 시절 이야기입니다.



단 몇 사람이라도 꼭 필요하다면 있어야 하겠지요. 우체국도 그런 이유로 필요하다면 있어야 겠지요. 그런데 그냥 있게만 할 게 아니라 황석영우체국처럼 스토레텔링을 담으면 어떨까요? 오늘날처럼 비방과 비방으로 SNS를 사용하는 거칠고 투박한 세상에 사랑을 이루게 하는 전화기 '황석영전화'!












이 이야기는 사실에 제 상상을 더한 글입니다.


해남에 이런 전화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황석영 선생이 해남에 가서 소설 <장길산>을 써서 연재한 것은 사실입니다.



https://blog.naver.com/aidiowna




그림 출처 :https://blogsearch.kr/view/?cate=naver&code=2220599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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