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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Aug 02. 2020

2020.7.30

코로나 일기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의 공저자이기도 하고 cbs의 피디이기도 한 정혜윤은 자신의 책 스승을 어린 시절 만났다고 말합니다.  서울서 이사온 얼굴 하얀 소년이었다는데요. 독서의 세계로 이끌리는  길이 좋아하는 사람에 의해서 열렸다는 이야기를 적잖게 들었습니다. 어린 정혜윤도  읽기를 좋아한다는 소년의 말에 그를 좋아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자기 집에도 있지만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삼총사>를 빌려다 읽었는데, 기왕이면 그 애의 손길이 닿은 책으로 읽고 싶어서였다면서.


등하굣길 신발주머니도 들어주고 사과를 나눠먹기도 하며 둘이 가까워지던  어느날 학부모 모임이 열립니다. 그 자리에서 엄마들이 만납니다. 첫 만남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고등학교 친구가 아니라 원수였습니다.

한 사람은 공부를 아주 못하는  부잣집 딸이었고 한 사람은 공부를 아주 잘하는 가난한 집 딸로 둘은 각자의 약점을 폭로하는 것으로 지루한 학창시절을 견뎠습니다. 여고를 졸업할 무렵 그들 각자의 인생 목표는 "적어도 너보다는 잘 산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 두 사람이 십수 년이 지나 아이들의 교실에서 조우한 것입니다. 첫눈에 처지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두 엄마는 자신들의 목표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는 곧 눈을 반짝였지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으니까요.  이제 두 엄마는 새로 설정한 목표를 향해 일로매진합니다. 목표는 이들의 새로운 활력이 됩니다. 그뒤로 두 아이가 각자 집에서 겪었을 고초는 필설로 이루 다 할 수 없다고 정 피디는 잘라 말합니다. 무엇을 하며 지냈을지는 짐작이 가는그대로입니다.


그러면서도 두 아이의 만남은 계속되었어요.

또  어느날 입니다. 소년이 어린 정혜윤을 불러냅니다. 둘은 뒷산으로 갑니다. 어린 정혜윤은 그 직전 시험에서 그 소년을 앞질렀던, 앞지르고도 가슴이 뜨끔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소년이 겪을 고초를 생각해서. 아니나 다를까, 하룻밤새 더 하얘진 얼굴로 나타난 소년이 꽃무늬 포장지에 싼 책을 선물로 건네줍니다. 이별 선물입니다. 소년은 선물을 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을 뛰어내려가고 정혜윤은 그 자리에 선채로 포장지를 풀어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습니다.  사랑했으나 가문의 반대로 헤어지고 만 남녀의 이야기. 그런 게 이탈리아 베로나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혜윤은 사랑을 위해서 죽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친구에게 감탄하게 됩니다. 그는 어떻게 아이들의  짧고 슬픈 사랑을 위대한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을 생각을 했을까? 성인이 되어서야 그 소년이 책스승이었음을 깨달은 거죠. 실제로는 소년이 얼마만한 독서가였는지는 모를 겁니다. 정혜윤 pd 스스로 소년을 스승이었다 인정한 거지요.


다시 동화를 읽겠다고 생각하는 정혜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어공주는 아니지만 인어공주를 읽겠다고.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 빨간망토 소녀는 아니지만 빨간망토를 읽겠다고. 왜냐하면 세상에는 친절한 할머니 목소리를 내는 늑대가 우글거리니까. 드라큘라는 아니지만 드라큘라를 읽겠다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혼이 없으면 남의 피나 빨마 먹고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해주기 때문이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의 독서는 영원히 살아남아 있으니까.

- <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프롤로그를 대신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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