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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Apr 21. 2022

늙은 디아스포라의 미술관 관람기 <나의 조선미술 순례>


코로나 때문에 흐지부지되고 만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도슨트교실이었다. 과천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꼼꼼한 인터뷰를 통과하고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마다 미술관 교육을 받으러 갈 꿈에 부풀었지만 어이없게도 코로나 때문에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든 처음 겪는 일에 우왕좌왕하기 마련이어서 미술관은 온라인 교육에 대한 준비와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던 듯했다.  



그래도 그  공부 덕분에  만난 한국 미술가들이 많다. 미술에 관한, 미술가에 대한 공부를 일부러 찾아하기란 쉽지 않다. 화가도 화가지만 한국 미술을 읽고 평하는 비평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그때 만난 사람이 서경식 선생이다. 그가 쓴 책 <나의 조선 미술 순례>는 그때 만났다. 출판사 반비에서  2014년에 일찌기 출간한 책이었다.  최재혁 선생이 번역을 했다. 서경식 선생은 한국어보다는 일본어에 익숙한 재일교포였다.  

 


 서경식 선생 이름 앞에는 재일교포, 디아스포라 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붙는다. '재일교포 서경식' 또는  '디아스포라 서경식' 이렇게.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국에서 추방돼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서경식 선생에게 붙여진 디아스포라는 조금 의미가 다른 듯하다.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한국인의 경우에 특히. 재일교포의 경우 그 사회에서  범죄자도 아닌데 일반 시민도 아닌 처지로 대우받는 지위에 있다. 무엇보다 디아스포라 서경식으로 불리는 이유 중에는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에도, 거주국인 일본에도,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들 말하나보다.  

 

이 책은 '조선' 미술을 찾아 떠난 순례의 기록이다. 한 꼭지를 제외하고 모든 꼭지가 인터뷰 기록이다. 제목만 보았을 때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과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알기 쉽다. 그러나 신윤복을 제외하고 죄다 근현대 한국 사람들이다. 읽다가 발견한 것은 책에 실린 화가들이 생소하다는 점이었다. 이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조차 내가 들어온 화가들 이름이 낯선 거다. 물론 자기의 관심사 바깥의 일에 소상히 알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서양화가 이름보다 낯선 이들이라는 건 문제 아닌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배운 교과서가 편향적인지, 내가 편향된 건지,  저자가 편향된 건지. 나는 학교에서 도대체 무얼 배운 건지. 그러나 재미있다. 소리 내 읽어보았다. 술술 읽힌다. 잘 쓴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번역을 잘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 <나의 조선미술 순례>, '조선'에 대해 작가는 조선 왕조나 북한을 가리키는 북조선과 같은 닫힌 뜻이 아니라 시공간적으로 더 넓은 차원을 담기 위해 쓴 말이라 한다. 즉, 남북한은 물론, 재중, 재일, 재독 동포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포함하고, 그들도 평등한 구성원으로 코리안 공동체 제반을 아우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북한은 제외되었지만. 자의든 타의든 한반도에 살고 있지 못한 이들이 많다. 저자도 그렇다.


 

책에 실린 작가들, 신경호, 졍연두, 윤석남, 이쾌대, 신윤복, 미희, 그리고 홍성담과 송현숙---. 이런 이름들을 미술관 교육 때문에 알게 되었다. 



어느 책 소개 팟캐스트에서는 '이쾌대'를  말하지 않고 넘겼다. 이쾌대는 경북 칠곡 출신으로 일본 유학, 해방후 진보미술단체를 조직 활동하다 월북했다. 이쾌대는 1988년 해금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말하기 불편한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저자는 60대가 되어서 유럽의 미술관이 아니라 한국의 미술관들을 순례한다. 재일조선인 청년이 30대에 집착했던 주제들, 죽음, 섹슈얼리티, 가족, 민족…… 같은 것들이 60대의 눈에도 예전 못지 않다. 노교수의 오감을 사로잡고 뒤흔들며 남다른 통찰들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는 없는 법, 시간과 공간과 삶의 변화를 따라 작가의 시점이, 혹은 주변의 평가가 미묘하게 달라진 지점들도 잘 잡아내서 서술했다.



저자는 70년 전 보았던 조국이 이렇듯 달라진 상황에서 청년시절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번 꺼내본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그의 미술관 순례는 그 답을 찾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그림보기를 통해 평생을 디아스포라롤 살며 노인이 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림보기를 이렇게 하기도 한다.






https://blog.naver.com/aidiowna/22269485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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