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잠시 모른 척, 애써 눈 감아 주시길 부탁드리며, 허를 찌르는 기습적인 얍삽함으로 나쁜 소식부터 전하려 한다.
20여 년 전 식목일에 심었던 나무가 잘리고 말았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할머니와 함께 아파트 단지에 정성스럽게 심었던 작고 아담한 향나무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늘 지나치던 장소를 무심하게 걷다가 그걸 깨달았다. 제법 자란 나무의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던 것이다. 퍽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어 혼자만 무거운 감정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 조금 허무할 지도 모르나 - 이 역시 10년 전 일이다. 그러니까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인제 와서 여러분께 하소연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심은 나무가 잘려 없어졌습니다. 조금 더 관심과 사랑을 줄 걸 그랬어요. 흑흑” 굉장히 슬프고 나쁜 소식이죠?
이제 좋은 소식 차례. 얼른 말하고 싶어 입과 손가락이 너무너무 근질거려 혼났던 기쁜 소식이란,
네 그렇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마음에 쏙 드는 한 출판사를 만나,
마침내 도장을 찍었네요.
(짝짝짝)
그런데 기쁜 마음과는 별개로 막상 계약을 하고 나니, 그 옛날 직접 심었던 향나무가 생각나며 북한산과 설악산의 울창한 수목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사려니 숲, 나아가 아마존의 밀림까지도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다. 내가 엄격한 환경론자는 전혀 아니지만, 책이 나온다고 하니 괜스레 종이가 될 운명의 애꿎은 나무들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책을 만들자고 다짐하게 된다. 좋은 책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논하려면 상당히 머리가 아프고, 대단히 귀찮겠거니와 의견이 분분할 테니, 그건 슬쩍 넘어가기로 하고. 다만 놀랄 정도로 헐거운 내 기준에서는, 나무가 아깝지 않은 책이 ‘좋은 책’이라 대충 얼버무려본다. 이 책을 위해 베어져야 할 나무와, 그간 글을 쓰며 흘렸던 땀방울,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어느 독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이 또한 상당히 버겁게 느껴져 한껏 주눅 든다. 결국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얍삽하게 목표를 수정했다(이쯤 되면 얍삽함은 나의 전매특허라 해도 좋을 지경이다). 좋은 책이라고 하면 너무 부담스러우니, ‘그나마 덜 한심한 책을 만들자.’ 언젠가 덜 한심한 이야기를 쓰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그런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올 것이다.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지구 온난화 문제 같이 국제적이고 심대한 문제에 심드렁하니 무관심했던 나를 돌아보며, 이번 기회에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가꾸는 심정으로 한땀 한땀 정성 들여 책을 엮고 싶다. 그 옛날 고사리 손으로 나무를 심었던 그 순수한 감정을, 온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런 심정으로 글을 정갈하게 다듬으려 한다.
이 글은 많은 축하를 받으려는 의도가 다분한 글이므로, 축하의 댓글은 200% 적극 환영입니다.
7개월 뒤에 ‘좋은 책(혹은 덜 한심한 책)’으로 만나보아요! 좋은 책이 되었는지는 직접 서점에서 확인 부탁드리고요(물론 인터넷 서점도 괜찮습니다. 1쇄는 팔고 싶어요. 히힛).